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살사 클럽, 새로운 살사 학원
쿠바에 짐 싸들고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한국인 여행자들과 밥을 먹고 같이 살사 클럽에 갔다. 쿠바 아바나에도 나름 특정 요일마다 핫한 살사 클럽이 있었는데 수요일은 라그루타 (LA GRUTA)! 여긴 원래 레게톤 클럽인데 수요일만 살사 클럽으로 운영한단다. 그래서 수요일에 살사 클럽 어디 가야 하나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라그루타를 가라고 했기에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움직였다.
밤 10시에 입장이 된다고 해서 밖에서 대기. 다행히도 10분 전쯤부터 입장을 시켜줬다. 거의 문 열자마자 들어간 셈. 입구에서 입장료 5쿡을 내고 내려가면 짐을 맡기는 곳이 있는데 몸에 붙는 아주 작은 힙색 정도가 아니라면 모두 맡겨야 했다. 너무 일찍 들어가서 썰렁썰렁.
‘여기 핫한 살사 클럽 맞나?’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이 입장하기만을 기다렸다. 아까부터 클럽 입구에서 봤던 사람들이 들어와 앉기 시작했고 조금씩 조금씩 늘긴 했지만 북적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테이블마다 각기 다른 일행들이 앉았고 난 아까부터 함께했던 쿠바 여행을 온 내 또래나 언니로 추정되는 여자분 두 분과 같이 앉았다.
곧 살사 음악이 나오고 몇몇은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모두 같은 일행의 같은 테이블. 테이블을 자세히 보니 다들 남녀 성비가 비슷했다. 우리랑 비슷하게 들어온 4인 팀이 있었는데 젊은 쿠바노와 나이 든 외국 여자들이었다. 이런 커플들은 쿠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합이다. 딱 봐도 나이차가 꽤 나 보이는 남녀인데 간혹 젊은 쿠바노가 살사 선생일 때도 있기 때문에 꼭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는 없다. 물론, 그 살사 선생과 그 이상의 것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살사도 배우고 연애도 하지만 심각한 관계까지는 가지 않기도 하고, 결혼을 한다고 해도 몇 년 못 가서 이혼하는 것이 쿠바의 현실이니.
그렇게 춤꾼들이 슬슬 나와 춤을 추기까지는 한 시간이 더 걸렸다. 역시 클럽은 열자마자 오는 건 아닌 듯. 게다가 각자 춤 파트너가 있기에 나 같은 사람은 정말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 쿠바 살사 출 줄 알아도 말이다. 같이 오신 분들은 아직 살사는 안 배워봤다고 하셨지만 나는 너무 살사가 추고 싶었었다.
건너편 테이블에 어디서 많이 본 쿠바노(쿠바 남자)가 있었다. 1월에 두 번째 쿠바 여행을 왔을 때, 쿠바 살사를 배우면서 잉글라테라호텔 루프탑을 자주 들락날락거렸는데 그때 거기서 봤던 사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프리랜서 살사 선생이었고 그날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살사 클럽에 온 것이었다. 각자 파트너와 함께 춤을 추는데 남녀 모두 너무 잘 췄고 쿠바 살사의 꽃인 루에다(파트너 바꿔가며 추는 쿠바 살사)를 2팀 이서 추는데 어찌나 재미나게 추던지. 부러운 눈으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는데 아마 입도 벌리고 쳐다보고 있었는지도? 그렇게 계속 사람들 춤추는 것만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 날아다니던 춤꾼 중 한 명이 나에게 와서 살사를 추자고 춤을 청했다. 난 너무 티가 나도록 광대승천.
아무래도 그는 내가 살사의 살도 모르는 살사 무지렁이라 생각했단 것 같다. 곧잘 추는 것을 보더니 놀란 눈치. 왜 동양인은 못 출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아니다. 그냥 내가 춤 못 추게 생긴 것일지도. 외모만 보면 어디 책상머리에서 공부만 하게 생겼으니. 이제 춤 잘 출 것처럼 옷을 야하게 쫙 빼입고 가야 하나? 그러나 저러나 어차피 춤 파트너 없으면 어딜 가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는 매한가지다. 오랜만에 춤 잘 추는 사람과 쿠바 살사를 추니 기분이 좋았다. 딱 한 곡뿐이었지만. 그렇게 목 빠지게 기다리다가 정말 한 곡 추고 나왔다. 아직 먼저 춤 신청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능동적이지 못했던 나.
다음 날, 새로운 살사 학원에 쿠바 살사 배우러 가는 날. 전날 미리 가서 시간 예약을 잡았기 때문에 시간만 맞춰서 가면 되었다. 쿠바에 다시 왔을 때, 1월에 쿠바에서 살사를 배웠던 선생한테 배우려고 했는데 비수기라고 시간당 10쿡이었던 가격을 12쿡으로 올렸단다. 당시 좀 친하게 지냈던 워킹투어 가이드하던 친구가 비수기인데 어이없게 가격 올렸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했었다. 위치도 아바나 대학과 가까워서 걸어갔다 오기엔 좀 먼 거리. 12쿡이면 올드 아바나의 다른 유명한 살사 학원과 맞먹는 가격이기에 나도 다른 학원을 알아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느 학원을 가야 하나 차일피일 미추고 있었다. 마침 멕시코로 출장 왔다가 쿠바 아바나만 며칠 여행하고 가신다던 한국 여자분을 만나 맥주를 한 잔 하며 이 학원을 알게 되었고 그분 살사 수업을 따라갔다가 나도 예약하게 된 것이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학원에 도착했지만 원장 선생은 단체 수업하느라 바쁜 상황. 당연히 어제 나와 대화했던 원장 선생이 알려주는 줄 알았는데 다른 수업 때문에 오늘만 다른 선생이 알려준단다. 그렇게 뭔가 급한 부름을 받고 헐레벌떡 뛰어온 것 같은 대타 선생과 만났다.
발레를 할 것 같은 몸에 사슴 같은 눈망울을 갖고 있던 그의 이름은 루이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더니 광대가 위로 승천하고 있었다.
너.... 너무 잘 생긴 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