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두 바퀴 (박구윤)
2017년 5월, 나는 고민에 빠졌다. 결혼식을 앞두고 예식장을 잡고, 웨딩드레스와 예복, 한복을 고르는 와중에 나는 진심으로 하나의 문제를 고민했다. '축가는 무슨 노래로 부탁하지...'
축가를 불러줄 친구는 정해져 있었다. 같이 일했던 리포터 J는 동글동글 귀여운 인상에 노래까지 잘하는 귀염둥이였고, 여러 결혼식에서 멋지게 축가 가수 역할을 해낸 경력자였다. 앞서 오빠 결혼식에서 J는 SG워너비의 '라라라'를 불렀는데, 어떤 노래를 부를지 결정한 것은 J가 아니라 새언니였다. J와 새언니의 소통 과정에서 J는 "트로트는 어떻습니까?"라고 (아마도) 장난스레 물었고, 새언니는 "그런 자리 아닙니다"라고 잘라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렇다, J의 주특기는 트로트였던 것이다.
함께 일하며 J의 노래 실력은 익히 듣고 보아 왔던 바였다. 직업 특성상 진짜 가수는 물론 가수 못지않게 노래 잘하는 끼쟁이들이 주변에 많은데, 그런 내 귀에도 J는 트로트를 정말 기가 막히게 뽑았다. 이상하게 당시 함께 일했던 스태프들은 대부분 노래를 잘 불렀는데, PD인 Y는 뮤지컬 쪽 노래가 찰떡같았고, 리포터인 J는 트로트가 콩떡 같았다. 회식의 끝자락에서 Y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즐겨 불렀고 J는 진성의 '안동역에서'를 즐겨 불렀는데, 후렴구인 '안 오는 건지~'에서는 손을 안쪽으로 흔들고, '못 오는 건지~'에서는 손을 바깥으로 흔드는 센스는 잔망스럽다 못해 사랑스러울 지경이었다. J는 그렇게 트로트의 맛을 살릴 줄 아는 친구였다. (J는 지금은 기자다. 기자님, 고마워요!)
그런 J에게 이번에는 내 결혼식 축가를 맡겨야 하는 시간이 왔다. J의 특기와 함께 숨겨왔던 나의 취향을 밝힐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이다. 그리고 나는 축가로 했으면 하는 노래까지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해두고 있었다. 박구윤의 '두 바퀴'였다.
두 바퀴로 달려가는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으면
당신은 앞바퀴 나는 뒷바퀴 두 바퀴로 달리는 사랑
당신 없으면 쓰러지는 내 사랑 우리 사랑 두 바퀴 사랑
쓰러지지 말고 달려요 두 바퀴로 달려요
우리 사랑 영원히 영원히
두 사람의 사랑을 앞바퀴 뒷바퀴로 비유한, 서로의 존재를 응원하는 착한 사랑가다.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라 듣는 사람 모두가 즐거울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1절을 듣고 2절쯤 되면 후렴구를 흥얼흥얼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전형적인 가락을 가진 덕에 귀에도 착착 붙는다. 하객 여러분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힘을 가진 노래이다. 문제는 딱 하나, 장르가 트로트라는 것. 나는 트로트를 내 인생 무대 하이라이트에 세울 수 있을 것인가.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날 J는 다른 노래를 불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상에는 좋은 노래가 너무 많았고, 좋은 가사가 너무 많았다. 나는 끝내 브라운아이드소울의 '그런 사람이기를'을 축가로 요청했다. '...항상 감사할 거야 / 우리의 날들을 / 함께 걷는 지금 / 이 거리 풍경까지도 / 세월 지나 언젠가 이 길을 다시 지날 때 / 너의 손을 잡은 사람 내가 될 수 있기를'. 남편을 만나기 전 나는 평생 함께 산책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남편은 그런 산책을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함께 해줄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사람이고, 내가 산책에 돌연 의욕이 없어져도 나를 데리고 나가 함께 걸을 수 있을 만큼 나를 챙기는 사람이었다. '함께 걷는' '풍경' '손을 잡은 사람' 등의 가사가 우수수 쏟아질 때 나는 '그런 사람이기를' 앞에 무릎을 꿇었다. J는 이 노래를 몰랐지만 흔쾌히 연습 후 무대에서 잘 불러주었다.
트로트에는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 고유의 분위기 때문에 환영받기도 하고 거리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끝내 결혼식에는 자리를 내어줄 수 없었던, 여전히 길티 플레저였던 나의 트로트. ('미스 트롯' 혹은 '미스터 트롯' 이후였다면 내 선택은 달랐을까?) 어쩐지 치부처럼 느껴졌던 나의 취향은, 그렇게 다시 한번 날개를 고이 접고 이어폰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