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자유롭게, 하지만 정제되게
옥잠화, 줄맨드라미, 아스파라거스, 강아지풀, 온시디움
그동안 플라워클래스는 꽤 들었어도 침봉수업은 이날 처음 접했다.
보통 꽃꽂이를 배우는 단계에서는 모양도 잘 잡히고 넓은 면적 커버가 가능한 플로럴폼(오아시스라고도 많이들 하는)을 주로 사용하지만, 환경을 생각하면 여러 번 재사용할 수 있는 침봉꽂이가 훨씬 좋다고 한다. 그래서 몇 분의 플로리스트 분들은 아예 침봉과 같은 친환경적인 재료만 사용해서 작업을 하기도 하고..!
'무엇이든 처음은 어려워'
처음 해보는 침봉꽂이는 생각보다 어려웠고, 이제껏 해왔던 방식과 전혀 다른 게 보였다. 꽃을 많이 꽂을수록 풍부해지고 화려해지는 플로럴폼 꽃꽂이와 달리, 중요한 선을 제외한 나머지는 빼고 비워내는 작업의 반복이었다. 그동안의 플라워클래스에서는 준비된 소재와 꽃이 아까워 최대한 다 활용하고 얼굴이 큰 꽃도 과감하게 사용한 나였기에, 더 어렵게 느껴진 작업일지도 모른다.
주어진 꽃을 다 안 사용해도 되니, 정말 적당하고 과하지 않게 보여주는 것, 그리고 선을 살리는데 방해가 되는 꽃은 아무리 예뻐도 과감하게 잘라내는 것.
중간에 디자인도 한번 갈아엎고 몇 번의 수정을 하고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던 찰나, 살구쌤의 조언에 따라 정말 꽃 머리 하나를 오히려 제거하니 작품이 전체적으로 시원해지고 답답했던 부분이 해소되었다. 이전 같았으면 소재 하나를 딱 하나 추가하면 전체적인 작품이 살았던 것에 반면, 비워내는 것에 정답이 있는 게 신기했다.
뭐든지 다 잘하고 싶어 하는 나지만, 플라워클래스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반대가 되는 것 같다. 조금씩 내가 가진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비로소 더 멋진 작품이 나오는 것을.
(지금 이 글을 쓰는 밤 열두 시 반에도 이미 일정 3개를 소화한 후라 눈이 감기고 있지만 포기 못하고 꾸역꾸역 몇 자라도 더 써보겠다고 하는 나 자신도 아직 갈길이 멀구나 라는걸 느끼고 있다.)
보통 첫 번째 수업에 만들었던 플라워박스보다 침봉꽂이를 더 힘들어하는 게 대다수라고 한다. 플라워박스는 틀과 선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꽃에만 집중해서 한 송이씩 내 취향대로 꽂아나가면 되지만, 침봉꽂이는 정말 빈 도화지부터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선부터 크기까지 다 내가 잡고 시작하는 것.
처음 꽃을 접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익숙하지 않아 어려워 하지만, 나중에 숙련이 되면 그만큼 자유도가 높고 나 자신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이 없다고 한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의 모습이 꽃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걸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다. 정해진 틀 안에서 사는 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편하고 익숙하다. 반대로, 처음부터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을 때 갈팡질팡하고 어려워한다. 이걸 비로소 극복했을 때 정말 내 온전한 자신과, 내 모습 그대로를 찾을 수 있다는 거..!
다칠까 우려되어 꽁꽁 싸맨 채로 포장된 옥잠화도, 감싸고 있는 잎사귀를 벗어던진 후에야 우아한 꽃의 형태를 제대로 볼 수 있다. 감싸고 있던 잎사귀도 펼쳐졌을 때 더 화려하게 제 모형을 찾아간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를 감싸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
<Records> 내 방식대로 기록해 보는 연습 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