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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기드문소년 Sep 07. 2015

그래도 날 사랑해 줄 건가요?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변기에 앉아서 보낸 시간보다는, 사랑한 시간이 더 많은 인생이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변기에 앉은 자신의 엉덩이가 낸 소리보다는, 더 크게... 더 많이 <사랑해>를 외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본문 중에서





늦여름 고향집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며 몇 년만에 다시 이 책을 집었더랬습니다.

하지만 읽는 도중에 깨달았습니다.

이 책은 12월에 읽어야 한다는 걸.



조건 없는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결단코 그런건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가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 까닭은 그녀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망치로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주는 비주얼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건 동점심이었을까요, 사랑이었을까요.

차마 그 감정을 파악하기도 전에 사랑은 시작됩니다.

뭐라 불러도 좋습니다.

못 생겨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못 생겼기 때문에 더 뜨겁게, 더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해보지 못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는 소설로 출간되어도 손색 없을만큼 이토록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소설에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요.

소설에서 그녀의 시점에서 작성된 두 통의 편지가 등장합니다.

그 편지 두 통이야말로 이 소설의 백미.





그때 알았지, 인간의 영혼은 저 필라멘트와 같다는 사실을.

어떤 미인도 말이야... 그게 꺼지면 끝장이야.

누구에게라도 사랑을 받는 인간과 못 받는 인간의 차이는 빛과 어둠의 차이만큼이나 커.


- 본문 중에서





+ 덧 1

소설 속 소설(주인공이 쓰는 두편의 소설)은 박민규 작가 본인의 소설들과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소설 속 소설이 등장하는걸까요?


첫 번째 소설.

과거에 얽매인 채 북극을 방황하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

그는 하루 종일 원을 돌며 날짜변경선을 거꾸로 넘는다.


두 번째 소설.

기억 상실증에 걸린 인간.

그는 임종 직전에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다.

그는 세상을 구원하러 온 메시아였다.


두 소설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주인공 본인의 감정을 이입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과거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닙니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주인공의 심리는 자신에 대한 속죄, 고행의 개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남자와 과거를 잊어버린 남자.

상반되지만 둘 다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주인공의 처지를 잘 반영하고 있죠.




+ 덧 2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읽는 책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입니다.

왜 하필 『이방인』일까요? 그냥 있어 보여서?


이 책은 그가 그녀와 첫 만남을 가진 직후에 읽는 책입니다. 『이방인』은 거짓과 기만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홀로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죠. 주인공 역시 『이방인』을 읽으면서 타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잡지 않았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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