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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Dec 23. 2023

크리스마스에는 따스한 마음

요즘 연말이 좋아요.


심드렁한 내가 가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10년 전의 나였다면, 그래서 딱히 슬프지는 않다고, 아쉽지 않다고 말했을 거예요. 하지만 오늘 앞에 앉은 친구들의 눈동자가 촉촉해지는 걸 보니, 연말 분위기나 트리의 반짝이는 전구 장식을 보고 흠, 하고 마는 내 모습에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막을 수 없더군요. 예쁘다! 하고 감탄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꽃트럭을 만나면 매번 꽃을 사고, 올해는 크리스마스트리도 장식한걸요. 정말이지 예쁜 것들을 좋아한답니다.


작년 이맘때 일기에는 산타가 동화 속 왕자나 다름없는 존재라고 여기며 살아온 삶에 한이 깊었던 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정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한없이 말랑말랑해진 나도 있었고요. 세월이 흘러 나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축제가 되었다고 믿었어요.

그림티 모임


그런데 이상하지요. 오늘 글쓰기 모임에서 '단란한 가정에 관한 환상과 체념'을 짧게 말하려다 자꾸만 말이 길어졌어요. 어쩐지 사람들에게 나를 변명하는 것만 같았지요. 사뭇 도인처럼,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려고 아름다운 순간조차 덤덤히 넘기려 애쓴다고 말하다가 앞에 앉은 언니(누가 뭐래도 언니니까)의 안타까워하는 목소리에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어요. 나 대신 울어주는 주르핑이 있어서, 언니 옆에 앉은 달님의 눈도 그렁그렁해서, 가까스로 차분할 수는 있었습니다.

실은 어린아이 같은 내 마음을 안아주고 싶다는 말에 폭 안기고 싶었어요.


차가운 공기가 스미는 저녁에 아이의 손을 잡고 케이크를 찾으러 나서다가 울고 싶었던 연말의 어느 날이 떠올랐어요. 아마도 6학년이 끝날 무렵이었을 거예요. 보통 겨울방학은 시골에서 보냈는데 이 날은 어쩐 일인지 부모님과 동생들과 대구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마 이날 전후로는 그런 날이 없었을 거예요. 생전 없던 일이라 기억에 남았나 봐요. 다섯 식구가 다 같이 버스를 타고 시내 나들이를 갔거든요.

지풍화에서 아름다운 순간

온 거리가 휘황찬란했어요. 대구 시내를 걸어 다니며, 엄마 아빠가 어떻게 만나서 결혼을 했는지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2학년이던 남동생이 구세군 냄비에 동전을 넣고 싶어 해서 멀찌감치 선 채 기다려주던 순간도 떠올라요. 동생은 아빠가 준 동전을  냄비에 넣고 웃는 얼굴로 뛰어왔어요. 나는 구세군 냄비에 지폐를 넣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딸랑딸랑하는 종을 흔들며 빨간 옷을 입고 웃는 구세군 아저씨가 멋져 보이더군요.


우리 가족은  외식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시골에는 식당이 없고, 장날에 짜장면을 나눠먹는 건 엄마와 가끔 하는 일, 아빠와 제대로 된 식당에서 외식을 한 건 남동생이 군대에 간 후였습니다. 아마도 그날 동아백화점이 있는 거리에서 우리는 저녁식사를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5시부터 깜깜한 겨울 저녁에 노란 조명을 밝힌 식당이 줄지어 있었어요. 어디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가게에 가야 할지, 칠성시장이 고향인 엄마는 알고 있었겠지만, 외식은 사치라 여기는 아빠 눈치를 보느라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신용카드도 쓰지 않았으니까요. 나는 목을 쭉 빼고 메뉴판이 잘 보이는 가게를 살펴보았습니다. 만두나 국수 정도는 먹으러 갈 수 있었을 텐데, 결국 외식은 못했습니다.


시내 구경도 좋지만 배도 좀 고프고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하고 복잡한 이 거리에 어쩐지 우리 가족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렇잖아요. 뭐가 얼마나 비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들 가는 식당에 못 들어갈 처지라는 판단이 슬프잖아요. 성냥팔이 소녀까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초라해지니까요.

아까워서 어찌 태우나요

다시 버스를 타고 우리 동네 시장에 붙은 작은 쇼핑몰에 갔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갈 나의 가방을 사주기로 한 날이었거든요. 보송보송한 곰돌이 패치가 붙은  황갈색  가방을 샀어요.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는데, 종류가 거의 없었어요. 앞에 있는 보조칸에는 영어로 HOUSE라고 쓰여 있었어요. 몇 달 전부터 다니고 있던 학원에서 알파벳과 발음기호를 배운 나는 '호우세'가 뭘까? 무슨 뜻일까? 정말 오랫동안 궁금해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좀 노는(6학년 때는 놀지 않았던) 친구가 유치한 가방이라고 놀릴 때 뜻을 알았어요. "하우스? 집?"


가방을 사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한 장씩 사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사과를 깎아먹고 그랬겠죠. 많이 걸었으니까 배가 고파서 많이 먹었을 거예요. 그리고 잘 놀고 잘 자고 잘 지냈어요. 6학년 졸업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는 질문에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자"라고 말했던 그때의 나는 엄마가 그리워하는 시절의 나이기도 했어요. 어른스럽고 동생들을 잘 챙기는 큰 딸.


그 시절의 내가 이렇게나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고 마흔이 넘어서까지 크리스마스 전등을 서글프게 바라볼 줄은 몰랐어요. 기어코 글로 쓰게 될 줄도 몰랐지만요. 그러니까 오늘 내 마음을 알아봐 주고 안아준 사람들,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이 참 길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받은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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