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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오니다온 Jun 27. 2019

우리들의 일그러진 어머니, <마더>

'믿음'에 대하여-

당신은 얼마나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믿음은 형체가 없음에도 주체와 대상에 따라 그 밀도가 천차만별이다. 혹자는 신을 맹목적으로 믿으면서도 신의 피조물로 여겨지는 인간을 불신하며, 혹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되 일부 인간만을 선택적으로 신뢰한다. 우리는 사람을 쉽게 믿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의심이 과한 사람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이렇듯 믿음은 늘 두 개의 잣대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한다. 믿음의 진폭은 꽤나 크지만, 독특하게도 가족이라는 범위 내에서는 일정한 경향성을 보인다. 믿음을 넘어선 맹신, 다시 말해 집착에 근접하여 개인의 눈을 가려버릴 정도의 두터운 믿음이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맹신에 관한 이야기다. 믿음의 영역에서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는 마치 성소와 같다. 어머니는 자신의 배에 열 달을 품어온 자식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며 그 생명을 자신의 것 이상으로 귀애한다. 우리는 주로 온전한 믿음을 전제로 한 이 관계,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일방적이며 무조건적인 믿음을 '모성애'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려내는 모성애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 따위의 사전적 의미가 아니다. 숭고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장 추악한 것이며, 아들의 죄를 덮어버리는 가장 속된 것이다. <마더>에서 혜자의 아들 도준은 나이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는 인물이다. 혜자는 이러한 도준이 혹여나 타인의 놀림거리가 될까 우려하여 '바보라고 놀리는 사람들에게 두 배로 갚아주라'고 교육시켰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도준이 살인을 저지르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작은 동네에서 아정이 살해당한 직후 도준이 용의자로 지목되자 그녀는 발품을 팔아 아들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정황이 도준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음에도 아들에 대한 믿음에는 한 치 흔들림도 없으며, 믿음은 시간과 비례하여 두터워지더니 이내 혜자의 눈을 가려버린다.


혜자는 "사실 내 아들이 안 그랬거든요"라는 말을 무수히 반복하며 도준에 대한 믿음을 스스로에게 세뇌시킨다. 사건의 목격자인 고물상 노인이 도준을 진범으로 지목하자 그를 '우리 아들 발톱의 때만도 못한 놈'이라고 칭하며 우발적으로 노인을 살해한다. 결국 혜자가 믿은 것은 도준이 아니었다. 자신이 만들어내었으며 동시에 지켜내고자 했던 아들의 허상일 뿐이었다. 혜자는 누구보다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행동은 차마 본인이 잉태한 죄악을 직시하지 못하여 처절히 부정하는 여자의 광기 어린 몸짓에 불과했다. 이미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뒤틀린 맹신으로 가득 차 버린 공간에서 혜자는 도준을 다시 자신의 품으로 밀어 넣고 있다. 



혜자가 도준에게 집착하는 것과는 달리 도준은 혜자에게서 완전히 자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도준이 혜자가 주는 탕약을 마시는 동시에 소변을 보는 장면은 어머니의 믿음, 혹은 모성애가 도준에게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함을 단호하게 보여준다. 도준이 버스를 타고 가 버린 후 혜자는 죄의 상징인 아들의 소변 자국을 숨기려고 분투하지만 도준은 이미 혜자의 영역을 벗어났다. 또한 그는 어린 시절 혜자에 의해 자행되었던 동반 자살 시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며, 자신에게 농약을 먼저 먹였다는 기억에 의거해 혜자를 비난한다. 그들의 믿음은 그 방향과 밀도를 달리하여 어긋나 버렸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은 개인을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결국 도준은 혜자의 분투 덕분에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나지만 영화의 엔딩 씬까지 그 어느 인물도 활짝 웃지 못한다. 엇갈린 믿음, 그리고 밀도가 다른 믿음의 틈새에서 혜자는 미친 것처럼 춤을 춘다. 그리고 춤을 추는 수많은 실루엣 사이에서 관객들은 곧 혜자의 실루엣을 놓친다. 그곳에는 익명화된 무수한 '마더'들이 존재할 뿐이다. 누군가를 맹신하여 자신의 믿음을 곧 진실로 만들어 버리는 존재들. 그 병폐적이며 비이성적인 믿음에 뿌리를 둔 추악한 산물들. 우리는 모두 영화에서 아이를 갖고 싶어 하던 미선처럼 잠재적으로 그 실루엣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영화에는 김혜자 역 '마더'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누구의 이름이라도 채워 넣을 수 있는 공백과, 빽빽한 밀도의 춤을 추는 실루엣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맹신들을 은유한다. 


아, 우리들의 일그러진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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