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da Nov 11. 2019

시어머니 골품제!  딸 > 가사도우미 > 며느리

김장 노동에서 해방되는 비책

  


“내일 김장할 거니까 언니네로 오면 된다. 몇 시에 올 거니?”     


시어머니의 통보에 난 잠시 할 말을 찾느라 머릿속이 286 컴퓨터쯤으로 느리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내일도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하고, 아이템과 취재가 어찌 되는지에 따라 나의 퇴근 시간도 정해지는데,

대부분의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의 일정은 관심 밖이듯,

나의 시어머니도 주말이 아닌 평일을 김장하는 날로 정했다.      


사실 프리랜서이자 생방송 작가였던 나는 뭐 주말이라고 딱히 쉬는 날이 아니기도 했지만,

왜 하필 평일에 김장을 하는지 그 깊은 속내를 나는 아직도 짐작하지 못한다.  

그저 그 당시에는 시누이네 가족이 모두 쉬는 휴일에 김장으로 북적거리기엔 적절치 않았나 보다 라고

짐작했으나...     


“아... 일이 언제 끝날지 가늠이 안 되긴 한데요...”

“끝나는 대로 오너라.”      


명쾌한 답변. 끝나는 대로 간다면 난 12시가 넘어서 신데렐라처럼 한쪽 구두는 벗은 채 가도 되는 것인가?     

그러나 나의 바람과 달리 나의 남편은 퇴근시간이 지나자마자 날 데리러 왔고

그 당시 나는 방송보다 시어머니의 말씀이 무서웠으니, 시누이 집으로 함께 향했다.

      

“끝나면 바로 좀 오지...”     


역시나 한 마디 타박을 놓치지 않고 훅 들어오는 시어머니.

이미 시누이 집은 김장 준비로 분주했고, 나는 얼른 앞치마를 둘러맸다.

그리고 나서야 나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시어머니와 누군지 모를 아주머니가 함께 김장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며느리예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배워야지, 뭐 어째....”

“아, 그 며느님이구나. 김장은 아침 일찍부터 해서 오후에 딱 끝내는 게 좋은데..

 며느님이 워낙 바쁘시다고 하니까.. 호호 ”     


그 며느님? 이 분은 이미 나를 아는 걸까? 시어머니 지인인가?

프리랜서이긴 해도 나도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평일 아침부터 김장을 하라고?

갖가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궁금증은 금방 해결됐다.

그 정체모를 아주머니는 시누이가 일주일에 두 번 부르는 가사 도우미였다.  

그리고 그 날은 김장 때문에 특별히 오신 거란다.      


김장이 처음이었던 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가사도우미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멀뚱히 서 있자,

채부터 썰라며 시어머니가 채칼을 내밀었다.      


“무는 칼로 채쳐야 맛있는데, 넌 칼질이 그러니 채칼이라도 써야지 별수 있니.”     


무림고수의 칼질까지는 아니어도 셰프의 현란한 칼질쯤은 어깨너머로 배우고 왔어야 할 며느리가

칼질도 제대로 못해 채칼을 써야 하니 두 번째 훅이 훅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다 함께 할 줄 알았던 김장은 나와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가사 도우미

이렇게 셋이서 하고 있었다.        


“어머니, 언니네는요?”

“걔들은 오래전에 여행을 예약해둬서 오늘 아침에 갔지.”     


난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여행? 그들은 여행 가고 난 지금 일하다 말고 시누이네 김장을 담그러 온 것인가?’

      

우리는 그 당시 애도 없었고, 서로 바빠 일 년 내내 김치라고는 많이 먹어야 3포기 정도였다.

시누이 또한 당연히 김장 노동에 동참할 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또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와 시어머니, 그리고 시누이의 가사 도우미 지금 이렇게 세 사람이 시누이네 김장과

우리가 겨우 조금 먹을 김장을 담그기 위해 모였다는 그 사실에 나의 평정심은 급기야 가출을 하고 말았다.      

진두지휘는 시어머니가 거의 입으로 했으며, 나머지 삽질은 나와 시누이의 가사 도우미가 하고 있었다.     



칼질도 영 고되긴 하지만, 채칼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가락 사이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아이고~ 이 무 굵기를 어째~ 며느님이 집에서 밥을 안 해 먹나 보네요.  채칼을 써도 무채가 들쭉날쭉한 게.. "

“그러게 말이에요. 집 밥을 먹어야 속이 든든해서 밖에서 일도 제대로 할 텐데...

 난 우리 아들 어릴 때 아침밥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니까.”

      

나의 존재는 그곳에 없는 냥, 시어머니와 도우미 아주머니의  안티인 듯~ 안티 아닌 안티 같은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물론 나도 그 대화에 열심히 동참했다. 그게 속말이어서 슬펐던 것 빼고는.      


‘누구는 산뜻하게 여행 가고 누구는 그녀의 도우미님과 함께 김장 노동에 동참하고,

 이 시베리아 벌판에 개나리가 만발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내 집 개를 발로 차면 남도 같이 찬다는데 딱 그 짝이었다.

그 사이 메인 작가의 빈자리를 느끼며 후배 작가들은 쉴 새 없이 문자를 보내며 이건 어떻게 해요?

이건 지금 결정할까요? 라며 나의 노동을 보태주고 있었다. 정말이지 딱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날 자정이 넘도록 김장 노동을 한 나는 고생했다는 공치사 한마디는커녕,

오히려 정리도 못한 채 먼저 일어서서 죄송하다는 말까지 하고 나서야 집으로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김장 김치를 가지러 갔을 때,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 날 우리가 몇 시까지 김치를 담근 줄 아니? 알타리에 깍두기까지..

 아이고, 나는 몸살이 나서 이제야 좀 나아 진거야. 어찌나 삭신이 쑤시던지.. "

“엄마 좋아하는 거 먹으러 나가자, 그날 고생하셨으니 몸보신시켜 드려야지.”     


모자의 대화 속에서 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 날 뒷정리를 못하고 먼저 오긴 했지만,

나도 엄연히 김장 노동에 동원됐고 난 그다음 날도 출근해서 뼈 빠지게 돈 벌었는데

마치 김장 김치만 딸랑 얻으러 온 며느리 취급받는 듯 한 이 느낌은 뭘까?      


“도우미 아줌마한테 사례비도 더 얹어 줬다니까... 하도 미안해서..  담부터는 더 일찍 시작하자.

 일 년에 한 번이니까 미리 시간 비워라. 처음부터 끝까지 해 봐야 김장을 할 수 있는 거지.”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이 말이었다. 일찍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고 가라는.

시누이가 없는 날을 굳이 김장 담그는 날로 정한 것도,  김장을 돕고도 마치 김치만 얻어먹는 냥 취급받는

이 부당함도 어이가 없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걸 난 그날 깨달았다.      


“어머니!!”

“왜?”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아마도 내 목소리가 때 아니게 비장하게 느껴졌나 보다.

난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어릴 적 선생님 앞에서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제가 언니네 가사 도우미랑 같아 보이세요?”

“그게 무슨 말이냐?”

“저 김장날 올 수 있어요. 그러면 언니도 함께 해야죠!  언니는 가사 도우미 부르고 전 직접 해야 하나요?

 가사 도우미 불러도 되는 거라면 진작 말씀하시죠. 저도 그만큼은 벌어요. "

“아니 내 참 기막혀서. 김장하는데 며느리가 안 와? 지 생각해서 도우미도 불렀더니 그게 니가 할 말이야?”

     

마지막 말은 목구멍으로 삼켰다. 혹여 지난번에 못 잡힌 머리끄덩이를 잡힐까 싶어서...

     

‘며느리 생각해서 가사 도우미를 부르셨다고요? 어머니 배려에 눈물이 납니다. '


그 당시 난 무슨 용기로 그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그 날 나의 무섭고 드센 시어머니는 무슨 일인지 나의 머리채를 잡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이듬해부터 김장날에 날 부르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드센 시어머니에게 완승을 한 감격의 첫 순간 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상황이 자신이 보기에도 불편하고 부당하게 느꼈던 남편이 나도 모르게 시어머니와 담판을

지은 날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의 지론은 그렇다.  김치 사 먹는 게 제일 가성비가 낫다!!!

그래도 내 자식, 며느리는 빼고~ 내 자식 김치는 내 손으로 해먹이고 싶다면

며느리의 노동력을 착취하지 말고 내가 아이를 키웠을 때처럼 직접 해 먹이자 라고!!     

작가의 이전글 친정엄마는 시엄마와 다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