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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Won May 14. 2020

독도를 외쳤다. 현지 미국인들에게

Dokdo Island in the East Sea, Korea



미국 샌디에고에서 '독도'를 알리는 공공외교 프레젠테이션 기획/발표를 도맡았다. CNN 보도에 독도가 언급됐다가, 일본정부의 항의로 인해 변경된 것을 지적하며 포문을 열었다.


"우리 땅이야. 독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미국에서 이 한마디를 외국인들에게 하기까진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부터 가슴 깊숙한 곳에 응어리졌던 말이었다. 속 시원하게 외치고 싶었던 말.



12살의 다짐


유치하지만 귀여웠다. 초등학교 5학년 12살의 나이에 싸o월드, 버o버디 등 내 개인홈페이지의 프로필은 '독도' 혹은 '동북공정' 같은 역사이슈로 장식됐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독도가 너희 땅이면 대마도는 우리 땅,' '고구려가 중국역사라고 우기는 수준 참 차이나(China)'  이걸 기억하는 나도 참 희한하다. 대부분의 또래들은 아이돌 사진을 올려놓거나, 분위기 있는 배경사진을 프로필에 올려놓던 시절이다. 도토리로 구매한 BGM으로 동방신기, 빅뱅, 원더걸스가 등장하던 시대다. 그중 난 확실히 돋보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이순신, 주몽, 대조영, 한국전쟁 등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를 보고 눈물도 흘렸다. 그때부터 애국심이 유달리 강했던 모양이다. 그 나이에 외교관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도 꿨다. 다시는 나라가 힘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허나 무슨 수로 내가 외교관이 되나? 영어도 12살 때 막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땐 너나할 것 없이 인생의 멘토로 반기문 당시 UN사무총장을 뽑던 시절이니 이해는 된다.



외국어고등학교 - 정치외교학과 - 미국 - ?


나를 과대평가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지 명확히 알았다. 국제정세를 꿰뚫을 수 있는 혜안을 갖고 싶었다. 이를 위해선 글로벌감각을 갖출 환경이 필요했다. 더 큰 그릇이 되겠다고 노력했다.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부족하지만 정치외교동아리 회장을 역임하며 관심분야를 공부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덕분에 원하던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책도 많이 읽었고, 토론도 많이 했다. 치열하게 살았다. 전역 후 남은 학기도 잘 마무리했고 어느덧 졸업까지 한 학기만 남겨뒀다. 돌이켜보니, 높은 학점, 국내인턴, 대·내외활동과 같은 이력만 남았다. 솔직히 실망했다. 그 초등학생의 다짐은 온데간데없었다. 겉으로는 글로벌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얼른 졸업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좁은 시야가 날 지배하고 있었다. 잠시 멈춰야겠다는 충동적인 생각은 결국 나를 미국으로 향하게 했다. 그렇게 교육부 주관 프로그램 참가자로 선발돼, 샌디에고에서 단기 어학연수를 마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San Diego 에서의 첫날. 다운타운에서 찍은 사진



샌디에고가 내게 준 선물

San Diego, California


3개월 정도 머물렀던 샌디에고. 이곳은 온화한 캘리포니아 날씨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품은 그림 같은 곳이다. 샌디에고에서 지내는 것만으로도 내겐 선물과도 같았다. 그런데, 어학원에서 독도를 외칠 수 있었던 순간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주 큰 선물이었다. 이 프레젠테이션의 출발점은 단순했다. 어학원에 있는 세계지도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모든 지도들이 동해(East Sea)를 일본해(Sea of Japan)로 단독 표기하고 있었다. 눈을 의심했다. 꽉 쥔 주먹은 펴지지 않았다.

PPT 슬라이드 캡처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이런 상황에 꼭 필요한 말이었다. 그런데, 마냥 차갑게 대응할 순 없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화가 치밀었다. 일본이 세계지도 제작업체와 국제기구를 상대로 로비를 해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걸 알면서도 직접 목격했을 때 자존심이 상했다. 더 이상 대한민국은 약소국도 아니었다. 나라가 무시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열두 살 때의 다짐을 작게나마 실천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었다. 움직였다. 학원 선생님들 한분 한분 직접 찾아갔다.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선생님들 앞에서. 어학원 시험기간으로 선생님들은 분주했지만, 우리에게 시간을 마련해줬다. 프레젠테이션 당일 일본계 미국인 선생님 한 분을 제외한 모든 선생님들이 자리해주셨다.


사진=CNN 방송캡처

당시 보도된 CNN의 기사를 소개하며 프레젠테이션의 포문을 열었다. 독도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에 한국 공군이 경고사격을 한 내용이었다. 당초 CNN은 해당 소식을 전하며 독도를 'Dokdo Island'라고 분명히 지칭했다. 그러나, 일본정부 측의 항의를 받은 CNN은 곧이어 해당 보도에서 독도를 '한일간 분쟁지역(Disputed Island between South Korea and Japan)'으로 정정했다. 이는 일본정부의 전략과 일맥상통한다. 독도를 분쟁 지역화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고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영유권에 대한 판단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역사적, 지리적으로 독도는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이다. 이러한 일본의 전략에 휘말릴 일말의 이유도, 가치도 없다. CNN의 이러한 보도행태는 한국인들의 공분을 샀고, 나는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지칭한 것이 왜 문제인지 설명을 이어갔다.



The Truth. 역사는 진실을 알고 있다.  


역사적 사료 및 증거가 담긴 대한민국 외교부의 독도 소개영상을 캡처해서 프레젠테이션에 활용했다.


독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첫 희생물이었다. 러일전쟁이 발발한 이듬해(1905년) 일본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불법적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그러면서 독도를 주인 없는 섬이라 불렀다. 예나 지금이나, 역사 및 지리적으로 독도는 명백한 우리 영토였다. 청중인 선생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프레젠테이션 도중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제작.배포한 독도영상 영문버전(Dokdo, Beautiful Island of Korea)을 선생님들과 함께 시청했다. 해당 영상을 통해 독도가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영토임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료 및 근거를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소개할 수 있었다. 특히 영상은 1145년 발간된 삼국사기, 1770년 동국문헌비고, 18세기 동국대지도, 145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등 한국의 옛 문헌과 자료들이 독도를 우리영토로 명확히 표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영상에서 은주시청합기(1667년),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1779년), 대일본국전도(18880년), 대일본사, 돗토리번 답변서(1695년 공식문서), 태정관지령 기죽도약도(1877년) 등 1905년 이전에 제작된 일본의 역사적 사료들에선 독도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대조적으로 언급됐다. 즉, 독도를 불법적으로 강탈하기 전에, 일본은 단 한 번도 독도를 자국영토로 인식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1943년 카이로선언에 따르면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부터 탈취한 모든 지역으로부터 축출돼야 했다. 이에 따라 일본의 패전 후인 1946년 작성된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 제677호에서도 일본의 행정관할 구역에서 울릉도, 독도, 제주도는 제외된다는 점이 명확히 기재돼 있다는 점도 영상에서 소개됐다. 영상이 끝나고, 나는 이러한 부분을 발표에서 다시 한번 요약해서 강조했다. 그리고 일본이 겸허한 자세로 역사를 직시할 때, 한일 양국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정치권과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경화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왜 한국인은 일본정부에 화가 나 있는가?

청중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한국과 일본 양국간 갈등이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비단 독도영유권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은 역사이슈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일본의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갈등이라는 점이다. 가해자인 일본이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하기는커녕, 갈등을 키우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위안부(Comfort Women), 강제징용(Forced Labor), 민간인 대량학살(Genocide) 등이 거론된다.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독일은 과거 자신들의 과오를 직시한다. 피해자들에 끝없이 사과의 뜻을 밝힘으로써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빌리 브란트 전 총리가 유대인 희생자 묘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일화가 유명하다. 이는 독일정부와 국민들이 역사를 어떠한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반면, 일본정부는 피해자들에게 사죄가 아닌 유감을 표명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자국의 역사교과서를 왜곡하거나, 관련 내용을 삭제하여 본인들이 과거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축소 및 은폐하려 한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생존해 계신다. 모두 연로하셔서 일본정부로부터 사죄받을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 일본정치인들은 위안부는 강제성이 없었다는 등의 발언을 서슴없이 하면서 여전히 피해자 분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한국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진정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역사문제를 청산하는 게 급선무다. 정치와 경제 이슈를 분리해서 다루는 '투트랙 전략'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이 이번 한일무역갈등(일본의 대한국 반도체 수출규제로 촉발)으로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즉, 한일 양국 간 정치는 차가워도 경제는 뜨겁다는 '정냉경열'의 원칙도 이제 옛말이다. 단언컨대, 과거사 문제를 청산하는 출발선은 가해자인 일본이 한국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진심 어린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나는 한일관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위 내용들을 선생님들께 설명했다. 아울러 일본정부가 올바른 역사관을 갖추고 사죄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본정치권, 한일 양국 국민 자극하는 발언 멈춰야

PPT 슬라이드 캡처 (마루야마 호다카 사진=JTBC 방송캡처)

마루야마 호다카 일본 중의원이 "전쟁을 통해 독도를 되찾자"라고 주장했다. 해당 발언은 일파만파 번지며 한국에게도 전해졌고, 한국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동북아시아는 군사강국들이 세계 패권을 다투는 각축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GFP(Global Fire Power)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2019년 세계군사력 평가에서 각각 7위와 6위에 이름을 올렸다.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이러한 일본 정치인들의 자극적인 발언은 동북아 역내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나아가,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와 세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 일본 정치인들이 잘못된 역사관에서 비롯된 발언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혐오할 것인가, 협력할 것인가.

미국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한 모습들

최근 일본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인 헤이트스피치가 만연하다. 극우세력은 길거리에서 "조센징을 죽이자"는 구호도 서슴없이 외치고 다닌다. 일본의 서점에는 혐한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일본불매운동인 '노재팬(No Japan) 운동'이 현재 진행 중이다. 일본의 대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촉발된 갈등이 무역분쟁으로 번졌고, 한국 국민들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서로 협력하고, 친구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 프리허그를 실시한 한 일본인 남성이 있다. 그는 안대를 착용하고 광화문광장에서 한국인들과 소통하고 싶다며 프리허그를 실시했다. 특히 어느 할아버지가 일본 청년에게 안긴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 청년은 한일 양국의 갈등은 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적에 상관없이 한일 양국 국민들이 스스럼없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No Abe'를 외치며 한국 국민들과 연대하자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종로구에서 'No Japan' 현수막을 길거리에 설치하자, 국민 대다수가 반발하는 사건이 있었다.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은 역사를 정치수단으로 악용하는 일본정부와 정치인들이지, 보통의 일본 시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결국 종로구청장은 본인 SNS에 사과문을 게지하고, 즉각 현수막을 철거했다.


나 역시 깨어있는 일본 국민들과 협력하길 희망한다. 모든 한국인이 일본 국민들을 미워하고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싶다. 샌디에고 어학원에서 많은 일본인 친구들을 만났다. 아직도 그들과 처음 인사를 나눴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 다소 걱정이 섞인 표정으로 조심스레 내게 웃어 보였다. 한국인이 일본인들을 싫어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게 틀림없었다. 마냥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인들이 대체로 일본인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웃과 평생 등지고 살아갈 순 없는 법. 분명 양국에는 서로 가까워지길 희망하는 국민들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우리 세대가 양국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런 내 속마음을 일본인 친구 미사키에게 말해줬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미사키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일본에 돌아가면 자신의 친구들에게도 한국인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을 꼭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한국인인 나와 일본인인 미사키가 영어를 사용하며 양국의 관계에 대해 논하고, 미래의 우정에 대해 얘기 나누는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희한했다. 잊고 싶지 않은 희귀한 경험이었다. 미사키와는 아직도 SNS를 통해 안부를 주고받는다. 나의 진심이 전해졌을까. 미사키의 친구들은 훗날 역사를 직시하고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줄 수 있을까.



나비효과


그렇게 15분가량의 내 프레젠테이션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학원에서 발견한 지도가 내 프레젠테이션의 시작이었다고 선생님에게 소개했다. 나는 나비효과를 믿는다. 교육의 힘을 믿는다. 역사에서 배운 정의를 믿는다.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학생들이 거쳐가는 샌디에고의 한 어학원. 나는 내 발표를 들은 선생님들이 앞으로 지도상 독도를 보면, 한국의 영토라고 말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후 몇몇 선생님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Nick은 나라를 위해 진심을 다해 발표하는 게 느껴졌다며 그런 열정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말해줬다. 사실 Nick은 프레젠테이션 이후 나를 따로 찾아와 나를 안아주기도 했다. 국제안보를 전공한 Nick은 익히 독도 관련 이슈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I am proud of you John!" 나는 Nick의 이 칭찬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보고 싶은 친구 Nick. 잘 지내고 있을까. Ryane 선생님은 한국과 일본 학생들을 모두 많이 가르쳐서 중립을 지키고 싶지만, 내 발표를 들은 뒤 한국정부의 주장이 더욱 합리적인 것 같다고 말해줬다. 고마웠다. 내 담임선생님 Trey는 한국에 방문했을 때 독도에 대한 광고를 지하철에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번 발표를 듣고 그 궁금증이 말끔히 해결됐다고 했다. 특히 Trey는 내가 발표 도중 감정에 복받쳐 열변을 토하던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덧붙여줬다. 사실 발표 당일, 명백한 우리 땅을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고, 알려야만 하는 현실에 화가 났고 감정이 복받쳤다. 나라가 그만큼 힘이 없다는 생각에 억울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약소국이 아니다. 떳떳하게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목소리를 높여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저널리스트였던 Adrienne 선생님 아들이 일본문화를 동경하는데, 선생님은 아들이 보다 객관적인 역사적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내 발표를 아들에 보여주고 싶다고 다. 실제로 애드리언은 내 발표자료를 요청했고 나는 PPT와 독도 영상 링크를 모두 이메일로 보내줬다. 애드리언 선생님은 직접 본인 강의실에 있는 지도에서 Sea of Japan을 East Sea/Sea of Japan으로 병기해서 수정해놓았다. 감동 그 자체였다.

프레젠테이션과 관련해 선생님들을 인터뷰하는 John



그리고 어학원 대표로부터 이메일 답장을 받았다.


프레젠테이션과 선생님들 인터뷰를 마친 후, 어학원 대표인 Kieu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어학원 내 세계지도에 표기된 Sea of Japan이 잘못된 이유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나아가, 세계지도에 동해(East Sea)를 병기해야 한다는 사실과, 동해에 위치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어학원에 있는 모든 세계지도들을 수정해도 되는지 정중히 물었다. 세계지도는 엄연히 Kieu의 사유재산이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Kieu는 세상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 필요하다고 말해줬다. 그러면서 아예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보는 건 어떻냐며 흥미로운 제안까지 해줬다. 아쉽게도 난 지도를 그리는 능력까지는 갖추지 못했다. 따라서, 기존의 지도들을 수정하는 데 만족하기로 결심했다. 한국에서 혹시 몰라 갖고 온 견출지를 활용했다. 그 견출지는 겉을 테이프로 코팅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 글의 커버사진에 있는 사진처럼, 일본해로 단독표기되어 있던 모든 어학원 내 세계지도에서 동해병기 표기를 하는 데 성공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지도를 더 바꿔야 할까?)


마치며


미국인들에게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다시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쌀 한 톨이라도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는 우리 국민이 헛되이 희생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늘 깨어있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되니까. 지독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독도에 대한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일본정부는 내년부터 17종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영토이며 한국이 이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왜곡된 내용을 반영한다. 시마네현은 독도의 날 행사를 매년 강행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역사갈등은 경제 등 다양한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2018년 10월 30일 대한민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신일본제철이 여운택 할아버지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일인당 1억씩 배상하라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1997년 재판이 시작된 이후 무려 21년 만에 늦게나마 피해자들이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과 사죄를 받아낼 것이라는 기대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무리한 기대였다. 오히려 일본 아베 정부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로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 가스)에 대한 대한국 수출규제로 맞섰다. 그렇게 현재까지도 한국과 일본은 무역분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 국민들의 감정도 격화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일본에 마스크 지원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일부 일본 네티즌들이 "한국의 도움은 받아선 안 된다. 그들은 대가를 요구할 것"이라고 댓글을 달아서 화제를 모았다. 이에 한국 네티즌들은 "동일본대지진 때 아무런 조건 없이 일본에 거액을 지원했으나, 그들은 우리를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했다"며 "일본을 다시는 도와줘선 안 된다" 분노를 표출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선 이전 글에서 일본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이번 글에서는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한일 양국의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양국 국민의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일본정부가 하루속히 역사문제에 대해 진정 어린 태도로 임할 것을 촉구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역사는 왜곡한다고 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역사를 직시하라. 잘못을 인정하라.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 그것이 양국 국민들의 미래지향적인 우호관계의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독도를 둘러싼 외교전쟁은 현재 진행 중

국민 개개인도 외교무대 최전선에 있는 '민간 외교관'


장기전이다. 국민 개개인이 외교전쟁 최전선에 서있는 외교관이다. 넷플릭스에서 최초 공개된 한국영화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 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오역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명백한 넷플릭스 측의 실수였다. 이에 국내 팬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국내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에서도 4월 24일(한국시각) 넷플릭스 측에 동해로 정정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반크 박기태 단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반크가 넷플릭스 측에 세계 최대 교과서 출판사 중 하나인 돌링 킨더슬리(DK), 온라인 지도제작사 월드아틀라스, 세계 최대 지도제작사 중 하나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동해'로 표기한 사례를 근거로 들어 정정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넷플릭스 측은 즉각 시정하겠다는 답장을 보냈고 결국 독일어, 브라질식 포르투갈어, 헝가리어, 폴란드어, 덴마크어, 스페인어 등 총 6개 언어에 자막을 모두 '동해'로 수정했다. 나아가, 반크는 올 가을 예정된 국제수로기구 총회 때 '동해' 표기가 정식으로 국제표기 방식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국제 여론을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다. 독도를 둘러싼 총성 없는 외교전쟁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은 민간 외교관이다. 고단하고 치열한 장기전이 되겠으나, 함께 맞선다면 충분히 우리가 승전보를 울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예전에 대학에서 일본정치론을 들을 때, 교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은 어려워 보여도 결국 일본은 언젠가 평화헌법을 개정할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계속해서 자기들만의 명분을 만들어 나가며 합리화하고 정당화 할 것이다. 그것이 일본이다. 이제는 일본의 습성을 알 때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일본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상대는 평생을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잘못 배워 온 세대다. 전쟁을 겪었던 일본의 세대들은 고령화로 점차 인구 비중에서 낮은 비율을 차지한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모를 것이고, 점점 더 우경화되는 일본 사회에서 혐한은 일반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장기전이다. 우리 국민 개개인이 늘 깨어있어야 하고, 일본이 어떤 만행을 저지르더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내가 미국에서 내 조국 대한민국을 얘기할 때, 내 스스로 '민간 외교관'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독립운동가 신채호




독도 관련 추천영상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공식제작한 독도 소개영상은 아래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uB4_LNZ2Rk (한국어 ver)

https://www.youtube.com/watch?v=mEF9FDh4nZc&t=7s (영어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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