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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Sep 14. 2020

꿈이 이루어졌다

내 인생의 영화 같았던 순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알게 된 한국인 여행자였던 동갑내기 친구가 여행 막바지에 미국 뉴욕에서 살사를 배우던 중 동영상 하나를 업로드했던 적이 있었다. 살사를 배우던 곳에서 누군가의 생일에 특별한 이벤트를 해줬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이벤트는 바로 생일인 여자 댄서가 중앙에 있고 뱅그르르 그녀를 주변으로 원형으로 남자들이 돌면서 한 명씩 번갈아가며 살사를 추고 빠지고 추고 빠지고 하는 것이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춤출 날이 올까?


동영상을 올린 친구도 부러워했고 그 동영상을 본 나도 부러워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니까.




콜롬비아 칼리를 떠나기 전 마지막 소셜 살사 하는 날, 이 날은 살사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그 누구라도 와서 음악에 맞춰 살사나 바차타를 출 수 있다. 소셜 살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학원 선생들이 살사 쇼를 하는데 오늘은 살사 쇼 하기 전 제이슨이 요즘 나와 안무를 맞춰보고 있는 칼리스타일 살사를 해보잔다.


이거 좀 부담스러운데...

뭐 그래도 연습 많이 했으니 괜찮겠지. 까먹지 않고만 하면 문제없이 소화해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니까.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자리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관객이 있는 상태에서 춤을 춰 본 것은 처음이라 긴장도 되고 실수할까 봐 걱정도 되고 머리가 하얘 질 즈음 우리의 살사 쇼는 시작되었다. 칼리 스타일 살사를 하는 중에 스텝 하나를 좀 늦게 시작한 것 외에는 성공적. 그리고 제이슨과의 춤이 끝날 무렵, 갑자기 제이슨이 나가고 급 빅터가 들어오더니 자연스럽게 살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브라이언으로 이어지고 다시 제이슨으로 마무리.


꿈같았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에 더 감동적이었다. 진짜 댄서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바로 선생들이 하는 살사 쇼가 시작되었고 모든 쇼가 끝났을 때, 우린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빅터, 페르난다, 제이슨, 브라이언 그리고 나. 이제 며칠 후면 떠나는 나를 위해 친구들이 몰래 계획했던 서프라이즈 이벤트였다.


당시 찍었던 동영상을 보면 어찌나 실수만 보이던지. 그래도 너무나 소중한 추억을 남겼다.


친구들과의 살사쇼 기념사진


내가 춤추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어주던 스위스 친구 카린이 너무 잘 췄다면서도 부럽다고 말했다.


“너도 여기서 오래 다녔으니 해줄지도 몰라.”


그날의 흥분을 뒤로한 채 난 칼리에서의 나머지 시간 대부분을 살사 학원과 살사 클럽에서 보냈다. 어찌 보면 그리 특별하지 않게 떠나기 전까지 춤추며 놀며 지냈던 것 같다. 낮에는 N과 함께, 밤에는 페르난다와 카린이와 함께, 간혹 브라이언이 클럽에 오기도 했다.


살사클럽에서 살사학원에서


금요일에는 N과 우리 집에서 밥을 먹고 밤엔 집 근처 가맥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보기 드문 동양인 두 여자가 맥주 마시는 것이 신기했던지 어떤 콜롬비아 아저씨가 맥주를 사주셨다. 괜찮다고 사양했음에도 편하게 들라고 주시던 아저씨. 영어도 꽤 하셔서 우리 테이블에서 대화까지 나눴더라는. 그날 맥주를 화장실 문지방 닳을 정도로 마셨다.


N과의 맥주 쓰나미


토요일은 하루종일 바빴다. 오전엔 호박전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해 호박전 두 접시를 만들어 학원에 가져 갔고 점심은 페르난다와 N을 불러 같이 집에서 먹었다. 페르난다의 마지막 수업이 끝날때쯤 맞춰서 소시지 야채볶음을 만들어 학원으로 가져가 같이 저녁까지 먹었다.


친구들에게 만들어 가져다 준 호박전과 소시지 야채볶음


밤에는 N을 포함하여 다 같이 2차 살사 클럽 카페 미 띠에라로 향했다. 파비앙과 브라이언까지 와서 함께 럼을 마시며 춤추고 놀았다. 살사 음악이 아니어도 좋았다. 내가 이랬던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신나게 춤췄다.


음주는 좋아해도 가무는 안 좋아했던 내가 여기, 콜롬비아 칼리에서 춤을 추고 있다.



칼리에서 보낸 토요일, 광란의 밤


한국에서 춤추러 갔을 때가 스무 살 무렵 나이트클럽(내가 어렸을 때는 클럽이라는 단어는 항상 나이트가 함께했다)에 갔던 것이 전부였는데. 다시 한국에 가면 신데렐라의 마법이 사라진 것처럼 난 가무와는 담을 쌓고 지낼 것이라는 걸 안다. 물론 살사 음악이 나오고 살사를 출 수 있는 남자 파트너가 있다면 어디서든 춤추겠지만.


다음날에는 드디어 카린이를 우리 집에 초대했다. 항상 누굴 초대하면 밥상에 삼겹살이나 고기가 올라가기에 채식주의자인 카린이를 한 번도 초대하지 못해 마음에 계속 걸렸었는데 떠나기 전날이 되어서야 드디어 초대할 수 있었다. 오늘의 메뉴는 수제비. 다 같이 힘을 합쳐 수제비 반죽을 떼어내니 금방 끝났다. 보글보글 감자와 함께 끓여 맛있는 수제비 완성. 김치가 없어 김칫국물에 양파를 담가 둔 것을 꺼냈다.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아 김치를 새로 담그기 어려워 남은 김칫국물에 양파만 넣어뒀는데 이럴 수가. 카린이가 숟가락으로 김칫국물까지 다 떠먹네??!!


“나 한국 가야겠어. 김치 너무 맛있어.”

“이렇게 김치 먹는 외국인 처음 봐.”

“왜? 이렇게 먹으면 안 되는 거야?”

“아니, 보통 한국인이 이렇게 먹어.”


카린이를 위한 감자수제비와 김칫국물에 빠진 양파


진작에 김치 만들어줄걸. 괜찮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것이 그녀에게 만들어줄 마지막 한식이라 생각했지만 카린이는 그 해 여름 쿠바에 놀러 오게 되었다. 고로 나와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떠나는 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학원 근처 식당에서 메뉴 델 디아(오늘의 메뉴)로 점심을 해결한 후 다 같이 찍은 사진을 인화했다. 그리고 사진 사이즈에 맞는 액자를 사러 센트로를 여기저기 뒤지고 다녔다. 결국 성공! 같이 춤췄던 모두에게 각자 하나씩 사진을 액자에 넣어 선물로 줬다.


우리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액자에 담아


마지막 날은 오후 내내 학원에서 놀다가 저녁쯤 집에서 짐을 가지고 학원으로 왔다. 그리고 학원 근처의 살사 클럽인 라토파 앞에서 파는 감자 소시지 볶음과 맥주를 마시며 버스 시간까지 기다렸다. 계속 같이 있어준 친구들에게 너무 감사했다.

페르난다, 카린, 브라이언 그리고 N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터미널로 출발. 보고타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내가 칼리를 떠나는구나. 버스 안에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삭막한 칼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계속 울었다.


다시는 못 올 사람처럼.

반년 뒤에 다시 올 줄 꿈에도 모른 채.


보고타로 가는 버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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