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의 Sep 15. 2023

조직개편을 대하는 자세

동아일보 팀장클럽 연재 


안녕하세요. 여느코치입니다.


팀장 6개월차쯤이었을까요. 회사에서 '대팀제'를 도입한다면서 제가 속한 본부부터 실험적으로 작은 팀들을 통합한다는 소문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기능을 중심으로 조직을 통합하고, 전문성이 있고 관리 역량이 뛰어난 사람을 팀장으로 앉힌다는 그림은 누가 봐도 그럴 듯 했지만, 그런 팀장이 과연 '누구냐'에 대해서는 저마다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듯 했어요. 누군가 통합된 팀의 팀장이 되면, 다른 누군가는 팀장 자리를 내놓아야 할테니까요.


팀장들은 담배 타임과 술자리를 빌미로 모여 끊임없이 서로의 존재감을 저울질했습니다. 재직기간이 오래 된 팀장들은 '내가 이 나이에 다시 팀원이 되는 게 말이 되냐. 그만 둬야지...'를 운운하면서도 '에이, 팀장님은 걱정 안하셔도 되죠,'라는 말을 내심 기다리는 눈치였고, 거꾸로  자신은 무조건 팀장일거라 확신한 채 다른 이들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죠. 그 와중에 다른 본부의 팀장 자리를 알아보는 약삭빠른 사람도 있었고요. 당시 팀장 6개월차에 연차도, 나이도 제일 어렸던 저는, 팀장 자리를 내놓는 게 당연할 뿐 아니라 억울함조차 허락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말없이 일에 집중하는 척 하고 있었더랬죠. 

(요 내용은 저의 책 [팀장의 감정 사전]에도 한 꼭지 실려있어요 :)

한동안 시끌시끌하던 대팀제 소문은 결국 없던 일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3년차 팀장이 되는 동안 두어 차례의 조직개편을 만났습니다. 윗사람이 바뀌었고, 부서가 바뀌었으며, 팀이 공중분해 될 위기도 넘겼죠. 조직개편은 늘 직장 사람을 쥐고 흔듭니다. 완전히 확정되고 자리를 옮기는 순간까지 카더라가 난무하며, 팀장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앉아있으면서도 혹시 자리가 없어질까, 팀원을 빼앗길까, 윗사람이 바뀔까 노심초사하며 쉼없이 눈을 굴리죠. 불확실하고 불안한 상황일수록 사람은 밖을 봅니다. 뭔가 안심할 만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죠. 


얼마 전엔 경영진이 바뀌고 본부장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면서 조직 전체를 다시 재편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각 팀을 어떻게 할지, 누구 밑에 붙일지, 팀을 합칠지, 없앨지, 등등을 논의하는 과정이 약 3주간 계속되었어요. 


저 역시 CEO가 우리 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인사팀은 어떤 계획이며, 팀원 누구누구는 그럼 어떻게 해야하고, A팀장이 이렇게 얘기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고, B부서장은 같이 일하면 힘들거고, 하지만 그게 지금으로선 최선이고, 어쩌고, 저쩌고... 조금이라도 제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과 표정, 행간의 숨을 뜻을 찾아 헤매느라 머리가 지끈거리는 2주를 보낸 후, 멘토 선배를 만났습니다. 커피 한 잔 하는 짧은 순간에도 이러쿵 저러쿵 쉼없이 늘어놓는 제 말을 가만히 듣더니 선배가 그러더군요. 


"여느야, 남 얘기는 다 필요없고, 너만 생각해.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생각해보고, 확신이 생기면 먼저 제안을 해. 가만히 있으면 안돼. 움직여야지."


조직개편은 회사의 결정인데 먼저 제안을 한다니,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포인트였죠. 고민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미심쩍어하는 내게 선배는 한번 더 얘기합니다. 


"최소한 말은 해볼 수 있지. 안 되면 마는 거고. 그럼 오히려 맘 편히 그만둘 수 있으니까, 나쁠 거 없잖아?"


남이 짜 놓은 판에 떠밀려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판과 그렇지 않은 판, 두 가지가 있을 뿐인 겁니다. 조직 개편으로 마침 내가 원하는 판으로 가게 되면 감사할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납득을 하고 받아들이던지 열심히 준비해서 나가던지, 둘 중 하나인거죠. 그 역시 선택은 내가 하는 겁니다. 


출처 : missstacyslane.etsy.com



생각이 많으면 그 중심에 나를 두기보다는 주변을 계속 맴돌게 됩니다. 다른 이들의 입장을 담은 말과 행동을 가지고 나의 위치와 나의 미래를 가늠하려 하죠. 하지만 남은 남입니다.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이로운 것만 생각하고, 그렇게 판단할 거에요. 그 사람들 틈에 끼어 나의 유/불리를 판단해봤자, 그 와중에 내게 유리한 것을 찾기는 힘듭니다. 덜 불리한 것이 있을 뿐이죠. 


"일단 너만 생각해."

이 말은 사실 바로 며칠 전 제가 팀원을 앉혀놓고 했던 말이었어요. 조직개편을 앞두고 다른 팀으로 가게 되어 속상해 하는 팀원에게, 어디에 소속되어 있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잘 고민해서, 그것을 위해 회사와 일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해주었었죠. 팀원에게는 그렇게 말해놓고 정작 팀장인 저 스스로에게는 이 말을 해주지 못한 걸까요? 팀장이면 자신을 생각하면 안 될까요? 직책을 맡았으니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맡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걸까요? 그게 옳은 걸까요?


리더의 네 가지 바람직한 태도

1. 리더는 항상 단기적인 목표를 뛰어넘는 궁극의 목적지를 지향해야 한다. 
2. 리더는 외부가 아닌 내면을 바라봐야 한다. 
3. 리더는 이기적이 아닌 이타적이어야 한다. 
4. 리더는 폐쇄적이 아닌 개방적이어야 한다.

로버트 퀸 - '하이퍼포먼스 조직' 중에서


로버트 퀸이 말하는 '리더의 태도'를 보면, 조직개편의 폭풍이 아무리 휘몰아쳐도 리더는 성인 군자와 같이 심지를 굳건히 해야할 것만 같아요. 하지만 아직도 고려할 게 너무 많아 보입니다. 팀의 목적지, 이타적인 결정, 열린 마음... 여전히 어렵네요. 


만약 이 중에서도, 다 필요없고 2.내면의 소리에만 집중한다면 어떨까요?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조직 전체를 생각하고, 변화에 유연해지려는 마음을 버리고, 그냥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에만 집중하는 겁니다. 그것도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원하는 것' 역시 어느 한 가지로 딱 떨어지기 보단,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 내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또는 할 만한 것)들의 조합일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최소한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리더답지 못한 짓이라는 죄책감은 버려도 될 것 같아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작정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리더십의 대가가 말하는 정당한 태도이니까요. 거기서 얻은 흐릿한 답을 밑그림 삼아 1.우리 팀의 목적지, 3.팀과 조직 전체에 이익이 되는 결정, 4.새롭고 흥미로운 기회들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남의 말, 주변의 단서에 일희일비 하느라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리더를 바라보는 게 팀원들에겐 더 불안하고 괴로운 일이겠지요.


어차피 초보 팀장이나, 20년 된 팀장이나, 임원이나, CEO나, 조직개편의 위용 앞에서는 한없이 작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조직개편을 앞두고 티도 못내며 동동거리실 초보 팀장님께 해드리고 싶은 말은, 눈을 크게 뜨고 조직의 판을 재빠르게 읽으려 하지 말고, 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귀를 닫으시라는 겁니다. 남이 내게 유리한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스스로 생각해보는 게 더 확실한 방법입니다. 조직도는 내가 그릴 수 없어도, 내 인생의 지도는 나만 그릴 수 있는 거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팀장도 사람인데 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