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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 Jan 10. 2021

남들에게 인정받는 우리 남편 나는 왜 칭찬에 인색한가?

최근 사내 강사를 맡은 남편이 나에게 본인 강의의 리뷰가 담긴 사진을 나에게 보냈다.


"이거 읽어봐. 사람들이 나에게 남긴 코멘트야. 나 전문 강사를 해도 되겠어. 다들 좋데."


남편은 무척 신이 나서 나에게 자랑을 했다.

그러나, 나는 남편이 신이 난 상태를 지속시켜 주기 싫었다. 나도 안다 그것이 얼마나 유치한 것을 하지만 한마디도 좋은 말을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이 남편을 좋게 평가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남편만큼 어눌한 사람이 어딨어. 다들 제대로 평가는 한 건가?'

그리고는 나의 속마음을 그대로 남편에게 전달하였다.


"보통 평가를 잘해 주지 누가 진지하게 했겠어?"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이 티는 내지 않았어도 마음이 무척 상했을 것이다. 나였으면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편 역시 나에게 좋은 평가를 주는 것도 아니다. 회사에서 칭찬을 받았거나 학교 시험 점수가 잘 나와도 "네가?" 아니면 "다 그렇게 받았겠지" 라며 나의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렇게 나 역시 남편에게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는 다짐한다.


'네가 그렇게 나왔다 이거지. 똑같이 복수해 주고 말 것이다.'




얼마 전부터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영어 교육 프로그램에 선정이 되어 한 달 동안 영어 교육을 받고 있다. 그룹에 있는 멤버들과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영어로 대화를 한다. 이런저런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다 보니 며칠이 지나니 서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멤버 중 한 사람이 굉장히 눈에 띄었다. 그는 직설적으로 와이프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지는 않지만,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와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우리 와이프는 굉장히 깔끔해요."

"와이프는 건강하게 먹어서 내가 요리를 하면 불만이 많아요." 등등  


분명 칭찬인데, 뭔가 뼈가 있는 것이 느껴지는가?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내 모습이 보였고, 내 남편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의 와이프에게 조금의 동질감이 느껴졌다. 물론 내가 오해했을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보았을 수도 있다.


그는 얼마 전까지 장기 출장으로 외국에 있다 얼마 전에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코로나로 인해 오랜 기간 혼자 외지에 있어서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의 와이프의 고충이 더욱 느껴졌다. 그의 와이프 역시 워킹맘이라고 했다. 그가 외로웠던 것만큼 그녀 역시 한국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면서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반대로 와이프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 멤버도 있었다. 그는 가끔 '어제는 와이프와 맥주를 한잔 했다.' 정도의 이야기만 하였다. 그는 나와는 달리 굉장히 안정되어 보였다. 그는 항상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을 보니 나의 상황이 좀 더 객관적으로 분석이 되었다.



부부 관계에서는 한 가지 원칙이 있는데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서운하게 행동하면, 그 순간은 참는다. 그러나 다음 기회에 쌓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때 전에 받은 상처와 서운한 감정을 덧씌워 되갚는다.

아무리 사랑하는 관계라고 하더라도 공짜는 없다. 내가 상대에게 주는 만큼 받는 것도 있어야 그 관계가 유지되고 사랑과 신뢰를 쌓아 나갈 수 있다.
(가족의 두 얼굴, 최광현)



평범한, 일반적인 가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이 되지는 않는다. 물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절대 아니며 나는 내 삶의 많은 부분에 있어 만족하고 있다. 한번 태어나서 사는 인생 평범하게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분명 나의 행동에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고, 그 상처가 무의식 중에 혹은 의식 중에 정체를 드러내며 누구보다도 유치한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저번에 얘기한 것과 같이 나의 남편은 오랜 기간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였다. 그 기간 동안 남편의 공부는 당연했고, 그 외의 것을 나 혼자 감당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 당연했던 것이 상황이 바뀜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험이 끝나도 나의 육아는 계속 이어졌고, 남편은 다른 시험 준비에 돌입하였다.


여기서 문제는 나는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느라 힘들었지만, 남편은 일하랴 자격증 시험 준비하랴 힘들었던 것이다. 나는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육아와 일을 해나가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남편의 부인의 내조와 따뜻한 응원을 받으며 시험을 준비한 동기들이 부러웠다. 결국 두 명의 가해자와 두 명의 피해자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인기 있는 남자가 한 여성에게 선물을 받는 영상을 보았다. 그 영상에서 그는 이런 얘기를 했다.

너 내 선물 고르면서 기뻤지. 그럼 오히려 나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냐?


무슨 저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다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나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있던 "왜 나는 우리 남편에게 다정하지 못할까?"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 여성은 선물을 사면서 '그가 이 선물을 받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그리고 '나에게 보답해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럼 반대로 선물을 받는 그는 고맙긴 하지만 부담스러울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면 모든 것은 기브 앤 테이 크니깐. 그렇기에 그는 그 선물을 받는 것에 대해 나는 부담스러운 감정은 갖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 같이 보였다. 


나의 경우에도 남편의 공을 인정해 주면 그것으로 내가 했던 일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정도로는 그 보상을 받을 생각이 없다. 그것은 너무 부족하다. 그러므로 남편의 공로를 인정할 수 없다. 그런데, 남편은 반대로 '이 정도면 너의 공에 대한 보상이 충분하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너에게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겠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모두 각자의 시선에서 보면 모두가 피해자이니 말이다. 


혹여나 나의 글 솜씨가 부족하여 우리 남편이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 남편은 부족함이 없는 남편이다. 아이들과 같이 하는 시간이 적어 서툴지만 최선을 다 한다. 그것을 아이들도 알기에 아빠와 놀 때면 깔깔거리며 논다. 다만 아이들과의 시간이 서툴어 아이들이 잘 놀다가도 나를 자주 찾곤 하지만 그럴 때면 그는 집안일 등으로 나의 힘듦을 메우려 노력한다. 그는 공부를 하느라 많은 시간을 쓰지만, 공부 외에 하는 것이라곤 자기 전 한두 편의 미드를 보는 것이 전부이다. 친구들을 만나지도 않고, 술을 즐기지도 않는다. 말은 굉장히 로맨틱하여 아침저녁으로 다정한 문자를 보내고 집에 올 때 장미 한두 송이를 선물로 사 오는 그런 남편이다. 


불행한 부부관계와 힘든 자녀관계를 푸는 열쇠는 상대방에게 있지 않다. 그 열쇠는 나 자신에게 있다. 
(가족의 두 얼굴, 최광현) 


그러므로 이 문제 해결의 키는 나에게 있다. 그러나 이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은 최근 나의 삶이 버겁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이 회사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고 있는데, 교육을 받으면 시간적 여유가 있어 이것저것 하려고 기대한 것 과는 달리, 아침부터 저녁 늦게 까지 쉬는 시간 없이 교육을 받고 있으며, 교육이 끝나면 오랜 시간 숙제를 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애들은 내가 교육이 끝나기도 전에 집에 와서 자기 전까지 남은 에너지를 다해 애들과 놀아 준다.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힘듦이다.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힘듦 것보다는 나만의 시간이다. 물론 나만의 시간이 그렇게 간절하면 잠을 줄여야 하지만, 그것은 나의 체력이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그 외 시간에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내가 좋아하는 동영상을 보며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최근에는 그런 시간이 거의 0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있는 동안에는 아이들을 전적으로 봐주어, 나에게 자유시간을 주었으면 한다. 그러나 남편 역시 최근 굉장히 바쁜 프로젝트를 맡아 매일같이 늦은 밤에 퇴근하고, 퇴근하고는 논문 쓰랴, 시험 준비하랴 바쁘다. 남편도 내가 '나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 없다. 


최근에 겪은 몇 가지 일로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이다. 이 말은 생각보다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물론 앞으로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더 버거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힘듦 것은 나의 삶이 아이들로 인해 나의 의지로 될 수 없는 것이 크다. 그러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자립하여 우리의 시간을 되찾아 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와 남편은 더 이상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유한하기에 그때까지 계속 날카롭게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주부터 남편에게 다정하게 대하려 노력하였다. 말보다는 글로 하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말로는 절대 할 수 없는 닭살 돋는 문자를 의식적으로 보냈다. 남편이 절대 싫어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의식적으로 다정한 문자는 보낼 예정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진심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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