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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Jun 29. 2019

매일 저녁 경찰서에 들르는 이유

지역신문 사회부 병아리 기자의 발버둥

얼마 전부터 퇴근할 때 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경찰서를 들르기 시작했다.

형사 당직팀에 들어가 "놀러 왔어요"라며 너스레를 떨고, 불 켜진 다른 과 방에 무작정 찾아가 인사를 건넨다.

사교성과는 거리가 멀어 인간관계가 좁고, 사람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어쩌다 보니 기자가 되었다.


"이젠 하루라도 제가 안 오면 허전하시죠?"

나도 내가 50대 아저씨한테 이런 얘기를 생글거리며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하지만 어쩌나, 기자로서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지역에서 이삼십 년을 근무하며 경찰과 형 동생으로 지내는 타사 기자들의 꽁무니만 쫓아갈 것 같기 때문이다.

자주 그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자. 서로 기억하는 사이가 되자.

나한테 먼저 특종을 던져주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내가 사안을 인지하고 물어봤을 때 경계하며 대답을 회피하지는 않게 만들자.


사람이 바글바글한 낮 시간 들어가 봐야 경계심 어린 시선, 딱딱하고 틀에 박힌 답변만 돌아오니 소수의 인원만 있을 때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변에선 나에게 "기자 체질이네", "사회부에 잘 맞네" 하지만 틀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발버둥을 치는 중이다.

수면 위에선 예쁘게 둥둥 떠다니는 모습만 보일 테지만.


사수는 출입처와 식사하는 걸 안 좋아한다. 술자리는 더욱더.

밥을 얻어먹자니 다음에 비판 거리 생겼을 때 기사를 마음껏 못 쓸 것 같고, 그렇다고 사주자니 출혈이 크기 때문이란다.

이해는 가지만 이제 막 기자 생활을 시작해 출입처의 벽이 높기만 한 병아리 기자로서는 아쉬운 게 사실이다.

출입처 사람들과 얼른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제가 돈을 낼 테니 데려가 주세요" 진심으로 말해보지만 택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지 요지부동이다.

과거 사회부 근무할 때 친해진 경찰들과 아직 자주 한 잔 하는 타 부서의 애주가 선배한테도 "제발 저 좀 불러주세요. 술 원래 안 마시지만 거기 불러 주시면 마실게요"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과거 내 자리에 있었던 다른 기자는 밤마다 경찰과 술 마시느라 죽을 판이었다는데 나는 왜 이런가.

처음에는 사수가 원망스러웠지만 결국 내가 노력해서 극복해야 하는 문제라고 결론 내렸다.

"선배 따라가 친분을 쌓아봤자 그 사람은 결국 선배라는 다리를 건너 당신을 기억할 거예요. 직접 부딪혀 친해지는 수밖에 없어요"

얼마 전 알게 된 타 지역신문 기자가 건네준 조언이 계기가 됐다.

입사한 지 갓 1달 됐다는 그는 밤새 경찰과 술을 마시고 아침에 다시 들러 "해장하셨어요? 같이 해장하러 가시죠"라고 한다고 했다.


그 이후 저녁이면 경찰서에 나가기 시작했다.

내근직과는 이 시간대에 만나기 힘들지만 가끔 업무를 처리하느라 야근하는, 혹은 휴일에도 나와 근무를 하는 직원이 있다.

기자라고 하니 입을 딱 다무는 직원도 있지만, 경계심을 풀고 대답해주는 직원도 있다.

'좋은 기사 아이템 받아가야지!' 같은 뚜렷한 목적의식은 없다.

그저 아직 경찰서를, 그리고 경찰서 직원들을 잘 모르니 좀 더 알고 싶고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말을 건넨다.


입사 초반, 집에 "6시 조금 지나면 퇴근하는 것 같으니 웬만하면 7시 되기 전엔 집에 도착할 것 같다"라고 말했던 건 어느새 먼 나라 이야기가 돼버렸다. 

처음에는 왜 늦냐 묻던 엄마도 이제는 더는 묻지 않는다.

하드 워커인 사수를 제외한 다른 선배 기자들은 "쉴 땐 좀 쉬어라. 저녁과 주말엔 일 하지 말고 충분히 쉬어줘야 번아웃이 안 온다"라고 조언한다.

좋은 얘기라고 생각해 수긍하면서도 이따금씩 '정석 하리꼬미'를 도느라 집에도 못 가고 하루 3~4시간씩 자는 중앙지 기자들과 나를 비교하며 채찍질하게 된다.

당분간은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매일 저녁 경찰서로 출동할 예정이다.

누구도 시키지 않는 일이지만 내가 '이만하면 됐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될 것 같다.


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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