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n세 이모들과 떠나는 해외여행
우리 할머니는 마흔이라는 나이에 늦둥이 막내딸을 낳으셨다.
'막내딸이 결혼하는 건 보고 죽어야 할텐데.' 그게 할머니의 입버릇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막내딸이 결혼하여 아들딸을 낳고, 그 아들딸이 장성하는 모습도 보신 뒤에야 아흔아홉세라는 연세에 영면에 드셨다.
그리고 그 막내딸이 바로 우리 엄마다.
그러니 나에게 30대 초반인 나에게 7n세의 이모 두 분이 계시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부모님과 이모들은 나의 오랜 여행메이트이다.
언제부터였는지 잘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이모들과 나는 아빠의 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좋은 풍경을 보고 맛있는 걸 먹으러 다녔다.
내가 커갈수록 뒷좌석은 점점 좁아져갔다. 그러면서도 내가 자란만큼 이모들이 나이들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정동진에 간 이모들과 나는 순두부 집에 들어가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럭저럭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관광지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데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흐뭇하다는 듯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젊은 아가씨가 모시고 왔나보네."
기특하다는 투가 영력했고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여행에 따라 붙은 건 나였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 큰이모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에는 입이 튀어나왔다.
"이모에요. 할머니 이모."
왜 이모가 할머니지? 이모는 이모인데.
물론 큰이모가 무슨 뜻으로 말씀하신 건지 이해했기 때문에 나서고 들진 않았다.
게다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모들의 주름살이 예전보다 더 깊어진 듯도 했다.
그때부터 그 한마디가 계속 마음 한구석에 박혀 있었다. 이모에요. 할머니 이모.
하지만 그로부터 또 몇 년이 흘렀고, 나는 이제 더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우리 이모들이 할머니구나. 산행을 좋아해 산악회 활동도 했던 이모들이 이제는 족저근막염과 관절통으로 계단도 오르기 힘든 할머니가 되었구나.
그리고 내 이런 고찰은 이모들과의 여행을 통해 찾아왔다.
조금 돌아걷더라도 계단보단 엘리베이터로.
너무 오래 걷는 코스는 없게.
중간 중간 카페에서 쉬어주는 것도 잊지 않기.
(욕조는 올라서서 씻기가 불편하니까) 숙소도 되도록 샤워부스가 있는 쪽으로.
'꽃보다 할배' 이서진 씨의 심정이 충분히 공감가는 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껏 한 번도 해외여행을 못 가본 작은 이모를 위해 2023년 내 7n세 여행메이트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감행했다.
그 일지를 여기 브런치에 남기려 했지만 글을 끝까지 쓰지 못하는 병이 깊어 역시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다시 글을 남겨보려 하는 이유는 언젠가 나의 여행메이트들이 더이상 나와 여행을 떠나게 되지 못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추억할 수 있길 바라서이다.
나와 내 여행메이트들은 곧 또다시 일본 여행을 앞두고 있다. 작은 이모와 달리 제법 많은 곳을 돌아다니신 큰이모는 이제 해외 여행은 더는 안나갈거라 하시더니 작년에 나와 일본을 다녀온 이후 그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고 하신다.
한가지 걱정이 있다면 젊은 사람들도 혀를 두를 정도로 무덥기로 소문난 일본의 7월을 감당해야한다는 것이다.
P인 나는 이럴때만은 파워 J가 된다. 비타민은 진즉 면세구입품에 담아두었고, 일본 현지에서 판다는 쿨시트도 찾아두었다.
모쪼록 아무도 일사병 걸리는 일 없이 건강히 돌아올 수 있길.
가방이 무거워져도 물병 하나는 꼭 넣어두고 다녀야겠다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