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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기웅 Oct 09. 2019

하나의 어른이 된다는 건


오후에 부재중 전화 한 통이 와있었다. 어릴 적부터 같이 알고 지내던 형이었다. 일 년 전쯤 회계사 시험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휴대폰에 찍힌 형의 이름을 보자마자 형이 회계사에 붙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형은 늘 평온한 목소리를 내는 편이지만 오늘만은 목소리에서 기쁜 울림이 전해졌다. 더불어 유명 법인에도 단박에 붙었다는 사실에 함께 기뻐했다.


형과 내가 언제 처음 만났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우리는 오래전부터 함께 알고 지냈다. 나와 형은 각각 교회 목사님, 집사님의 아들이었다. 어른들의 지루한 예배가 울리는 일요일마다 형과 나는 CD 게임을 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나에게는 근사하고 똑똑한 형이 생겼고, 형에게는 말 잘 듣는 남동생이 생겼다. 형이 배트맨이라면 나는 기꺼이 로빈이 되었다.



둘은 이제 마땅한 곳에 모두 털이 난 어른이 되었다. 성인 남자 둘은 대체로 자주 연락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그렇다. 나는 형과 분기에 한 번 정도 서로의 근황을 건네고 받는다. 그럼에도 형과 만날 때면 나는 다시 6살 어린아이가 된다. 그때만큼은 허례허식을 벗는다. 그리고 철없는 마리오와 루이지처럼 이곳저곳을 둥가둥가 뛰어다닌다.


바짝 다린 셔츠를 입고 넥타이에 목이 조인 형을 상상해본다. '한 명의 어른은 이렇게 태어나는구나' 싶다. 형의 좋은 소식에 내 안에서 작은 울림이 생긴다. 나도 내 밥값을 하는 근사한 어른이 되어야겠다. 셔츠와 넥타이는 몰라도 정신을 바짝 다리고 적절한 책임감에 조여 사는 사내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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