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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Sep 18. 2020

콜롬비아의 친정집 아버지

아디오스 콜롬비아


야간 버스를 타고 보고타에 도착했다. 보고타는 장기간 머무르진 않았지만 칼리를 오가며 왔다 갔다 자주 했던 곳이라 공항에서의 이동은 익숙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버를 불러 보고타의 한인민박인 은혜네 민박으로 향했다. 조식이 한식으로 나오고 저녁도 주문해서 한식으로 먹을 수 있어 보고타에 가면 무조건 은혜네 민박으로 간다. 한국과 비슷한 속도의 와이파이도 은혜네로 가는 이유 중 하나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한식을 더 많이 찾게 되는 것 같다. 전엔 현지식만 먹었는데 나도 늙었나 보다.


다행히 나 때문에 출근을 미루신 박사님을 뵐 수 있었다. 박사님과는 보고타를 오며 가며 은혜네 민박에 있다가 친해졌는데 나에겐 아버지 같은 분이다. 살사 추러 칼리 간다는 말에 춤바람 났다고 멋지게 산다며 박수를 쳐주시던 분. 가족한테도 말 못 하는 것들을 난 여행지에서 만난 좋은 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조언을 얻는다. 영국에 사는 내 또 다른 아버지 로저도 그런 아버지 같은 친구다. (그와의 이야기는 ‘10년의 여행’에서 기술할 예정)


박사님이 두고 가신 신라면 한 봉지


박사님께서 주방에 놓고 가신 신라면을 보니 야간 버스를 타고 와서 녹초가 된 몸의 피로가 싹 가셨다. 게다가 아침 식사가 끝난 후 다 치워졌어야 할 곳에 세상 외국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총각김치 한 접시가 물통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박사님이 나 먹으라고 일부러 거기 두셨다며 연락 주셨다.


라면 한 봉지와 김치 한 접시에
이렇게 행복할 수가


라면과 김치면 하루가 행복하다


오후에는 쿠바에 가져갈 라면을 사러 한인마트인 초이푸드에 갔다. 사장님은 여전하시고 마트 한쪽엔 라면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있었다. 마침 2+1 행사 중이어서 하나당 가격은 비쌌지만 2개 가격에 3개를 받을 수 있으니 그렇게 따지면 한국이랑 별반 차이가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라면을 샀다. 그리고 쿠바 가면 못 먹을 김밥을 하나 주문했다.


“사장님 김밥에 단무지 있죠?”

“김밥에 단무지는 안 들어가요. 대신 비슷한 맛 나는 다른 채소 들어가요. 훨씬 맛있어요.”

“아... 네...”


단무지 없는 김밥이 김밥인가?
난 천국에 있는 김밥에 가도 김밥에 단무지를
꼭 먹는 단무지 마니아인데...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비슷하게 만드셨다는 그 단무지 대용의 뭔가는 그리 단무지스럽지 않았고 가격 대비 큰 실망을 안고 김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비싸도 단무지가 있을 줄 알고 시켰건만.


초이푸드의 김밥과 서비스로 받은 봉봉


사장님은 작년 가을에 보고타 한인 체육대회 할 때 뵈었던 분이라 안면이 있었다. 난 그녀를 정확하게 기억하지만 그녀는 그때 누구랑 같이 어디 갔었다 하니 그제야 나를 알아봤다. 그리고는 봉봉 하나를 꺼내 서비스로 주셨다. 서비스 음료 마셨으니 김밥의 단무지 없음은 잊기로. 남미에서 유행하는 메로나, 그것도 딸기맛이 눈에 띄어서 하나 먹어봤다. 맛은 상상하는 그 맛. 또 사 먹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메로나가 딸기맛이 있네? 신기방기


저녁은 박사님과 함께 먹기로 했다. 스스럼없이 “딸”이라고 칭해주시는 박사님. 퇴근하시기 전 카톡을 보내셨다.


우리 딸이랑 외식할까 하는데 어느 게 좋아요?”


카톡 하나에도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시는 박사님. 한식이 먹고 싶었던 나를 위해 집(민박집) 근처에는 한식당이 없어 집에서 저녁을 주문해서 먹기로 했다. 거의 일 년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사시고 계셨던 박사님께는 이 민박집이 그냥 집이었다. 보고타에 갈 때마다 친정에 온 딸 보는 것 같다고 하셨던 박사님 덕분에 그냥 들러가는 보고타라도 기분이 좋았다.


시집가서 오랜만에 친정에 들리면 이런 기분일까?


박사님과의 저녁식사


그렇게 우린 못다 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민박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은행 주재원으로 계시던 차장님도 여기 사셨는데 멕시코로 이동하시면서 지금은 안 계시니 박사님도 좀 적적하실 것 같았다. 중간중간 여행자들이 왔다 갔다 하니 젊은 친구들의 여행 이야기도 듣고 재미있는 점도 많겠지만 그래도 계속 같이 기거하며 비슷한 상황에서 사는 사람과는 차이가 있을게다.


“쿠바에 가서 쿠바 살사 배우면서 몇 달 있어 보려고요.”


박사님은 쿠바에 가서 또 살사를 배우냐며 멋지다는 말을 계속해주셨다. 당시만 해도 3월에 쿠바에 가서 5-6월쯤 한국에 가야지 싶었다. 길어도 여름엔 들어가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쿠바로 가려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몇 달 논다고 인생 어떻게 되지 않을 나이였지만 그렇다고 반년 넘게 돈을 까먹으며 백수 생활을 할 만큼 용기가 있지도 않았다. 결국 통장 잔고가 줄어들면 자연스레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 년 넘게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민박집의 한식 조식


다음날 아침밥도 박사님과 함께 먹으며 저녁도 같이 먹기로 했다. 민박집에 머무르고 있는 청년과 함께 다 같이 먹기로. 보고타에 가면 난 일상적인 하루를 보낸다. 살 것 사고, 할 것 하고, 그리고 (민박) 집으로 돌아온다. 쿠바로 가기 전 할 일들을 마치고 자주 들렀던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했다. 이 카페는 직접 커피를 볶고 간혹 커피 만드는 클래스도 개설하는데 지난번에 들으려다가 인원이 안 맞아서 못 들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뭐든 기회가 있을 때 해야 한다. 나중에 해야지 하면 못 하는 법. 여행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스스로 지금까지 거의 10년 동안 일 할 때도 있고 아닌 때도 있었지만 빨빨거리고 여행 다니길 잘했다 생각했다.


이젠 마음대로 여행 다니지도 못하는 시대가
도래했으니까.


맛있는 커피와 빵, 그리고 다 마시고 행복해!


저녁엔 웍(WOK)이라는 보고타에서 꽤 유명한 아시아 퓨전 레스토랑에 갔다. 맥주를 주문했더니 센스 있게 잔이 얼려 나왔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우린 각자 취향에 맞게 음식을 주문했다. 박사님과 청년은 쌀국수, 난 똠얌꿍. 언제 태국 음식을 먹어보겠나 싶어서. 태국이 그리워서 똠얌꿍이 먹고 싶었다.


보고타에서의 마지막 만찬


박사님과의 대화는 항상 즐겁다. 친아버지한테 못 하는 말도 쉽게 할 수 있고 뭐는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신다. 평범한 삶을 사는 친딸이 있기에 나 같은 특이한 삶을 사는 딸의 이야기도 즐겁게 받아주시는 것일 게다. 정작 우리 아버지는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딸자식이 못마땅하시겠지만.


내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쿠바로 가야 하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고도가 높아 선선한 보고타의 날씨도 그리워지겠지. 계단만 오르락내리락 해도 숨이 차올랐던 보고타. 박사님과의 행복한 추억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 춤바람은 쿠바에서도 이어진다. 더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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