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보는데 '노희경 작가에게 연기로 혼난 김혜자'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노희경 작가님을 너무도 좋아하는 나는 홍보용 글이란 걸 알면서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국민엄마로 불리는 김혜자 선생님에게 노희경 작가님은 연습 첫날 '엄마를 그렇게 사랑스럽게 하면 어쩌냐' 며 혼을 냈다고 한다. 처음엔 본인도 기가 막혔지만 연기하는 내내 그 말이 도움이 되었다며 작가에게 고맙다고 했다. 인생이 기구한 여자인데 평소 하던 대로 엄마 연기를 했던 것 같다고 그렇게 혼나지 않으면 습관이 남아있다 지적받은 내용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부정적인 내용이라도 좋은 의도로 건넨 피드백이라면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자세히는 책 홍보)
그 글을 읽는데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글에 꾸준히 등장하는 D양.
지금 현재 나에겐 가장 노희경 작가님 같은 존재라 할 수 있겠다. 때때로 그녀가 주는 피드백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기에 그녀와 함께 하고 있다. 같은 MBTI면서도 우린 맞는 게 하나도 없다며 징글징글한 애증 관계라 서로를 칭하는,, '앙숙'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매우 부정적이긴 하나 우리에겐 장난 섞인 의미라 말할 수 있겠다. 강아지와 고양이 같은?
나는 나의 앙숙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1. 감히 말을 걸지도 못하던 사이
우린 대학 선, 후배 사이로 만났다. 가끔 내가 우스갯소리로 "너한테 난 옛날엔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하늘 같은 선배였지."라고 말하면 "맞아, 언니가 키가 커서 옛날부터 내가 올려다보긴 했어." 라며 태연하게 받아치는 꼬맹이이지만 대학시절 우린 친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나는 D양의 다른 동기와 가까웠고 그 동기와 이야기를 나눌 때 늘 D양이 함께 있는 정도였다.
단 둘이 가진 에피소드나 추억도 없다. 몇 년이 지나 친해진 뒤에 그녀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땐 내가 정말 어려운 선배로 느껴졌다고 한다. 지금이야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사람에 대한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 유해진게 있다곤 하지만 그녀에게 그때의 난 진짜 '선배님' 느낌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우린 그 어느 과보다 쓸데없는 위계질서가 강하다는 연기뮤지컬과. 그러나 맹세코 자신하건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짢은 선배들이 선배짓 하는 것을 보며 나는 그런 선배가 되지 않겠다 다짐. 그래서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애들이 날 더 어려워했다. (그녀에게 난 감히 쉽게 말도 걸 수 없는 선배였던 거지. 아, 그런 관계를 지금까지 유지했어야 하는 건데... 지금은 막 기어오르다 못해 가지고 논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너네 동기 집합"이라 외치지만 이제 D양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후배였는데 나는 왜 하필 D양에게 함께 공연을 하자고 한 것일까? (D양은 말한다. 그때 그 제안을 받아들인 후로 우리의 지긋지긋한 인연은 시작된 거라고.)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믿을만한 성실한 후배였기 때문이라는 걸.
FM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일을 할 때 유독 신중해지는 편이다. 특히나 2인극 공연 파트너를 구해야 했기에 책임감 있고 함께 호흡 맞춰 잘 해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동기와 후배 등 다양한 인물들을 생각했다 떠올린 게 바로 D양. 졸업 이후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으나 (중간에 대형 뮤지컬 조연출 자리를 제의한 적이 있어 번호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대학 시절 열심히 했던 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무작정 연락을 하게 되었고 마침 나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 금방 만나는 약속도 잡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2층에 자리 잡고 있던 식당 '니뽕내뽕'의 바닥이 어찌나 쿨렁쿨렁 대던지 혹시나 밥 먹다 무너질까 신경이 쓰였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까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까진 '선배님 선배님' 하며 무척 깍듯하게 굴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어렴풋 생각나는 것 같다.
2. 1000회 이상 함께 한 나의 파트너
말 그대로 우린 한 작품을 1000회 이상 함께 공연했다. 아동극과 성인극 두 작품 모두 2인극을 함께 했다 보니 쌓인 에피소드도 사건사고도 넘친다.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는 매번 다른 사건사고가 터졌다)
오퍼레이트의 실수 정도야 '그럴 수 있지' 하며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이고 공연 중 갑자기 조명이 꺼진다거나 공연장 자체가 정전이 되어 생라이브로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멀쩡하던 테이블이 갑자기 넘어져 애드리브 대사를 하며 테이블을 조립한 적도 있고 우리와 더블 캐스팅이었던 배우가 오지를 않아 공연 보러 갔다 10분 안에 분장을 하고 무대에 선 적도 있다. 공연 중 D양의 가발이 벗겨져 웃음을 겨우 참았던 일도, 율동을 하다 옷이 서서히 벗겨지려는 바람에 붙잡고 무대를 마친 경험도 있다.
한 번은 D양이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사를 점프해 버리고 자기는 퇴장해 버리는 바람에 혼자 무대에 남게 되었던 당황스러운 사건도 있는데 수 없이 많은 공연을 함께 해서 그런가? 나중엔 둘 중 누군가 대사 실수를 해도 어떤 사건사고가 무대 위에서 생겨도 아무렇지 않게 수습하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무대 위에서 만큼은 눈만 마주쳐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뭐가 문제인지 나눌 수 있는 사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배우가 4명이나 등장하는 성인극에서 그녀가 대사를 까먹는 바람에 나의 대사들이 모두 날아가 버려 그녀는 아직도 미안해하고 있다고 한다.)
3. 반대가 끌리는 이유
두 사람 이렇게 다르지만요. 모든 게 완전히 정말 반대지만요.
D양과 나는 많은 것들이 다르다. 그녀는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지만 나는 커피를 좋아하고 술을 못 마신다. 그녀는 밥과 한식을 좋아하고 가리는 음식이 거의 없으며 해산물을 좋아하지만, 나는 빵을 더 좋아하고 단 걸 좋아하는 초딩 입맛이며 가리는 음식이 꽤 많다. 그리고 고기를 사랑한다.
그녀는 무언가를 구입할 때에도 일을 추진할 때에도 생각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반면 나는 추진력이 빠른 편이다. 나는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는 취향이 분명하며 전시회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녀는 딱히 좋아하는 취향이 없다 말한다. 전시회도 나와는 같이 가지만 혼자 보러 가진 않는다.
이렇듯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을 나눌 때면 우린 정말 많은 것이 서로 다르다는 걸 느낀다.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는 건 두 사람의 남자 취향이 1도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신기한 건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우리 두 사람이 16년 공연을 시작으로 20년도 단체를 설립해 내내 붙어 다니며 함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와는 반대되는, 매일 티격태격 거리는 이런 D양과 함께 하며 내가 느낀 것이 있다면 나와는 다르기에 우리가 더 잘 맞는 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장난스레) 앙숙이라 말하는 그녀와 함께 여태껏 함께 하는 그 이유는...!
다음 편에서 소개해보려 한다.
(그녀에 대해 굳이 이렇게 까지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지만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 버렸다. 그러나 꼭 읽지도 않아도 되는 여행 가다 잠시 들리는 휴게소 같은 글이라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