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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기웅 Sep 27. 2019

슬픔은 언어를 꿰뚫는다

늦은 밤 손님 둘이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마흔 쯤 되어 보이는 남자와 여자였다. 어딘가 이질적인 생김새와 계산할 때 들리는 어눌한 한국말로 짐작했을 때 외국인인 듯했다. 그들이 서로 '숙숙칵숙'거리는 말로 대화했을 때, 그들이 러시아에서 왔을 것이라 짐작했다. 여자 손님은 일찌감치 테이블에 앉아있었고 남자 손님은 음료를 계산한 뒤 여자와 자리를 같이 했다. 


글쎄, 무슨 말을 나눴을까. 남자는 연신 추운 나라의 말을 내뱉었고 여자는 이를 듣고만 있었다. '러시아어를 배워 놓았다면 흥미로웠을 텐데'하는 생각을 하고 나는 멀찌감치 계산대 쪽에 앉아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내가 물건 정리를 끝 마칠 때까지 남자는 뜻 모를 어떤 사정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 뜻 모를 말을 듣는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눈물이 터져 나올 자리를 찾지 못하고 안에서 맴돌아 여자의 얼굴을 붉히기만 하였다.



무슨 얘기를 나누었을까.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부부 사이라고 지레짐작해버렸다. 모르겠다. 직장의 상황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이야기,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이야기, 병치레하는 아픈 자식에 대한 이야기, 이제는 타지 생활이 힘들다는 아내와 완강한 남편. 외국인 부부를 밤 11시 타국의 편의점에서 이야기 나누도록 한 사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가 상상으로 추려낸 것들보다 훨씬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나는 그들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여자의 표정만은 잊을 수 없다. 사정을 설명하던 남자의 절박한 손짓도 잊을 수 없다. 알아들을 수 없고 어림잡을 수 밖에 없던 모습. 어쨌든 나는 그 모습을 슬픔이라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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