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리스 <린 스타트업>
모든 혁신은 자리 잡은 프로젝트와 벌이는 자원 경쟁이고 가장 부족한 자원은 재능이다.
- 본문 중에서
1.
제가 6년 동안 경영학 공부를 하면서 배운 모든 이론은, 재무건 회계건 생산이건 MIS건, 말 그대로 모든 경영 이론은 단 하나의 프로세스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계획-실행-분석-피드백
그렇습니다.
초딩도 한 번 들으면 이해할 수 있는, 아니 유딩도 실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는 이 간단한 프로세스를 배우려고 저는 4천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학교에 갖다바쳤던 것입니다.(ㅂㄷㅂㄷ)
그리고 그 외 대부분의 세세한 것들은 그런 것들을 배웠다는 사실 자체만 기억하고 있을 뿐, 현재 그 내용은 제 머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 또한 사실이죠.
분명히 생산관리 시간에 배웠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루가 되어버린 것 중에 '린 생산방식'이란게 있었습니다.
JIT라던가 뭐 그런걸 같이 공부했었는데 지금은 슬프게도 <더 골>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병목현상' 밖에 기억이 안나네요.
뭐 어찌됐든,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린 생산방식'은 과잉생산과 재고를 줄여 생산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생산관리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구글로 1분만에 알 수 있는 내용을 장장 한 달 넘게 공부한 것입니다!)
2.
스타트업, 그리고 기업 경영은 하나의 실험 무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인풋 대비 아웃풋의 비율을 비교 분석하는 게 바로 경영인거죠.
일반적인 실험에서도 그렇듯이 성공적인 실험을 위해서는 변인의 통제가 매우 중요한데요, 이 변인을 효율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서 이 책에서는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수치화 할 수 있는 데이터, 그리고 짧은 실험 주기.
경영도 이런 실험과 다를바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오기도 하죠. 가령, 뚜껑을 덮지 않았던 고기가 숙성되면서 고객들이 더 선호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던지... 현실은 혼돈의 카오스입니다.
3.
기업은 정량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짧은 주기의 실험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완벽한 제품을 "짠!"하고 출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린 스타트업'과 기존 경영 이론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스타트업은 '최소한으로 필요한 제품의 필수조건'(이 책에서는 이걸 MVP라고 하는데 아무리봐도 단어에 끼워맞춘듯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만 갖춘 제품으로 얼마든지 실험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죠.
기업은 MVP 제품으로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서비스 혹은 사업의 고-스톱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기능을 추가하거나 빼면서 고객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살피라는 것이 <린 스타트업>의 주요 골자입니다.
이게 실제로는 생각보다 잘 안되는 것 중의 하나인데, 지금 저희 회사에서 출시한 서비스만 해도 이 기능 넣고, 저 기능 넣고, 버그잡고, 디자인 보강하다보니 순식간에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버렸어요. 그리고 스타트업에게 2년은 중력장이 강한 행성에서의 두세시간이 지구에서의 23년 4개월 8일인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결국 <린 스타트업>은 '최적의 속도'에 관한 책입니다.
4.
사실 이 책에 대해서는 비판할 건덕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만큼 <린 스타트업>이 반복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합리적이고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편이죠.
지금까지 스타트업 종사자를 만났을 때, 이 책을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못봤어요. 그리고 현재 한국의 수많은 스타트업들은 이 책의 이론과 이념을 바탕으로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린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이 처음 나왔을 때는 기존 경영 이론에 반하는 듣보잡 이론이었겠지만 지금은 당당히 주류 경영 이론에 그 이름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과연 스타트업을 다루는 책에 어울리는 포지션이네요.
5.
결국 이 책도 제가 알고 있었던 계획-실행-분석-피드백(오늘부로 나는 이 프로세스를 '경영만물피드백설'이라고 이름 짓겠다.)이라는 경영의 섭리를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치있는 것은 이 책의 접근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부 수준의 경영학 공부에 회의를 느낀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상아탑 안에서만 논의되는 지적 허영 충족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같이 보였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린 스타트업>은 기존의 경영 이론이 가진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주면서 이것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해결법을 합리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경영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허점이 없고 훌륭한 이론일지라도 현실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면 당장 폐기되어야 마땅하죠. 적어도 '경영'이라는 분야에서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이론 또한 머리 속에서만 정리되고 있다면 아무 쓰잘데기 없는 정보로 남아버릴 것입니다.
배웠으니 이제는 행할 때 입니다.
너무 분석을 많이 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분석을 전혀 하지 않는 것도 위험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