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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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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신 Oct 13. 2022

잊었다 말하면 거짓말이겠지.

사랑에 대하여




여전히 묻는 이들이 있다. 이제 좀 괜찮아졌냐고. 나는 꽤 두꺼운 굳은살이 박인 듯 영혼이 부재된 레퍼토리인 양 답한다. 괜찮아진지는 꽤 됐다고. 그와는 반대로 여전히 그들이 내게 질문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처럼 보일 수도 있을 테니깐.


처음으로 연인을 잃은 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의미의 진실을 마주했다. 좋지 않은 추억과 감정은 휘발되고 언젠간 또 다른 인연과 함께 좋은 삶을 일궈 나아갈 것이란 막연한 상상과는 반대로 좋던, 좋지 않았던 그와 함께 했던 추억과 감정은 여전히 숨이 붙어 있었고, 또 다른 인연으로 지나간 인연을 잊는다는 건 삶을 매우 투박하게 바라본, 혹은 무지한 위로를 건네기 위한 우리의 오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팠다. 훨씬 힘들었고, 훨씬 더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인내뿐이었다. 그 한계치에 달하면 나도 모르게 연락을 남기는 어리석은 객기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내 이별은 이렇게 구질구질할 줄 몰랐지만 역시나 나도 크게 다르지 사람이었다. 쿨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이제는 분명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잊히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더 이상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 마음에 남은 잔존감을 이유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건 성숙치 못한 행동이었다. 이미 치기 어린 처사를 할 만큼 했기 때문에 이젠 어리광 부리는 나를 거둬들일 때가 됐다.


잊는다는 것과 괜찮아졌다는 건 별개의 이야기다. 잊혔다고 해서 괜찮아지는 것도, 잊지 못했다고 해서 괜찮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잊지 못했지만, 괜찮다. 그것이 우리네 삶이고 나라는 한 사람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큰 흔적이 하나 생겼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상처가 났을 땐 아픔이지만 시간이 지나 고통이 걷히고 딱지가 앉아 새 살이 돋아나면 그저 흉터이자 흔적에 불과하다. 그런 이성으로 나의 아픔을 누르는 것이, 그렇게 차차 나의 삶을 되찾아가는 것이 나를 향한 예의이다. 그리고 그를 향한 예의이기도 하다.



잊었다는 구차한 거짓말로 우리의 지난 관계를 덮어버리고 싶진 않다. 마음 안에 숨결을 당당히 인정하되 떠나간 이의 안녕을 진심으로 비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멋진 사람의 대처다. 이미 나만의 답을 알고 있다면 주저할 이유도, 거스를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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