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뉴포트 <디지털 미니멀리즘>
또래보다 생각이 깊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젊은 사람치곤 자신을 잘 들여다볼 줄 안다는 소리도 듣는다. 하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나는 정말 평범한 20대였다. SNS에 게시된 사진을 보며 열등감을 느꼈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건 아닐까 혼자서 전전긍긍했다. '그 나이 아니면 못한다'는 말에 두려워, 딱히 원하지도 않는 여행을 갔고,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마구 샀다. 타인의 시선에 끼워 맞춰 사느라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자기계발 영상을 봐도 잠깐 열정이 생겼을 뿐, 금방 원래 삶으로 돌아가버리곤 했다.
이렇게 살다가 남은 건 결국, 텅텅 빈 통장 잔고, 쓸모없어진 석사 학위, 그리고 불안한 퇴사였다.
갓 퇴사한 시점, 코로나가 기승을 부렸다. 이유 없이 불안했던 내 인생이 더 불안해졌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어떤 일을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우연히 '가장 단순한 것의 힘'이라는 책을 읽고, 내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건을 버렸고, 그다음에는 인간관계를 정리했고, 그다음에는 내가 살았던 인생 전체를 정리했다. 모든 걸 정리한 후 자신에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자고, 특정한 점수로 나뉘는 시험공부 말고, 학위로 남는 학교 공부 말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부를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나는 철저히 '고독'한 삶을 살기 시작했고, 읽고 싶었던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글을 써 내려갔다. 흥미로워 보이는 수업을 찾아서 듣고, 마음에 안 들면 과감히 포기했다. 주변에서 '언제 일하러 갈 거냐?' 물었지만 그때는 일하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 자아가 똑바로 서지 못하면, 분명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면서 방황하는 삶을 살아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잠깐 멈추지 않으면 나는 분명 누군지도 모르는 누군가가 만든 기준에 생각 없이 살 것 같았다. 그때부터 늦잠, 과식, 야식, 게으름 같이 나쁜 습관을 괴기 시작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녁이 되면 잠들었다.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내 의지대로 사는 법을 터득했다. 내가 계획한 목표에 따라 살았다. 매 시간마다 무엇을 했는지 적었다. 퇴사 후 2년 간 나는 이렇게 살았다.
이 공백기를 통해 나는 내적동기가 무엇인지 깨달았고, 몰입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전 직장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고, 지금까지 (중간중간 우여곡절이 있지만) 무난히 일하고 있다.
대다수 현대인은 고독한 시간이 부족하다. 눈길을 끄는 정보에 심취하느라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SNS에 나오는 화려한 삶, 자극적인 뉴스 기사, 무한정 즐거움을 주는 유튜브, 넷플릭스 등을 보느라 정신없이 산다. 유행하는 것에 관심이 많지만,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잘못 살고 있는지 들여다볼 틈조차 없다.
책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고독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고독 결핍'이라 부르며, 각종 디지털 기기가 사람들의 주의를 빼앗고 있다며 지적한다. 1980년대 현대 문명이 한창 발전하고 있을 때 작가 앤서니 스토는 "현대 서구 문화는 고독이 안기는 평화를 얻기 힘들게 만든다."라고 말하며, 사방에서 들리는 소음이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80년대에 주장한 내용이지만 지금 상황과 아주 일맥상통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독의 대명사 <월든>을 저술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 또한 현대 문명이 지니는 문제점을 이렇게 서술한다. "우리는 메인에서 텍사스까지 전신선을 깔려고 급히 서두른다. 그러나 메인과 텍사스 사람들은 딱히 서로에게 전달할 중요한 말이 없을지도 모른다." 실시간으로 연결된 메신저는 있어도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벼운 농담, 가십을 이야기하고, 귀여운 이모티콘으로 소통해도 상대방의 마음을 전혀 알 수 없다. 데이비드 소로의 주장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게 매우 아이러니하다.
바쁜 세상 속에서 끌려다니지 않는 삶을 살려면 '철저한 고독'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부족했던 점이 무엇인지, 인생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책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고독을 선택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처참한 결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무엇보다 고독을 회피하면 고독이 안겨주는 긍정적인 혜택을 놓치게 된다. 복잡한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한다거나, 감정을 다스린다거나, 도덕적 용기를 얻는다거나, 관계를 다지는 등의 혜택 말이다. 그래서 고질적인 고독 결핍에 시달리면 삶의 질이 나빠진다 p.121"
고독한 시간을 내지 않으면 결코 지금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울, 불안,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이 왜 힘든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속세를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30분~1시간씩 고독을 누릴 시간을 낼 수 있다. 누군가는 시간이 없어서, 할 일이 많아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느라, 우선순위 없이 사느라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기억하자. 고독한 시간만이 평범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 30분,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자. 이 시간을 온전히 누릴 때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피아니스트 글랜 굴드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과 보내는 모든 시간에 대하여 x시간만큼 혼자 있을 필요가 있다는 일종의 직감을 항상 갖고 있습니다. x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