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나의 가을은 사랑이 충만하였다.
미움도 사랑이었고
질투도 사랑이었고
계절의 냄새도
하늘에 떠있는 달도
무작위로 들려오는 음악도
모두 사랑이었다.
단,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였고 마음껏 표현할 수 없어 후회의 연속인 날들이었다.
체력 저하로 미각과 후각의 기능을 잃어버린 요즘,
가을이 오고 있는 것인지 그 향도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의 계절이 무엇인지, 오고는 있는지 감각으론 느낄 수가 없다.
아직 몸이 끈적끈적하고 여전히 양산을 쓰고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가을은 좀 더디게 오고 있는 모양이다.
비가 휘몰아쳐 내리다 멈췄다를 반복한다.
덕분에 더위도 지나갔음 좋으련만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나 보다. 아주 시원하진 않지만 그나마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 방 침대에 누워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잠시 휴식기를 가져 보았다. 그러다 쓰다 멈춘 지 몇 개월이 지난 일기장도 펼쳐보고 오랜만에 지난 글들도 다시 한번 읽어본다.
잘 지낸다. 이 계절을 못 지내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다시 나의 일상을 잘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리도 수 없이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고 후회할 것이었다면
차라리 상처를 받는 대신 실컷 사랑이라도 해볼 걸 그랬다.
이래나 저래나 후회였을 텐데.
답답함을 분출하기 위해 혹은 위안 삼기 위해 썼던 글들이 아직도 읽힐 때를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보고픔이었고 욕심이었다. 보낼 수 없는 마음이고 부칠 수 없는 편지이었기에 그때는 글을 쓰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어떻게든 빈틈을 비집고 나오려는 감정 덩어리를 꾹꾹 눌러 담으려 애쓰며 쓰인 글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때 글을 썼던 글들이 나에게 연습이 되었단다.
얼마 전 곧 공연에 올려야 할 대본을 급하게 쓰게 되었다. 내 수업을 듣고 있는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낭독극으로 발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집중이 잘 된 덕분에 5시간 만에 개개인의 경험담을 담아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했다.
첫 리딩날 사람들이 눈물을 보이는 바람에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대사 몇 마디에 눈시울이 빨개지다 못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 역시 눈물을 닦아내었고 넓은 공간의 공기는 순식간에 무거워져 버렸다. 공감되는 글 덕분이라 하였다. 몇 번이고 마음에 와닿아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고. 급하게 썼음에도 모두들 대본을 마음에 들어 해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지인들 역시 뒤늦게 이어진 술자리에서 글을 잘 썼다 칭찬해 주었다. 지난가을부터 그토록 열심히 글을 쓰더니 그동안 글쓰기 연습이 된 것 같단다. 나는 '좋아해야 하는 거야?'라고 웃으며 답했다.
여전히 부계정엔 글을 썼다 지웠다, 올렸다 숨겼다 줏대 없이 나대는 중이다. 그 이유를 나는 내가 어쩔 수 없이 감정에 예민한 예술가이기 때문이라 변명해 본다.
혹은 아직도 가을이 다 지나간 것은 아닌지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