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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아빠 Feb 17. 2020

생후 161일, 늦은 뒤집기와 되집기를 하다.

생후 162일

 일요일 오전, 전날 밤 두 번 잠에서 깨어났던 후니가 8시가 조금 넘어서 눈을 떴다. 고맙게도 후니는 잠에서 깬다해서 우는 적이 없다. 여느 때처럼 카메라 쪽을 바라보며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새벽 2시, 5시에 후니에게 수유를 했던 현이는 쉽게 일어나질 못했다. 전날 잘 마시지 않는 맥주를 한 캔 마셨던게 이유였던지 쉬이 새벽에 일어나질 못하고 내리 긴 밤을 잤던 나이기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현이는 좀 더 잠을 자게 두고 후니를 방에서 대리고 나와 거실에 눕힌다. 허리 아래가 물기로 젖어 있었다.

  

요즘들어 후니가 잠 중에 소변이 새곤 한다. 거의 매번 잠을 잘 때마다 옷이 흥건히 젖을 만큼 소변이 새고 있다. 오전도 마찬가지로 소변이 상당히 많이 새서 웃옷과 바지가 흥건히 젖어 있었다. 덕분에 옷가지들이 남아나지 않을뿐더러 매일 두 번 이불빨래를 해야 하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천기저귀의 문제인지 아니면 잘 때 후니의 몸부림이 문제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고 기저귀를 타이트하게 채우던지 바디슈트로 기저귀 부분을 고정하는 방법들을 써보고 있지만 여전히 소변이 새고 있다.

 

후니의 옷을 갈아 입히고 젖은 이불을 세탁기에 넣는다. 세탁실에서 나와 후니를 보니 그새 대변을 눴다. 뭐 자주 있는 일이다. 후니를 안아 화장실에서 엉덩이를 씻기고 다시 거실에 눕힌다. 대변으로 물든 천기저귀는 곧바로 빨아주어야만 한다. 자기 자식 대변은 냄새도 나지 않고 역겹지 않다고들 하는데....아직 그 단계까지 도달하진 못했나 보다. 모유 대변인 대도 이제는 제법 성인 대변과 다름없다. 냄새도 제법 나기도 하고 말이다. 기저귀를 빨고 다시 후니와 마주한다. 2주 전부터 잠에서 깨면 한 시간 정도를 충분히 논 후에 수유를 하고 있다. 앞으로 한 시간 아빠와 단둘이 놀면서 시간을 보내야한다. 현이가 오랫만에 늦잠을 잘 수 있을 시간이기도 하다. 

 

집에 장난감은 거의 없다. 흔하다는 아기 체육관도 없다. 그나마 몇 가지 안 되는 장난감들도 동생 내와 처형 내 그리고 친구들이 쓰던 것들을 두어 개 가져다 놓았을 뿐이다. 우리 부부가 장난감을 준비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는 없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머릿속에 장난감에 대한 사고가 없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장난감 보다는 몸으로 놀아주는 편이 우리에겐 더 편하다. 아마 현이나 나나 장난감 보다는 뛰어놀던 유년시절이 몸에 익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내 손을 내주면 손을 잡으려 아둥 바둥 대는 후니를 한참이나 바라본다. 새끼 손가락을 잡고 입으로 가져가면 나는 조금의 힘을 줘 손가락을 아랫 입술 아래에 안착시킨다. 그게 무슨 재미난 놀이라도 되는 냥 후니는 '꺄르르르' 웃음을 내며 10여분을 넘게 즐긴다.  

 

 후니를 안고 창밖을 내다보며 오늘 날씨가 어떤지 이야기해준다. 특히 날이 따뜻해서 산책을 나갈 계획이 있을 때는 오늘 몇 시에 유모차를 타고 창밖으로 보이는 어떤 장소까지 가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일요일에는 포근했던 전날의 기운은 온대간대 없이 사라지고 창가에 있는 것 만으로도 밖의 찬기가 온몸으로 전해져왔다. 바람 역시 심하게 불었다. 전날 13도까지 올라가 5키로 정도를 달려봤건만 일요일에는 한낮에도 영하에 머물렀다. 그런 온도 변화를 후니에게 이야기 해주고 날이 추워서 오늘은 산책을 갈 수 없음을 설명해준다. 


허리색에 앉혀 집안을 돌아다니는 것은 후니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다. 아직 늦잠을 이어가고 있는 현이가 깨지 않게 조금은 조용히 후니와 집 안을 돌아다닌다. 주방 진열장 앞에는 후니가 좋아하는 오르골이 있다. 외국에 휴가를 다녀온 친구 부부가 후니에게 준 선물이였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제법 청명하고 맑은 소리의 동요가 흘러나오는 이 오르골을 후니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허리색에서 90도로 허리를 굽혀 손을 뻗어 댄다. 굽힌 허리 덕에 침이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잡히지 않을 거리에 있음에도 흥겹게 허리색을 다리로 두두리며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손을 뻗는다.  

 

허리색에 오래 앉혀 두면 다리에 좋지 않다는 소아과 말에 20분을 넘지 않도록 주의를 하고 있다. 후니를 내려 바닥에 눕히고 흘린 침을 닦아주었다. 순간 후니가 다리를 위로 번쩍 들어 올리고는  들어올린 다리를 오른쪽으로 획 던지듯 내려놨다. 그 반동의 여파인지 후니 스스로 오른쪽으로 가기 위한 방법을 찾은 것인지는 알기 어렵다. 여튼 다리를 던지듯 내려놓자 후니의 가슴이 바닥에 면하게 되었고 돌아서는 순간 낀 오른팔을 어렵지 않게 꺼내더니 완전히 뒤집어 있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배를 다시 오른쪽 방향으로 밀더니 되집기까지 한 번에 끝내버렸다. 그렇게 뒤집기와 되집기를 한 번에 완성했다. 어안이 벙벙한 채 후니를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둘러 카메라를 들고 와서 다시 뒤집기 되집기를 해보길 기대해봤지만 더 이상 뒤집기도 시도하지 않았다. 아이의 뒤집기 되집기를 보면 눈물이 난다고들 하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아마도 감수성이 풍부한 아버지는 아닌가 보다. 대견한 마음? 조금은 늦었지만 이제 때가 됐나 보다 라는 마음이 들었다. 


후니가 첫 뒤집기를 성공한 것은 생후 110일 경이었다. 둘 다 이불빨래니 기저귀 빨래를 하느라 후니를 잠시 혼자 두었었다. 다시 거실에 나왔을 때 후니가 혼자 뒤집고는 본인도 당황한 듯 끙끙거리고 있었다. 뒤집었다는 사실은 있으나, 혼자 어떻게 그렇게 해낸 지 증거가 없는 상황. 그리고 160일이 다된 오늘까지 뒤집기를 하지 않았었다. 시도 조차 하지 않았었다. 빠르면 대게 160일 즘에는 기는 아이들도 있다는 대 후니는 기기는 커녕 뒤집기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걱정보다는 ‘후니는 누굴 닮아 이렇게 느긋한겨?’ 라며 웃음만 났을 뿐이었다. 팔다리와 몸에 문제가 없는 후니기에 때가 되면 하겠지 하며 우리 역시 느긋하게 지켜만 봐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애 걱정이 안 되었냐 하면 그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걱정만으로 후니가 뒤집기를 할 것도 아니었다. 인터넷에서나 육아 선배들은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뒤집기 정도는 후니 스스로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사실 우리 부부 역시 매사 느긋한 편이긴 하다. 사실 부부라기보다는 내가 매사에 느긋한 편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 특기라면 특기인 터라 후니 역시 그런 내 성격을 조금은 닮았나 보다. 닮을 게 없어 그런 걸 닮아?라는 어른들 말처럼 후니 역시 닮을 것도 별로 없었나 보다. 우리 부부가 느긋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후니에 관련한 모든 일들의 우선순위는 후니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해내길 바라고 있다. 뒤집는 것은 그 첫 단추였을 지도 모른다. 스스로 하는 법을 터득하면 그것에 재미를 붙일 것이고 그러면 다음에는 힘들이지 않게 해낼 수 있으리란 믿음 때문일 수 도 있을 것이다. 현이의 친구인 고여사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초등학교에 100명을 줄 새워 두면 누가 먼저 말을 시작했는지 누가 먼저 걸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 뒤집기 좀 늦었다고 아이가 발달이 더딘 것도 아니고 몸에 문제가 있을 일은 더 더욱이 아니다. 아직 후니의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때가 되면, 아마도 그러기 위한 몸이 준비가 되면, 할 거라 우리 부부는 믿고 있기만 했다.

 

믿음에 증명이라도 하듯 누구의 도움 없이 후니는 멋지게 뒤집고 되짚었다. 그러면 됐다. 더디지만 한번 더 성장함을 알았으면 됐다. 후니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어제 하루 더 이상 뒤집기도 되집기도 하지 않았다. 늦은 잠에서 일어난 현이에게 뒤집기 되집기를 했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응? 저녁이 될 때까지 더 이상 하지 않는 후니를 보며 ‘정말 했어??’라고 묻기는 했지만 덤덤하기만 한 아빠보다는 약간은 격양된 듯한 즐거움이 말끝에 묻어 있었다.

 

주말에 하는 일들은 항상 많다. 빨래, 주일 동안 현이가 먹을 밑반찬, 청소, 특히 오늘 장인어른이 오시는 날에는 대청소 등 할 일 들이 많다. 평소에는 청소기와 물걸레 청소기로 약간은 대충 해왔던 청소를 주말에는 구석구석 꼼꼼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수세미와 마른 걸래를 들고 구석에 찐득하게 낀 먼지 때들을 벗겨 낸다. 창틀에 낀 곰팡이를 제거하고 또 닦아 낸다. 화장실 청소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한 주를 건너뛰면 그새 벽면에 벌건 곰팡이가 올라오곤 한다. 약품으로 청소를 끝내고 환기를 시킨다. 어제는 그간 미뤄두었던 팬트리 정리와 거실 진열대들의 짐들을 박스를 사 와 정리했다. 2~3000원짜리 플라스틱 박스 몇 개로 정리를 끝내니 깔끔할뿐더러 뭔가 집 전체가 정리가 된 느낌이 들었다.

 

점심은 처형 내가 놀러 올 때 해주려다 미쳐 하지 못했던 토르티야 피자를 만들어 먹었다. 

토르티야가 유통기간이 며칠 지났지만 그런 거에 큰 신경을 쓰진 않는다. 아침으로 먹던 샌드위치를 후니의 피부에 영향을 줄까봐 최근에는 먹질 않고 있다. 그덕에 한가득 남아있던 햄과 치즈들을 곁들여 피자를 완성해 낸다. 


그렇게 바쁘게 일요일 오전을 보내고 후니를 방에 눕혀 낮잠을 재운 후에야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식사를 하며 나눈 이야기들은 당연히 뒤집기와 되집기. 어떻게 뒤집고 되집었는 지 온 몸으로 시늉을 해보이며 현이에게 설명해준다. 무뚝뚝, 큰 감흥이 없는 나와 다르게 현이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아마도 큰 기쁨을 준 것은 되집기와 뒤집기를 후니가 ‘스스로’ 해냈다는 것이다. 눈이 많이 내렸던 오늘 오전 잠에서 깬 후니의 소리에 방에 가보니 대각선으로 길게 누워 옆으로 누어 있었다. 어제 한번 했던 것이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듯 하다. 육아 선배들이 말하던 "뒤집고 기기 시작하면 지옥 시작" 이라는 말이 이제 우리 부부에게도 올 듯 하다. 항상 그렇듯 어서 그 지옥이 오길 기대하고 고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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