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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da Oct 19. 2019

친정엄마는 시엄마와 다를까?

    결국 나에겐 모두 다 힘겹다


“배낭에 뭐가 이리 많아?”     


학창 시절 학생 주임이 가방 검사를 하던 그 날이 왜 생각났을까?    


“내 약이야. 필요하니까 넣었지. 그냥 냅 둬!”

“약이라고 해 봤자 이 통 하나면 되지. 가방에 뭐가 들었기에 손도 못 대게 해?”  

  

배낭에 들어 있는 온 짐을 다 헤집어 놓으며 엄마가 신경질적으로 퍼붓자

아빠는 벌써부터 질린 표정으로 사위가 들을까 난감해한다.     


딸 가족과 모처럼의 여행에도 엄마는 아빠와 함께 기차를 타고 오겠다고 했다.

차를 타면 힘드니 따로 와서 여행지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그렇게 매사에 까다로운 엄마 덕에 우린 여행 내내 살얼음판이었고,

결국 마지막 날 사달이 난 것이다. 그깟 배낭에 짐이 뭐라고...     


“엄마가 들어? 아빠가 매는 건데 짐 좀 많으면 안 돼? 필요하다잖아.”

“다들 나만 왜 미친 사람 만들어? 왜 나만 나쁜 사람을 만드냐고?”    


보다 못한 내가 거들었더니, 고작 배낭의 짐 때문에 시작된 화풀이는

왜 자신만 몰아세우냐는 넋두리로까지 이어졌다.

누구라도 자신을 지적할라치면 고슴도치가 힘껏 뾰족한 가시를 세우듯

엄마는 자신의 감정에 날을 세우며 모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생선구이가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서도 우리는 꾸역꾸역 밥만 삼키며 침묵해야 했고,

관광지에서도 엄마는 홀로 10여 미터쯤 뒤에서 따로 오며

자신의 감정이 상했다는 걸 털끝만큼도 숨기지 않았다.     


몇 년 만에 어렵게 함께 온 여행, 설령 감정이 상했더라도 모두의 추억을 위해서

잠시 내 감정을 마음의 서랍에 넣어 둘 것 같은데, 엄마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수많은 세월을 겪어 왔다고, 그 시간만큼 인격과 인내심이 수양되는 건 아니었다.

 



매사에 여리고 마음 약한 엄마였지만 자신의 감정과 정체성 앞에서는 늘 자기중심적이었다.    


“이거 아니라고. 이거 말고. 바꿔줘! 으앙~”

“네가 고른 거잖아. 그러면 아까 제대로 고르지. 이미 샀는데 어떡해~”     


어릴 적 동생은 문방구에서 잘 못 사 온 물건이 있거나 그 물건이 맘에 들지 않으면 떼를 쓰며 울었고,

누군가 앞에 나서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엄마는

어떡해만 연발하거나 교환 대신 동생이 원하는 물건을 다시 사는 걸 선택했다.

   

엄마가 바꿔다 주면 될 것을 왜 저렇게 해야 하나? 그런 모습이 어린 내 눈에도 불합리하게 보였던 듯하다.

    

‘아 뭐라고 말하지? 아까 동생이 사 갔는데요, 잘 못 샀대요. 바꿔 갈게요!’    


문방구로 가는 그 길목에서 방망이질하는 내 심장을 애써 감추며 난 수 없이 해야 할 말을 연습했다.  

손에 땀이 흥건하게 배일 정도로 긴장했지만 결국 그 날, 난 물건 교환에 성공했다.

그 날 이후 잘못 산 물건을 환불하거나 교환하는 것도 내 몫이었고,

어디서든 불합리한 상황을 따져 물어 바로 잡아야 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그 시절엔 그게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겼지만 진심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인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내 성격이 어떻든 간에 아이를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건 바로 엄마니까!    


엄마는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타인 앞에서, 궂은일 앞에서 한 발자국 뒤로 주춤 물러선다.

그건 어릴 적부터 몸에 배어 온 습관 일지 모른다.     

여리디 여린 감성을 타고났으며, 미모 또한 남달랐던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유난히 아꼈던 딸이었으며,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대신 두 오빠들이 뭐든 다 해결해 주었다고 한다.

물론 결혼 후에는 울 아빠가 그 역할을 도맡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온실 속 꽃처럼 살아온 듯하다.     




어린 딸에게 여러 경험을 해 주고 싶어 주말 농장을 신청한 적이 있다.

엄마가 소녀처럼 설레는 눈빛으로 사위에게 던진 말은       


“텃밭에 꽃 심자! 난 야생화가 참으로 이쁘더라. 바람에 하늘거리는 게..”    


그저 시골에 흔하게 널린 땅도 아닌, 전원주택 앞마당도 아닌,

도시 한 복판에 추첨까지 해서 겨우 얻어낸 그 귀한, 한 고랑짜리 텃밭에

상추며 고추며 호박을 종류 별로 심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우리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꽃밭을 만들고 싶었던 거다.      


그 해맑은 얼굴로 야생화를 심었으면 하는 장모님의 말은

사위에게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충격적이자 엄마의 정체성을 낱낱이 보여주는 신선한 멘트였던 듯하다.

  

지금도 엄마는 아빠 없이는 지하철도 못 타고, 어디 한 곳도 가지 못하고 가지 않으려 하는

어리바리 불안불안 공주과다.

그러면서도 가족에게는 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모든 감정을 다 쏟아내는...    


내가 애를 낳기 전에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늘 불안하고 안쓰럽고 측은했는데,

지금에 와서 너무 지긋지긋한 이유는 무엇일까? 굳이 이제 와서.

    

사실 이런 감정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만큼 나에게는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보니 친정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울컥한다는데..

나도 내 엄마가 안쓰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당황스럽게도 왜 나는 친정 엄마가 더 객관적으로 보이는 걸까?     


엄마라면 모든 걸 희생하며 모든 걸 참아내야 한다는 것처럼

친정 엄마만 생각하면 늘 가슴 한편이 시린, 안쓰러움이 느껴져야 한다는 것도

어쩌면 누군가 만들어 놓은 또 다른 프레임은 아닐까 라며 애써 위안해 본다.       


시엄마는 너무 드셌고 친정 엄마는 너무 여렸다.

드센 시엄마는 넘어야 할 언덕이었으며, 너무 여린 엄마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었다.     

결국 상황은 극과 극으로 달랐지만 두 엄마 모두 나에게는, 아직도 너무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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