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삼 년은 있어야 친정집에서 내 짐이 다 빠진다더니. 요즘 집 정리를 하고 있는 엄마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을 가져온다. 엊그제는 여고생 때 산 19금 BL만화책 -심지어 제목도 <절정>, 차마 펼쳐보지도 못했다-을 가져와서 김서방 서재에 꽂아두더니 오늘은 고3 때 사진을 가져왔다. 틴박스로 하나 가득.
"이걸 왜 가져왔어"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는데 옆에 있던 친정아빠가 "거봐"라며 엄마를 몰자 "아니야 잘했어 고마워"로 수습했다.
꼬라지가 가관이었다. 그때 몸무게가 70kg쯤 나갔으니까 만삭 때보다 덩치가 컸던 셈이다. 튀는 걸 좋아해서 성냥머리같이 벌건 털실내화에 사복 니트를 꼭 챙겨 입었다. 그 와중에 표정은 참 해맑다. 뒤로 갈수록 정말 잊고 있던 사진들이 나왔는데 필카 인덱스도 섞여있었다.
사진은 없고 작게 썸네일만 남아있는 건데, 그중에 외할머니얼굴이 보였다. 요양병원에 계셨을 때 뵈러 갔다가 찍은 것 같다. 병원 옷을 입고 있는 백발의 할머니. 사진을 보니 어렴풋이 그 날이 생각났다. 할머니한테 간다길래 나는 얼른 필카를 챙겼고 엄마는 그걸 뭐하러 가져가냐고 했던 것 같다. 엄마는 외갓집에 관련해서는 항상 그렇게 박했다.
할머니에게는 여섯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었다. 그 하나 있는 딸은 첫 애를 8월 말에 낳았는데, 하필 그 해에 태풍이 늦게 와서 다 익은 벼가 드러누워버렸다. 당장 건져서 세워놓지 않으면 다 키워놓은 노란 낱알이 물에 잠겨 검게 썩을 판이었다. 할머니는 정신없이 논에 나가 허리 한번 못편채 일했고 일했고 일했다. 딸은 자기가 낳은 아기를 보러 가고 싶었지만 남편도 엄마도 없어 발만 동동굴렀다고 한다. 며칠 뒤 찾아온 할머니에게 딸은 참 빨리도왔다고 불퉁거렸다고 했다. 할머니는 딸에게 고생했다거나 미안하다는 말도없이 가만히 앉아있다가 꼬깃한 봉투만 찔러주고 가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건조하게 하는 친정엄마의 눈이 참 깊었다.
친정엄마가 짐 정리를 더 하다 보면 인덱스에 있던 그 사진도 나올 것이다. 엄마와 할머니와 동생이 나란히 찍혀있는 사진 하나. 그리고 밝은 벽을 등지고 희미하게 웃고 계신 할머니 사진 하나. 그 두장의 사진을 엄마가 꼭 발견하기를 바라며 나는 아무런 언질도 해주지 않았다. 내일 친정엄마가오면 사진을 꼭 찍어둬야지 애기 사진 말고내 엄마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