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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Mar 04. 2024

어느 목요일에 쓴 일기

자전거 수리받고 쓴 일기

요즘 일기를 잘 안 써서 올려보는!

작년에 쓴 일기



 아파트 앞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전거 수리 트럭이 와 있어서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보조바퀴가 자꾸 휙 젖혀지고, 타이어 바람이 너무 잘 빠져서 여름이가 타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사장님에게 자전거를 보여주면서 내가 "이쪽 바퀴가 이상해요.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요." 했더니, "얘가 이상한 게 아니고 아저씨가 잘못했네~" 하는 대답이었다. 좋은 취미는 아닌 거 알지만, 남편 잘못을 지적하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나는 이때다 싶어 말을 보탰다.


"남편이 보조바퀴를 달았는데, 뭐 좀 잘못되었죠? 애가 넘어졌어요. 타이어에 바람도 자꾸 빠지고..."


간결하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보조바퀴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사장님의 솜씨를 지켜보니 남편이 대충 달아놓은 바퀴의 자리부터 모조리 틀렸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휴, 완전히 잘못 달았네요? 남편이."

사장님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저씨가 잘못했네. 신랑이면 잘했을 텐데, 남편이라 잘못했네."

 

 이게 무슨 노잼 언어유희인가 싶었지만, 알 것도 같았다. '신랑'이란 단어는 오글거리고 이상하다. 결혼식이 끝나면 아무도 아내를 '신부'라고 부르지 않잖아.(전에 어디선가 이런 내용을 읽은 적 있다) 나는 '우리 신랑'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다정함이 싫다. 그건 연애할 때 여자 사람들이 친구들에게 하루 종일 '우리 오빠'이야기를 할 때 느끼는 오글대는 불편함과 비슷하다.


 내가 절대 '신랑'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 이유, 비난 섞인 말을 할 때 '남편'이라는 단어에 나도 모르게 힘을 준다는 걸 자전거 사장님이 바로 느낀 걸까. 그리고 기성세대 아저씨답게 '좀 더 여성스럽고 다정한 아내 노릇'을 하면 남편도 '좀 더 신랑스럽게' 행동할 거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너무 오버 아닌가 싶지만, 평소에 워낙 자주 "무뚝뚝한 아내"라는 점을 지적당해서 이렇게 일기를 쓴다.


 어쨌든 자전거 사장님을 만나서 참 다행이다. 우리 집 차에는 자전거가 들어가지 않고, 수리점은 걸어서 한참 가야 하는데, 남편이 자전거 수리점에 다녀올 확률은 0에 수렴하니까. 사장님 덕분에 내일 여름이가 자전거를 탈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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