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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Apr 12. 2024

나무의 4월

23년과 24년의 일기

 나무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가지 마디에서 뾰조록하게, 돌돌 말리거나 꽁꽁 싸맨 모양으로 있던 잎눈이 벌어지는 4월. 아직도 갈색 잎을 달고 있는 왕참나무와 매끈한 배롱나무를 빼고 모두 모두 새 잎을 뻗어내고 있다. 걷는 길 구석구석에 투명한 연두색 잎이다. 8년 만에 걸어본 동네 하천 산책로에는 아기였던 버드나무들이 자라 있었다. 오늘 빛과 볕이 완벽한 봄날이라 요가를 마치고 굴밥을 사 먹은 후에 쿠폰으로 얻은 커피를 손에 들고 친구와 긴 산책을 했다.


 운동을 더 하자고 나선 길이었지만 나무 사진을 찍느라 자꾸만 멈춰 섰다. '딱 지금만 만날 수 있는 어여쁜 나무의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질리도록 많이 피는 영산홍과 박태기나무 꽃도 실컷 봤다. 무리 진 영산홍은 감흥이 없지만, 경사진 둑길에 외따로 떨어져 핀 붉은 꽃은 고와 보였다. 영산홍 무리에 덩그러니 피어난 황매화, 말채나무 둥치에서 향을 내는 작은 라일락도 만났다. 내가 보지 않는 사이 키가 자란 나무들이 바람에 넘실대는 모습을 구경하며, 오래 밖에 머물렀다.

 커피를 다 마시고 벤치에 앉아 일광욕으로 시간을 보냈다. 해를 쬐는 일은 중요한 할 일이었다. 읽고 그리고 쓸 것이 있었지만, 다 미루고 조용한 벤치에서 친구와 해바라기를 했다. 친구 덕분에 여름이와 편히 병원에 다녀오고, 또 친구네 집에서 맛난 저녁밥을 얻어먹었다. 일주일 동안 냉장고에 있었다던 초콜릿케이크를 싹싹 긁어먹고 찜닭에 밥까지 먹는 우리 모녀를 보며 친구가 놀라는 것도 재미있었다. 아이들에게 <수박 수영장>을 읽어주고 숨바꼭질을 잠깐 했다. 별것도 아닌데 숨넘어가게 까르르 웃는 아기들.


 해가 지고 주스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름이는 키 작은 단풍나무 잎에 팔을 뻗으며 즐거워했고 횡단보도 앞에 선 행인이 아이를 보며 미소 지었다. 가로등에 반짝이는 나뭇잎, 은행나무 꼭대기에 보이는 새 둥지 사진을 찍으며 돌아왔다. 씻고 나른해져 2시간이 넘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글 모임 글을 올리고, 이렇게 일기를 쓴다. 정말 괜찮은 하루였다.

봄에 초대받은 정원


24년 4월 8일에 시작해서 12일까지 쓰는 일기


 어제부터 낮기온 20도를 넘기는 따뜻한 날씨. 작년 이맘때에는 산책을 많이 했는데 올봄은 느긋하게 걷는 날이 드물다. 올해와 작년, 내 일상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여전히 플라잉 다니고 그림일기와 글쓰기에 애정을 쏟는 일상. 틈만 나면 돈벌이에 관한 조바심과 무엇도 이루지 못하는 불안이 쏟아지지만 '그래도 아직은 버텨보자'하며 애쓰고 있다.


 중학생 국어 수업을 더 해야 하는데 할 수 있을지, 한국어 교원 자격증 과정을 마치면 한국어 수업을 할 기회가 있을지, 곧 초등학생이 될 여름이의 교육에 맞추어 어린 친구들과 읽고 쓰는 모임을 시도해야 할지.... 비슷비슷한 고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길어지는 물음표에 우울해질 때는 다시 유예기간을 늘리며 의식의 흐름을 끊어낸다. 일단, 올해까지 버텨보자.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올해까지만.


무스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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