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름은 월드컵 열기로 더욱 무더웠다. 포르투갈 전 박지성 선수의 깔끔한 슛을 본 다음날, 나는 운동장에 모여 공을 차는 친구들 틈에 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골대가 여의치 않아 서로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서있는 나무 두 그루를 골대로 사용했다. 당시 나는 키가 큰 편이어서 수비수를 자주 맡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발이 느리고 움직임이 둔해서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수비 역할을 전담했다. 그나마 날쌘돌이 같은 녀석들을 곤란하게 하는 의외의 수비 실력 덕분에 내 임무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가위바위보로 편을 나누면 곧바로 딱딱한 흙바닥을 뛰기 시작한다. 축구를 할 때마다 곤란한 것이 있었는데, 한창 숨이 차기도 전에 항상 발바닥이 먼저 아파온다는 것이었다. 뛰면 뛸수록 발바닥부터 발목까지 둔한 통증이 생겨 피로감이 밀려왔다. 발이 아프다고 하면 다음 축구 시합 때 껴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남들도 다 참고 뛰나 보다’ 싶어 아파도 친구들에게 별말하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동네 시합을 마치고 탈진해서 운동장에 大 자로 누워있는데 항상 공격수를 도맡는 놈이 내 발을 보며 이렇게 물었다.
“니 발은 왜 이렇게 평평하냐?”
나는 크게 당황했다.
“뭐가?”
“봐봐, 남들은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갔는데 니 발은 왜 그렇게 생겼냐?”
얼른 다른 녀석들의 발을 훑어봤다. 진짜 다들 발바닥 한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 있었다. 나만 빼고.
"몰라! 우리 엄마 아빠 발 닮았겠지 뭐...”
나는 양말도 생략하고 급하게 신발을 신었다. 그리곤 곧장 운동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내달렸다.
‘왜 나만 이렇게 바보 같은 발바닥을 가지고 있을까? 이 발바닥 때문에 내가 수비수밖에 못하는 건가?’
집에 달려가니 엄마는 한창 저녁밥을 하고 계셨다. 나는 찌개 냄새나는 부엌을 가로질러 엄마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발을 보여달라고 했다. 애석하게도 엄마 발도 가운데가 오목했다. 8살 터울의 누나는 항상 나에게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놀리곤 했는데 그게 사실일까 두렵기도 하고, 나만 요상한 발바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매우 억울했다. 평평한 발바닥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소파나 냉장고처럼 새것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 내 발바닥은 왜 이래?”
엄마는 단 한마디로 내 혼란스러움을 정리해주었다.
“평발은 군대 안 가. 좋은 거야"
2016년 8월의 논산 훈련소는 2002년 여름만큼 무더웠다. 엄마의 약속과는 다르게 나는 영장을 받고 군대를 갔다. 훈련소 생활 막바지에 20km 행군을 하게 됐는데 너무너무 하기 싫어서 적절한 꾀를 짜냈다.
‘비로소 내 평발이 쓰일 날이 도래했다.’
나는 조교에게 내 발을 들이밀었다. 평발이어서 행군하는데 지장이 있을 것 같다. 평평한 발바닥 때문에 아프고 피로한 삶을 살아왔음을 힘주어 말했다. 살면서 그때만큼 나의 발바닥이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다. 그 순간만큼은 오목한 아치형 발바닥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그러자 조교는 갑자기 전투화를 벗고 자기 발바닥을 보여주었다. 그의 발은 지평선만큼 평평했다. 다음 날 나는 군장을 메고 20km 행군을 완주했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더불어 달걀만 한 물집을 얻었다.
평평한 발바닥은 지금까지 나에게 아무런 혜택을 준 적이 없다. <베니스의 상인> 속 샤일록에게 팔 수 있다면 넘겨주고 싶은 살점이다. 학창시절 운동장을 뛸 때에도, 언덕 위 학교를 오를 때에도, 군대에서 뜀박질을 할 때에도 평발은 항상 무거운 짐이었다. 다만 평발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그들만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었다. ‘언덕 올라갈 때 힘들지 않냐’, ‘언덕에 있는 학교는 절대 안 오려고 했는데 공부 열심히 할 걸 그랬다’ ‘평발에 대해서 말만 해도 발이 피로한 것 같다’ 등등.
평발의 애로사항은 평평한 발바닥을 지닌 사람들만이 알 수 있다. 그 괴로움을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 꽤 서럽다. 그럼 나는 어떤가. 나는 누군가를 서럽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나. 나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곤란함을 알고 있을까. 어린아이가 겪는 두려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둘째를 낳는 것이 눈치 보여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우리 누나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돌아가신 당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우리 아빠의 아픔을 알 수 있을까. 휠체어가 다리가 된 사람들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가.
나는 사람들 저마다의 ‘평발’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가. 그럴 수 있을 만큼 넓고 평평한 운동장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