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를 앞두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 오늘 하루는, 종일 짐을 싸는 데에 집중했다.
남편에게는 그 동안 쓰지 못한 한 달 간의 유급 휴가가 있었고, 우리는 그 한달을 캘리포니아에서 보내자고, 결혼 전 그렇게 얘기했었다.
하지만 코로나 덕에 미국 서부 해안을 드라이빙하는 꿈은 살포시 내려놓아야 했다. 코로나가 점점 장기화되면서 한달 휴가를 쓸 타이밍은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갔고, 쓰지 못한 휴가도 푹 묵어버리고 남편의 컨디션도 푸욱, 피로에 절어 버렸다. 결혼 이후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출장이 뚝 끊긴 나도 다른 지역을 여행하는 일이 막 그리워지던 참이었다. 우리는 제주 한 달 살기를 결심했다.
약국장님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신 덕에, 약국을 퇴사하지 않고도 한 달 쉬어 올 수 있게 되었다. 외주 업무도 당분간은 받지 않기로 했다. 오로지 남편과 나의 심신을 더 밝게 충전해 오는 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건강’과 ‘재충전’이라는 여행 컨셉 앞에서, 남편은 오늘까지도 플스5를 가져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두고 가겠다는 의사를 비장하게 밝혔다. 연초도 끊어보겠다고 한다. 나도 음악작업을 위해 커다란 아이맥을 가져갈까 말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작은 건반과 맥북만 간소하게 챙겨가기로 했다. 한 달이란 긴 시간을 대부분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신혼여행보다도 더 긴 시간을 둘이서 붙어 있을 수 있는, 소중한 한 달이다.
짐을 싸려고 보니 괜히 이것 저것 가져갈 게 자꾸만 눈에 띈다. 평소에 안 입고 안 쓰던 것들도 왠지 제주도에서는 입고 쓸 것 같다. 가방에 넣었다 뺐다 한 물건이 벌써 열 가지는 넘는 것 같다. 뭐 이렇게 IT기기가 많은지. 캐리어 안에서 복잡하게 얽혀버린 전선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돌돌 말아 뺀다. 얼마 전 남편과 저녁밥을 먹으며 제주도에 뭘 가져갈지를 생각나는 대로 읊어 보던 중 남편이 말했다. 거기도 다 몇십만 사람 사는 곳인데 필요한 물건 다 있겠지. 여기서 다 챙겨갈 필요 없어. 그러다 대화는 이상한 데로 흐른다. 근데 실제로 제주에 사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갑자기 내기가 시작됐다. 30만, 에이 너무 적은데? 그럼 100만. 100만은 오바고, 난 70만. 네이버에 검색해 본다. 70만을 부른 남편이 이겼다. 제주도에는 대략 68만명이 살고 있단다. 그럼 서울엔 얼마나 살고 있지? 어느 구에 제일 사람이 많이 살고 있게? 이런저런 내기를 하다가 서로의 엉터리 추측들에 웃음이 터지고 만다.
68만 인구가 살고 있는 제주이니 특별히 불편을 겪을 걱정은 안 한다. 다만 섬에서의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를 것이 걱정된다. 아니, 어쩌면 지금 여행을 떠나기 바로 직전, 짐이 빵빵하게 들어찬 캐리어를 바라보는 이 시간이 제일 재미있는 시간인 건 아닐까도 걱정된다. 정말 쓸데없는 걱정들이다. 그런 아쉬움 없게 하루하루를 행복 가득하게 보내고 와야겠다. 그리고 이 육지로 돌아와서도 그대로 매일을, 서로를 소중하게 아끼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