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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주 Oct 28. 2021

월규(月奎)

지친 나를 일으키는 것들

‘월규(月奎)’라는 이름을 처음 본 건 정유정 작가의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에서였다. 소설에는 나와 같은 이름의 인물도 등장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월규'라는 이름만이 마음에 남았다.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이름을 월규로 짓겠다는 마음까지 먹기도 했는데, 소설 속에서 일찍 죽음을 맞이하는 이의 이름을 내 아이 이름으로 짓는다는 건 아무래도 좀 아닌 것 같아 그 마음은 고쳐먹었다. 실은 아이를 낳겠다는 계획도 고쳐먹은 지 오래다. 아무튼 달과 별이 동시에 담긴 이름이라니, 이렇게 확실한 유니버스를 가진 이름이 또 있을까.

  

달과 별을 좋아하게 된 것은 대학생 때였다. 방학 때마다 하던 호프집 아르바이트는 자정이 지나면 시급을 오백 원인가 더 쳐주었으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밤 9시에 출근해 마지막 손님이 나갈 때까지 서빙하고 치우는 일을 방학 때마다 했는데, 술집 종사자들도 술집에서 회식을 한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사람들이 토해 놓는 아주 적은 양의 기쁨과 아주 많은 양의 설움 같은 것들을 주워듣다가 호프집을 마감하면 대략 새벽 3~4시. 그 때는 돈 없는 것이 어둠보다 두려울 때여서 새벽길을 혼자서 걸어 다녔다. 어렵게 번 돈을 택시비에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친구라고는 정말 달과 별, 월규 밖에 없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보름이 돌아온다는데, 내가 체감한 보름달은 그보다 훨씬 잦았다. 꺼진 가로등이 더 많았던 집 앞 골목, 세상 아무것도 숨 쉬지 않는 듯한 그 새벽에 달은 매일같이 내 앞길을 환히 비춰주었다. 고개를 들면 늘 그 자리에 있는 환한 조각에 의지해 집으로 가는 발을 재촉했다. 그렇게 각각 세 번의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보내며 월규는 정말 내 친구가 되었다.   


  나는 외로웠던  같다. 대학에서도 나는  변두리에 있는 사람이었고, 사랑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바쁘게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동기를 보며 그의 예쁜 외모와 스스럼없이 밝은 성격 같은 것들을 부러워했다. 내가 꿈꿨던 대학생활은  친구가  하고 있구나, 타고 나길 작았던 마음은 해를 거듭할수록  작아졌다.  


가만히 있는 달에게 마음을 기댈 정도면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점점 어두운 구석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성실한 대학생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할 바에는 사라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모두의 의식 속에서 소멸하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나의 과도한 인정욕구를 받아준 것은 월규였다. 저마다 다른 크기의 입자를 빛내는 달과 친구들. 저 무리에 숨어들어 내키는 대로 빛나고, 내키는 대로 어두울 수만 있다면.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오랫동안 월규의 친구가 되어 미지로 숨어드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새벽마다 깊은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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