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한 개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쓰쿠루는 고등학교 시절 4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소중한 공동체였다. 그를 제외한 다른 네 명에게는 이름에 색깔이 들어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카(빨간색), 아오(파란색), 시로(흰색), 구로(검은색). 이름처럼 친구들은 저마다 뚜렷한 색채를 가지고 있었고, 쓰쿠루는 스스로를 ‘색채도 없고 개성도 없는 텅 빈 인간’이라 평가했다. 이후 쓰쿠루는 어떠한 이유인지 알지 못한 채 모임에서 추방당하고, 시간이 흘러 철도 회사에 근무하는 서른여섯의 어른이 된다.
나는 종종 색채가 강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일종의 부러움을 느꼈었다. 나는 왜 잘 생기지 못했을까. 나는 왜 애매한 키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왜 매 학년마다 애매한 성적을 받고, 애매한 학교에 들어가 애매한 삶을 사는가. 애매한 집안은 물론이고, 안경을 써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애매한 시력까지. 인생이 성적이라면, 나는 B-쯤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 인생이 C나 D라는 건 도저히 용납하지 못 하겠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호기롭게 말하지도 못하는 것. 아는 질문에도 손을 번쩍 들지 못하는 것. 그런 것들이 나의 색채를 매우 흐리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따지자면 나는 오래된 복합 상가의 잿빛 색깔과 같았다.
쓰쿠루는 고개를 저었다.
(중략)
“나한테는 개성 같은 게 없었어”
“살아 있는 한 개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야. 겉으로 잘 드러나는 사람과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야.”
에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쓰쿠루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대답은? 넌 나를 연인으로 받아 줄 거야?"
16년 만에 만난 에리(구로)는 쓰쿠루에게 색을 덧입혀준다. 자신은 알지 못하고 있던 쓰쿠루의 색채. 쓰쿠루 본인은 색이 없는 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에리는 그의 고유한 색깔을 보고 있었다. 단면 색종이처럼.
'살아 있는 한 개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는 이 말을 ‘행운의 편지’처럼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계속 살아내야 한다. 인생은 내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찾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직접 정해야 한다. 나는 다시 한번 나의 색채는 무엇인지 고민해본다. 물렁한 복숭아의 과즙처럼 손 사이사이까지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아무리 쥐어 짜내도 매력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마른빨래 같은 사람이 있다. 세상은 전자를 좋아한다. 나도 그렇다. 우리는 치열하게 그리고 묵묵히 우리의 삶을 살아내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 물렁한 복숭아의 과즙처럼 매력이 넘쳐흐르는, 색채가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