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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 Nov 06. 2020

금주 한 달 일기

금주를 도전했다.

스무 살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임신, 출산 그리고 모유수유를 제외하곤 이렇게 오랜 기간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모님 또는 남편도 "알코올 중독"인 것 같다고 좀 줄이라고 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갑자기 금주를 결심해서 1달이 지났고 생각보다 '술'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금주의 첫 번째 이유는 다이어트였다. 둘째를 낳고 찐 살을 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코로나 이전이니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때 대비 지금 오히려 5킬로가 쪘다. 살이 찌니 맞는 옷도 없고, 행동도 무뎌졌다. 그래서 코로나로 찐 5킬로만이라도 우선 빼야겠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그다음은 체력이었다. 술을 마시는 순간은 누구보다 행복했으나 그다음 날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몽롱한 상태로 버티고 버티다, 다시 힘을 내겠다는 이유로 또 술을 마셨고, 그 사이클을 계속 돌았다. 그러다 보니 매일이 힘들었고, 정신은 흐리멍텅했다.



물론 한 달 내내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은 아니다. 딱 2번 술을 마셨다. 보통은 그렇게 마시면 그것이 계기가 되어 고삐가 풀리곤 하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그 두 번의 경험으로 더욱 술과 멀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달 금주의 결과는 실망적이다.

우선 살이 많이 빠지지 않았다. 술을 안 마셔서 밤에 야식도 먹지 않았고, 평소에 비해 간식도 많이 줄였음에도 불구 살이 극적으로 줄지 않았다. 단, 더 찌지도 않았다. 다이어트는 술보다는 배고픔을 느껴야 빠진다는 결론을 얻었다. 배부르지 않았지만, 배고프지도 않은 상태로는 현상 유지일 뿐이었다.


체력도 극적으로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애들 재우고 술 마시며 내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없다 보니 애들을 재우며 같이 잠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10시 전에 잠을 잤다. 낮시간 비몽사몽 하던 것을 조금 나아져 또렷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당연히 잠을 많이 자니 피부는 좋아졌다.


그러나, 삶의 즐거움이 없어진 기분이다.




금주를 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이 있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하는가, 미래를 살아야 하는가?


물론 답은 없다. 적절히 버물어 는 것이 정답이고, 상황에 따라서 비율을 조정하면서 사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술을 마시지 않다 보니, 음식이 맛있지 않았다. 최근 나는 인생에 행복을 '맛있는 음식'을 먹는 데다 두었다. 오늘은 맥주랑 연어를 먹어야지 등 술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그런데, 술이 빠지니 희한하게 그 음식도 맛이 없어졌고, 특히 먹고 싶다는 생각도 없어졌다. 결국 나의 현재는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식비와 술값을 줄이니 돈은 모였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이긴 하지만 건강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만족스러운가?


솔직히 모르겠다. 술을 마시고 싶진 않지만 이렇게 단조롭게 사는 것이 즐겁지도 않다. 조금은 무절제해도 재밌게 살고 싶다. 여기서 또 교훈을 얻는다.


나는 첫째도 둘째도 16주까지는 꽤 고통스러운 입덧을 했다. 배가 너무 고픈데, 먹고 싶은 것이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까? 배가 고파 힘은 하나도 없는데, 뭔가 먹을 생각을 하면 구역질이 나는 상황. 그때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무언가 맛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유한한 일이다. 그러니 있을 때 충분히 즐기자.


지금이 그런 기분이다. 술에 조금 취하여 긴장이 풀어진 알딸딸한 기분을 느끼고 싶지만, 술이 마시기 싫다. 그렇기에 술도 마실수 있을 때, 마시면 기분이 좋을 때 마셔둬야 한다.


현재를 살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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