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의 일 년 그 시작
쿠바에 도착했다. 세 번째 방문이다. 입국 심사를 잘 마치고 짐 찾는 곳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입국 시 걱정하는 것, 쿠바 입국 시 여행자보험은 가끔 물어보지만 아웃 티켓 여부는 물어본 적이 없다. 아웃 티켓은 보통 출국하는 국가의 체크인 카운터에서 물어본다. 물론 언제 떠나냐고 물어볼 수는 있다. 그래도 무슨 일이 언제 터질지 모르니 항상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짐을 기다렸다. 쿠바 아바나 공항은 짐이 굉장히 늦게 나오는 편인데 그것도 복불복이다. 당연히 짐이 늦게 나올 줄 알고 지인이 쿠바에 도착하는 날 늦게 갔다가 지인이 나를 기다린 적도 있으니까.
기내에서 만난 쿠바노(쿠바 남자)는 짐 가방이 이민가방 트리플 확장 수준으로 거대했다. 오랜만에 쿠바에 간다고 했으니 이것저것 챙겼을 테지. 쿠바에는 없는 게 많으니까 가족에게 줄 것들이 많았을게다. 짐을 찾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짐 검사하는 곳에 가서 확인을 받으란다. 먹을 것이 많았던 내 수하물에서 뭔가를 발견했나 보다. 이미 수하물 태그에 남과 다른 엑스인지 뭔지가 매직 같은 것으로 써져 있었다. 택시를 같이 타기로 했던 쿠바노도 나와 같은 검사행에 당첨. 그렇게 둘 다 짐 검사받는 곳으로 갔다.
먼저 그의 짐을 풀었다. 눈에 들어온 것은 치약과 초콜릿, 그리고 기타 등등 생활용품들이었는데 보통의 쿠바에서 비싸거나 찾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 약병처럼 생긴 것이 있었는데 그게 문제였나 보다. 콜롬비아에서는 문제없지만 쿠바에서는 세금을 내야 하는 의약품? 뭐 그런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세금 내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 캐리어를 열었다. 고추장 된장을 보더니 뭐냐고 묻는다.
“이게 뭐야?”
“한국 전통 소스야”
“이건?”
“한국 전통 매운 소스야”
이래저래 한국 음식에 대해 어디서 들은 것은 있는지 맛있겠다 라는 그런 뉘앙스를 풍겼다. 사실 이번에 내가 갖고 있던 짐은 라면과 고추장과 된장, 간장, 액젓, 고춧가루 등 이 정도가 다였다. 김치와 단무지 등 내가 사랑하는 한식들은 이미 콜롬비아에서 다 소진했기에 남은 것이라고는 저것뿐. 당시에는 몰랐는데 잘 싸서 넣은 먹다 남은 액젓 뚜껑이 덜 닫혔는지 비닐 밖으로 액젓이 조금 새는 바람에 한동안 캐리어에 액젓 냄새가 났었다. 윽.
그렇게 난 무사히 나와 공항 앞에서 택시를 같이 타기로 한 쿠바노를 기다리는데 그가 헐레벌떡 몸만 나온다. 세금으로 낼 쿠바 페소인 쿱을 찾으러 가야 한단다. 그렇게 장시간 기다려 드디어 택시 타는 곳에서 그를 만났다. 택시는 쿠바노가 잡아도 똑같이 25쿡. 둘이 가는 곳이 다르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 아저씨도 흔쾌히 오케이. 간혹 내리는 곳이 다르면 두배를 내라던가 돈을 더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으니 미리 합의를 봐야 한다.
“난 젠틀맨이니까 내가 13쿡 낼게. 네가 12쿡 내.”
“알았어. 고마워.”
이런 젠틀한 쿠바노를 봤나?!! 하며 흐뭇해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내리며 나에게 준 돈은 12쿡이었다. 잠시 멍 때렸지만 그냥 내가 잘못 들었나 하고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친절한 택시 기사 아저씨와 함께 에어비앤비로 미리 예약한 한 달 지낼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사진보다 좀 비좁아 보였다. 올라가는 계단이 매우 가파른 데다 창문이 크지 않아 너구리 굴 같은 느낌? 그래도 방과 거실이 나눠져 있었고 나만의 공간이라 좋았다. 장롱이 매우 컸고 침대도 나쁘지 않았으며 작은 식탁에 탁자 그리고 소파까지 있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쿠바에서는 당연하지 않다. 장롱 있는 까사(쿠바에서 여행자들이 머무는 숙소를 까사라 함)가 많지 않고 방과 거실이 구분되어 있지 않은 곳도 많으며, 침대 스프링이 꿀렁꿀렁하기도 하고 식탁과 탁자가 제대로 다 있지 않는 곳도 많다. 생각해보면 그 집은 한 달 렌트비 450불짜리의 집은 아니었다. 에어비앤비에서 수수료를 떼 가고 주인아저씨에게 남는 돈이 400불이라 치면 뭐 어쩔 수 없겠지만 그 집의 적정 가격은 300-350불이라 생각한다. 이것저것 새로 고쳐놓고 까사를 새로 연 집이라 수익 창출을 했어야 했을게다. 아무튼 내 쿠바 첫 집과의 만남은 나쁘지 않았다. 짐을 놓고 나의 단골 햄버거집에 가서 첫 식사를 하는 것으로 셀프 웰컴 투 쿠바!
다음날, 남미 배낭여행을 끝내고 한국 귀국 전 모든 것을 나누고 가겠다는 나눔 천사에게 한식 재료를 받기로 했다. 인터넷이 자유롭지 않은 쿠바에서의 약속은 정확한 장소와 시간이 필수다. 예전 삐삐가 나오기도 전 어렸을 때 친구와 약속하면 꼭 그곳에서 만나야 되듯이 우린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서 만났다. 그녀가 나에게 준 것은 고춧가루와 간장. 고춧가루는 거의 쓰지 않은 큰 새것이었고 간장은 주먹만 한 사이즈의 작은 통에 들어있었다. 쿠바에서 투어 가이드하는 한국인이 먼저 간장을 컨텍했다가 용량이 너무 적다고 패스했단다. 양이 적어도 쿠바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한식 재료라 난 뭐든 좋았다.
우린 비에하 광장으로 이동해 생맥주를 한 잔 하며 적당히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이제 쿠바에 도착해서 여행이 아닌 생활을 시작하는 나와는 정 반대로 긴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시원섭섭한 심정을 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여행자와의 이런 대화는 기분이 좋다. 시시콜콜 누군가의 카더라 통신이나 남 이야기를 남발하지 않아도 되고 서로의 나이나 직업을 물을 필요도 없다. 여행을 오래 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상대방의 나이나 직업을 묻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서로 편하다. 동행하다가 스스로 말하거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며 질문이 아닌 삶의 이야기를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이 뭐하는 사람인지 나이가 몇인지 그런 질문 자체가 이젠 피곤하다. 그렇게 우린 적당하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5년간 매해 배낭여행을 1-2달 다녔던 적이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내 삶을 부러워했다. 일도 하고 여행도 한다고. 하지만 실상을 알면 그리 부러워할 삶도 아니었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에 매해 약속되지 않은 고용 계약을 해야 했고 1년 단위의 계약도 아니었기에 퇴직금조차 없었다. 다만 5년간 몸 담았던 그 회사가 좋았던 것은 일 하지 않을 때 여행을 갈 수 있던 것, 서로 존댓말을 썼던 것, 그리고 일만 제대로 하면 딴짓을 해도 뭐라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다음 고용 계약을 할지 말지 정해지지 않아 불안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계약이 끝나 여행을 떠난다’라는 나름의 이유를 앞세워 여행을 다녔었다.
그렇게 여행이 너무 좋아서 여행을 가지 않는 일상생활 속에서는 금욕주의를 하면서 살기까지 했다. 저축도 해야 하고 여행비용도 마련해야 했던 당시 내 월급을 쪼개고 쪼개서 생활하려면 그래야만 했다. 항공권은 프로모션으로만 구매하고 여행자 숙소만 찾아다니며 동남아시아 위주로 여행했다. 여행경비가 저렴한 이유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동남아시아를 여행하고 오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삶에 감사하게 되는 이유가 컸다. 그렇게 여행에 여행을 거듭하다 전직을 하기엔 많은 나이에 여행업으로 전직을 하고 또 여행을 하다가 콜롬비아에서 살사를 배우고 이제 쿠바까지 넘어오게 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내가 쿠바에서 일 년 넘게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 큰 배팅을 할 정도로 간이 큰 편도 아니고 사업을 할 정도의 깜냥도 못 된다. 그저 소심하기 그지없는 적은 월급이라도 소시민의 삶에 만족하고 살아왔던, 동남아시아 여행자의 필수 덕목인 수영도 못하고 스쿠터며 자전거도 잘 못 탈 정도로 겁이 많지만 사람을 쉽게 믿어 뒤통수 자주 맞는 스타일인 나였다. 프리랜서로 뭔가를 시작할 엄두조차 못 냈던 내가, 쿠바에 온 지 한 달 만에 남의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 년 넘게 쿠바에서 지내게 될 줄이야!!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사
모든 것은 다 뜻이 있어서 생긴 일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