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유 Sep 25. 2020

마지막 떡볶이

쿠바에서 식량 소진 중


어려서보다 커서  좋아했던  소울 푸드 떡볶이. 지금도 연락하는 중학교 친구이자 재작년 칸쿤에서 몇 달 같이 살았던 D는 가끔 내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했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내가 뚝딱하고 만들어줬던 떡볶이는 라면도 없었고 오로지 떡만 있었는데 그렇게 맛있었다고.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떡볶이 귀신이 되었던 듯하다. 떡볶이 떡보다 떡국떡으로 만든 떡볶이를 좋아했던 난 쿠바의 우리 집 냉장고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떡볶이를 많이 쟁여두고 있었다.


그래 봤자 제품 떡볶이 세 봉지에 떡국떡 한 봉지


유통기한을 종종 확인하며 가장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떡볶이는 안쪽에, 빨리 먹어야 하는 떡볶이는 바깥쪽에 김치통 뒤편에 잘 정리해뒀었다. 쿠바에 코로나가 시작된 후에도 국물 또는 보통 제품 떡볶이에 떡국떡까지 갖고 있었으니 마음 든든.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 한 달에 두세 번은 먹어도 될 정도로 떡볶이 보유량이 쿠바에서 아마 가장 많았을게다. 그랬던 내 떡볶이가 7월쯤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왜 이렇게 슬프고 아쉽지?


작년, 쿠바에 왔을 때 떡이 없던 시절 라면으로 라볶이를 만들어 먹곤 했다. 중남미 쪽에서는 멕시코 빼고는 떡이 귀한 편인데 쿠바 비자가 끝날 때쯤 주로 콜롬비아 보고타, 칼리나 멕시코 칸쿤에 다녀왔기 때문에 떡을 사 올 일이 별로 없었다.


작년 3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쿠바에 왔을 때였다. 보고타에서 비싼 돈 주고 사온 떡볶이 떡을 짐 싼다고 압력솥 안에 넣어두고는 이틀 만에 생각나 압력솥을 열어봤을 때는 이미 떡볶이 떡에 초록색 꽃이 피었었다. 어찌나 아깝던지. 그 후로 떡 구경 못하고 있다가 몇 달 후 콜롬비아에서 온 산타 언니가 떡을 사 왔던 것이 그다음이었다. 물론 나처럼 보고타의 같은 한인 마트에서 사 온 그 떡은 요리를 하면 되직해져서 떡볶이가 아닌 떡이 되어버린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 후로는 쿠바에서 제품 떡볶이나 유통기한이 긴 제품 떡을 주로 먹게 되었다. 모두 지인이나 손님이 사다주신 떡볶이들이었다. 한 봉지 먹으면 또 누군가 사다주시고 그렇게 반복되다가 쿠바에 코로나가 시작된 후로는 갖고 있는 한식 재료로만 생활해야 했기에 아껴두며 먹기 시작했다.


근데 이것도 마지막이라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3월부터 야금야금 먹던 제품 떡볶이. 7월에 드디어 마지막 떡볶이를 개봉했다. 아직 떡국떡도 어느 정도 남아있긴 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전처럼 떡볶이를 1인분씩 몽땅 해 먹지 못했다. 조금씩 조금씩 라면 반개 정도를 함께 먹기도 했고 닭 한 마리 요리를 만들 때 감자와 함께 넣기도 했으며 닭갈비를 해 먹을 때 조금씩 넣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A가 떡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는 것. 떡을 넣은 요리를 줬을 때 호감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뭐든 잘 먹긴 했지만 수제비의 반죽이라던가 떡볶이의 떡이라던가 닭 한 마리나 닭갈비에 넣은 떡을 먹을 때를 보면 아주 좋아하는 느낌은 아니었기에 나 혼자 먹어도 미안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혼자 먹어도 미안하지 않았던 음식이 바로 떡이었다.


이 각박한 쿠바에서, 그것도 식량 구하러 다녀야 했던 코로나 속 쿠바에서 떡국떡으로 떡국을 두 번이나 해 먹었고 떡볶이도 여러 번 먹을 수 있었으니 나름 복 받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쿠바에 있다 보면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게 된다.
웃픈 현실.


두 번의 떡국
떡국떡으로 만든 두 번의 떡볶이


마지막 제품 떡볶이는 사실 떡볶이로의 운명을 벗어나 다른 요리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 귀한 닭고기를 구했을 때부터는 닭갈비에도 들어갔고 나름 동대문의 유명한 닭 한 마리 요리를 만들어 볼 때도 들어갔다. 짠내가 진동할 정도로 몇 번 요리에 넣을 수 있을지 떡 하나하나 세어가며 분배했었다.


떡이 들어간 닭갈비
떡이 들어간 닭한마리


진짜 마지막 떡볶이는 당면까지 넣어 만들어 먹었다. 떡도 몇 개 없었고 라면도 1/4을 쪼개서 넣은지라 얼마 안 남은 당면을 조금 넣어봤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그리고 떡볶이 떡과 떡국떡은 그렇게 내 냉장고에서 사라졌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이 인생사,
라면도 없고 떡도 없을 때 떡볶이가 먹고 싶다면?


마지막 떡볶이와 파스타 떡볶이


파스타로 만들어 먹는 파스타 떡볶이가 있다. 물론, 라볶이보다 못하고 떡볶이보다는 더 못하지만 맛은 떡볶이 맛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 이렇게라도 떡볶이를 추억하며 코로나 시대의 쿠바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본다.


한국 가면 내 떡볶이 맛집부터 가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말레꼰 일몰, 오랜만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