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해를 마무리하며 -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던 4월, 코로나 진단검사 음성판정을 받은 뒤 2주 동안 자가격리에 돌입했다. 당시 부지런했다면 지금 내 브런치에 글이 쌓였겠지. 그냥 쉬었다. 꿀처럼 달았던 2주는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때만큼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봤던 시기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고마워 넷플릭스. 아! 더 격하게 쉬었어야 했다.
현실로 돌아왔다. 복학 전까지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토익과 오픽 성적을 만들어놨다. 더 늦기 전에 운전면허도 취득했다. 엑셀 관련 인터넷 강의도 수강했다. 집에서 간단한 운동도 꾸준히 했다. 가족들과 산책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이제 학교로 돌아가야했다. 졸업까지 남은 학점은 19학점. 한국과 미국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느라 휴학이 잦았던 탓이다. 과감히 조기졸업을 신청했다. 다행히 조기졸업 신청을 위한 성적요건을 충족했다. 한 학기에 남은 학점을 모두 듣고, 7학기 만에 졸업하겠다는 계산이었다.
취업준비도 병행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처음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이었지만, 딱히 겁이 나거나 두렵진 않았다. 그보다도 어디로 갈지, 어떤 분야를 선택할지 고민하느라 더 많은 에너지를 썼다. 대학 입학 후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으나, 나의 꿈으로 자리잡진 못했다.
직접 병행해보니까 쉽진 않다. 조기졸업 성적요건을 맞춰야 하고, 더 높은 성적으로 졸업하겠다는 개인적 욕심도 쉽게 놓지 못했다. 19학점을 들으며 과제와 시험에 치였다. 그 와중에 기업에 제출할 수십 개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기업들의 채용정보를 일일이 분류하고, 기업의 산업군과 직무를 분석하는 것도 간단치 않았다.
결과는? 서류전형 20전 11승 9패. 선방이었다. 코로나19 시국으로 기업들의 채용이 예년보다 줄었던 상황. 적어도 내가 대학생활을 게을리 보내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남은 건 인적성검사와 면접이었다. 인적성검사의 경우, 삼x물산은 시간이 부족했다. 포x코는 난이도가 상당했다. NH농x은 삼x과 겹쳐서 불참했다.
인공지능이 날 평가한다니? AI면접이 대세다. 수많은 기업이 인적성검사를 대체해서 도입했다. 나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주어진 질문에 답하고, 성향을 분석하는 여러 게임을 수행했다. 한 시간 정도 소요됐다. 이것마저 기업마다 진행하려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AI면접을 통과하고 난다면 이제 진짜 대면 면접이다.
이후 1차 실무진 면접과 2차 임원면접을 거쳤다. 신세계 계열사의 경우, AI면접 없이 1,2차 면접은 화상면접이었고, 3차 임원면접은 대면 면접이었다.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답했다. 정답인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동문서답을 하진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 기업별로 면접과 관련된 TIP은 나중에 따로 적어볼 생각이다.
지난한 과정들을 거쳐, 다섯 곳의 기업으로부터 최종면접 기회를 부여받았다. 심사숙고한 끝에, 세 군데만 참석했다. 나머지 두 군데 (현대x상, 한x그룹)는 참석하지 못했다.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일정이나 직무적합도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최종면접에 참석한 곳의 면접 합격률은 100%였다. 세 군데 모두 최종합격했다. AI면접-실무진면접-임원면접에 이르는 과정을 모두 통과했다는 뜻이다. 첫 직장, 첫 커리어. 합격한 세곳 중에서 어디로 입사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웠다. 최종합격한 기업에 예의상 기업명을 밝히진 않겠다. 모쪼록 이 고민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 직장인 지인들이 내게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덕분에 더 많은 요소들을 고려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모 기업의 본사(강남)에서 경영기획 직무를 수행하게 됐다.
곧 조기졸업한다. 마지막으로 욕심을 하나 내보자면, 1등으로 졸업하고 싶다. 누적 석차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석차를 떠나서 후회없이 쏟아 부었기에 미련은 없다. 군대 기간, 인턴 기간 등 휴학 기간을 포함해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학생의 신분으로 살았다. 졸업식날 여지없이 하늘 위로 학사모를 던져버릴 생각이다!
이제 직장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내 브런치에선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주제는 더 다양해질 것이고, 이야기는 더 깊어질 것이다. 미처 다 풀어내지 못했던 미국에서의 이야기도 회고록 형태로 하나씩 적을 생각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내 글이 누군가의 시간을 채워줄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