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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Mar 27. 2024

어둠이 무섭다는 말

그림책 <어둠이 무섭다고>를 읽고


 아이들은 누구나 어둠을 무서워하고, 어른이라면 밤의 어둠 따위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어른이란 장롱 밑이나 책상 의자 자리에서 귀신이 냉기를 뿜으며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유치한 두려움은 느끼지 않는 법이다.


초등학교 시절 괴담집이 유행할 때였다. 친구 집에서 본 공포 단편선이 무서우면서도 부러웠던 나는 큰 용기를 내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실린 책을 한 권 샀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점점 닭을 닮아가는 아내의 눈이 닭처럼 아래 눈꺼풀부터 감기더라'라는 이야기가 아직 기억난다. 표지에 한쪽 눈을 벌겋게 드러낸 귀신이 있었는데 슬쩍 홀로그램으로 번들거리기까지 해서 공포 그 자체였다. 펼치지 않아도 책에서 무서운 기운이 흘러나와 좁은 책상에서 이리저리 숨겨보다가 냅다 학급문고에 꽂아버렸다. 그 시뻘건 눈동자의 책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을까?


 옆집처럼 생긴 주인집 화장실을 쓰던 집에 살 때는 어두워진 다음이 문제였다. 항상 따라가 주던 할머니가 더 이상 나를 따라가 주지 않을 때, 유행하던 이야기는 '빨간 휴지, 파란 휴지'였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엄청 무서운 '백장미와 흑장미'라는 것도 있었는데, 화장실에서 미적대지 않게 하는 데는 괴담만 한 것도 없었다. 나는 늘 번개같이 빨리 볼일을 보고 재빨리 방으로 돌아왔다.


 물을 내리면 쏴~소리와 함께 수세식 화장실로 끌고 들어간다는 자주 할멈, 잠든 아이들의 발목을 잡아 보고 밖에 나갔다 온 녀석을 골라낸다는 수학여행 귀신까지, 괴담은 오래오래 내 곁에 있었다.

20대에는 늘 술을 마시고 겁도 없이 밤길을 돌아다녔는데, 그때도 가끔 혼자 집에서 자는 날은 무서웠다. 거실에 투니버스 채널을 작은 소리로 켜두고 심슨 가족 음악을 들으며 겨우 잠들곤 했다. 어둡고 조용한 방이 그리도 무서웠던가. 결혼을 하고도 혼자 집에 있을 때는 텔레비전이라도 꼭 켜두었다. 어둠과 침묵은 여전히 견디기 힘든 무언가였다.

 내 생에 가장 깜깜한 밤은 돌이 되지 않은 아기와 함께 잘 때 만났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깜깜한 밤"이었다. 내가 읽은 수면 교육 책에서는 밤이 충분히 어두워야 아이가 잘 잔다고 쓰여있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방에 암막 커튼을 치고 방문을 닫아 아주 컴컴한 상태를 만들었다. 아기는 5개월쯤부터 잘 자는 편이었다.(물론 수면 교육이랍시고 애를 울리기도 많이 울렸다) 새벽에 간혹 침대 구석에서 낑낑 소리를 내거나 쿵 하며 발차기를 하긴 했지만 주변 엄마들 경험담을 들어보니 이만큼 잘 자는 아이도 드물었다.


 문제는 나였다. 고질병인 우울과 강박이 임신, 출산을 겪으며 깊게 찾아왔다. 나는 캄캄한 밤에 혼자 깜짝 놀라 자꾸 깨어났다. 방은 칠흑같이 어둡고 침침한 눈으로는 팔을 뻗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숨소리마저 작은 아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내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머리맡이 창쪽인지 방문 쪽인지도 모르겠고 다 괜찮은 건지는 더 알 수 없는 밤들. 돌이켜보면 그 정도는 괜찮았을지도 모르는, 혹은 정말 큰 문제에 봉착한 것일지도 모르는 시간들이었다. 어둡고 캄캄한 그 밤들.


 긴가민가할 때도 있지만 나는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 아이가 고집해서 켜두는 수면 등이 거슬리고,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진실도 깨달았으니 이만하면 어른이라 할 만하다. 밤에 불을 끄고 잘 수 있다고 마음이 단련된 어른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적어도 어둠이 무섭기만 한 시절은 지나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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