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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Oct 29. 2020

김치전쟁 인 쿠바

쿠바 사람이 이렇게 김치 잘 먹기 있기 없기?


코로나가 시작되고 어느덧 가을이 찾아왔다. 쿠바는 사계절이 없는 나라이니 가을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나에겐 9월은 가을이니까. 7~8월의 무더위도 점점 멀어져 갔던 9월, 이제 갖고 있던 한식 재료들도 점점 바닥나고 있던 상황이었다. 장류는 그래도 어느 정도 갖고 있었지만 질리도록 많이 담아 먹은 오이김치도 이제 질려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얼갈이처럼 생긴 근대 김치는 쓴맛이 나기 때문에 많이 담그진 못했는데 오이가 질려버리니 근대 김치라도 담아먹어야 했다. 근대 김치는 익으면 쓴맛이 나지만, 그걸 볶거나 끊여서 찌개로 먹으면 쓴맛이 사라진다. 그래서 푹 익혀서 쉰내가 훅 날 때까지 둔 다음에 볶거나 끓여먹었다.


근대김치


그나마 달러 상점에서 살 수 있었던 참치 캔이 유용하게 쓰였다. 참치 캔을 넣고 찌개를 끓일까 하다가 근대 김치로는 참치 김치찌개를 만들어본 적도 없고 그다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볶아먹기로 했다. 근대 김치찌개를 끓일 때는 스팸을 넣는 것이 좋다. 그건 실패가 없다. 하지만 이제 스팸 캔도 다 먹어버렸는걸?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참치가 없을 때 근대 김치를 그냥 볶았는데도 맛이 있었다. 특히 A가 어찌나 잘 먹던지. 너 쿠바 사람 맞니? 신기한 게 A는 매번 쉬어 터진 김치는 냄새만 맡고도 이미 상했다고 버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그걸 볶아주면 너무 맛있다며 왜 이걸 이제야 주느냐는 듯이 말한 적도 있었다. 그래! 이번엔 참치를 넣어서 근대 볶음김치를 만들어보자.


근대김치볶음


한국 참치가 살이 튼실하고 부서지지 않는데 달러 상점에서 산 외국산 참치캔은 살이 다 부서진다. 좀 지저분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참기름도 다 떨어지고 들기름도 없으니 참치캔에 있는 기름으로 김치랑 볶으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수북하게 쌓였던 김치는 볶은 후 절반 수준으로 숨이 죽고 양이 줄어들어 버린다. 내 김치 다 어디 간 거야! 그래서 처음부터 양을 많이 잡아서 김치를 볶는다. 그래도 확 줄어드니까.


참치근대김치볶음


그렇게 완성된 참치를 넣은 근대 김치볶음. 보기엔 별로라도 맛은 그럴싸하다. 그리고 우린 밥상머리에서 전쟁을 치르게 된다. A의 젓가락은 볶음김치를 계속 향했고 조금씩 먹는 나와는 다르게 젓가락으로 한 움큼 집어 가져가는 A를 보며 결국 먹을 것 가지고 싸우는 어린애들이나 하는 짓을 하게 되었다.


"조금씩 먹어!"

"왜?"

"이것밖에 없단 말이야. 너는 김치 없어도 살지만 난 못 살아"

"알았어. 이것까지만 먹고"


그렇게 마지막 젓가락질에서 그는 김치를 거대하게 움켜쥐고 본인의 밥그릇으로 가져갔다. 마음 같아서는 그 젓가락을 막고 싶었지만 김치를 잘 먹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나를 발견하여 그것까지는 차마 하지 못했다. 한식을 너무 잘 먹는 A를 보며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자주 했다.


"우리가 헤어지면 넌 나는 잊어도 넌 내 음식은 오래 기억하게 될 거야"


그렇게 쿠바 사람과 김치전쟁을 했다. 근대 김치볶음을 어찌나 좋아하던지. 참치 없이 볶아도 잘 먹고 참치가 있으니 더 잘 먹는다.


근대 김치뿐만 아니라 그냥 김치도 A는 잘 먹었다. 11월부터 4월까지 배추 구경을 할 수 있는 쿠바에서 특히 겉절이를 만들면 그렇게 잘 먹을 수가 없던 A는 적당히 잘 익은 김치는 잘 먹었지만 신김치는 이미 상했다며 버리라고까지 말했었다. 하지만 그 신김치를 찌개 끓여주면 너무 맛있다고 잘 먹었더라는.


"이게 그 신김치야! 네가 상해서 버리라고 했던 것!"

"진짜? 신기하네. 맛있어."


마지막 하나 애지중지 남은 캔 김치를 꺼내 참치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왜 이 캔 김치는 맛이 없지? 신김치로 끓여야 맛있는 김치찌개인데 맛이 신김치가 아니었다. 보통 캔 김치는 신김치인데 말이다. 어이없이 마지막 캔 김치도 보내고 근대 김치도 다 떨어져 간다. 지역 간 이동은 아직 차단된 상태라 채소 수급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시장에서 근대를 못 본 지 오래되었다. 결국 오이김치를 또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오이가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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