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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da Nov 29. 2019

당신은 0 같은 사람?
1 같은 사람?

아이에게 배운다

아이에게 배운다, episode 1.


“엄마 난 0 말고 1 같은 사람이 될 거야!”     


이제 막 곱셈을 배운 아이가 뜬금없이 꺼낸 말이다.

숫자 0이 아닌 숫자 1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도통 알 수 없는 이야기.     


“0 같은 사람은 뭐고 1 같은 사람은 뭐야?”

“0은 어떤 숫자랑 곱해도 다 0으로 만들어 버리잖아. 이기적이야. 자기만 알아! 1은 곱하면 다 그 숫자로 변해. 다른 숫자를 이해해주잖아.”      


아이의 눈에는 숫자도 저마다의 성격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아이는 0이라는 숫자를 얄미워 하지만 난 0을 아주 애정 한다. 난 때때로 모든 걸 제로 세팅하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늘 남의 떡이 커 보이고, 지금의 내 모습이 늘 불만이고 부족하다고 여기는 나는 결정 장애처럼 언제나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한쪽을 마음속에 품고 산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 보면, 언제나 다른 선택이 눈에 아른거려

지금의 행복을 맘껏 누리지 못하는 바보 같은 일들을 되풀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구나 새롭게 시작하고 싶겠지만,

그렇다고 결핍과 부족함으로 채워진 삶일지라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우리의 삶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아이에게 배운다, episode 2.      


“엄마, 난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그럼 다 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너만 할 땐 

뭐든 될 수 있고 뭐든 꿈꿀 수 있고 가능성이 너무 많아서 행복한 거야.”

“그럼 엄마는? 엄마는 꿈이 뭐야?”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인생의 절반에 다다른 내게,

꿈이 뭐냐고 물어본 그 누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꿈이란 건, 무언가가 되고 싶고, 도전해 볼 수 있는

20대까지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다.       

하루하루 아이를 돌보고, 해도 해도 티도 나지 않는

집안일을 해야 하고, 아이가 학교나 학원에 간 틈틈이

프리랜서로 글을 쓰면서 재택근무를 하는 나에겐

하루 24시간도 부족한데, 꿈을 꾸며 뭔가를

다시 시작하는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엄마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못하는 게 많아.”

“뭐를 못해?”

“네가 되고 싶은 연예인도 아나운서도 엄마 나이엔 할 수 없어.”

“엄마가 그랬잖아 꿈을 꾸지 않으면 늙는다고. 그래서 엄마는 늙은 거야?”     


아, 나의 육체가 늙어가는 것도, 마음의 늙음도

아이는 눈치채고 말았다. 다급하게 꿈을 빨리 꾸며내야 했다. 그래야 더 이상 늙은 엄마가 되지 않으니까.


“아.. 엄마 꿈은... 말이야. 그래. 책 내는 거! 그건 엄마가 작가니까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엄마! 그러면 다양한 꿈을 꿀 수 없잖아. 그러지 말고 엄마가 25살이라 생각해. 새로운 꿈을 해 보고 또 서른 살 돼서 다른 일이 하고 싶으면 그때 다시 25살로 돌아가면 돼.”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아이의 주문이었지만

어쩌면 마음가짐으로는 아이의 대답이 현명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아이의 말처럼, 진짜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꿈이란 것은 생각도 해 보지 않고

미리 접어 두었을지도 모른다.


난 지금 내 나이가 너무 무겁고 버겁지만, 아직도 족히 30-40년은 남았을 내 인생에 무엇을 못 할 게 있을까 싶다. 그저 늙어버린 내 마음이 문제였다.

     

여든을 바라보는 친정엄마가 방송으로 정신없던 나 대신 아이의 영어 숙제를 봐주다가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말은 안 했지만 아마도 영어유치원에서 섣부르게 배운 손녀딸에게 알게 모르게 무시를 당했던 이후일 것이다. 처음엔 문화센터까지 다니는 열정을 보이셨지만 그마저도 추워지면서 그만둔 게 지난해 겨울이다. 그리고는 잊고 지냈는데 매일매일 꾸준히 교육방송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게 됐다.  


내 마음속으로는 굳이 이제 와서 머리 아픈 영어 수업을 들으면 뭐 할까 싶은데 엄마는 생각이 달랐다.

      

“저번에 여든 넘은 할아버지가 방송에 나왔는데 미국 사람처럼 영어를 술술 하더라. 70에 영어를 시작했대. 

매일 꾸준히 10년을 하니까 미국 사람처럼 영어를 하더란다. 옛말이 하나 안 틀려. 물방울이 바윗돌을 깬단다.”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너무 교훈적인 뻔한 레퍼토리였으나 어쩌면 아무것도 꿈꾸지 않고 현실에 허덕이며

늘 결핍을 안고 사는 나에게는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찌르는 말들의 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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