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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기웅 Oct 03. 2019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읽다

살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은 모두 옳다

게르버자우에서 나고 자란 크눌프는 행복한 유년시절을 지나 조숙한 사춘기에 접어들어 이성에 눈을 뜬다. 그가 사모했던 프란치스카는 자신은 기술자나 노동자를 좋아하기에, 크눌프가 라틴어 학교를 그만두면 그와 사귀겠다고 약속한다. 이에 크눌프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범생 역할을 그만두고 독일어 학교로 전학간다. 하지만 프란치스카는 그를 배반하고, 크눌프의 달콤한 상상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절망과 믿음에 대한 배신은 그를 정상적인 삶에서 추방시킨다. 

헤르만 헤세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웠다.
모든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을 수는 없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까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로 갈 수가 없어. 만일 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뿌리를 떠나야 하는데 그것 역시 불가능하지.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하지만 씨앗이 적당하나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곳저곳으로 불어댈 뿐이지. (79) 

크눌프는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방랑자가 된다. 가족과 직업을 가지고 머무는 삶을 선택한 친구들은 자유로운 그를 부러워하는 동시에 조롱하고 불쌍히 여긴다. 그는 각 지방을 떠돌며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같이 노래하고 춤추며 그들을 친구로 삼는다. 때로는 소녀들과 여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와 하모니카 소리를 들려주며 매일매일을 일요일처럼 살아간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삶의 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프란치스카와의 신뢰가 붕괴된 이후로 크눌프는 사람을 믿거나 그들과 약속을 맺지 않으려 한다. 그는 인간이란 혼자서 자신의 짐을 지는 존재라는 것을 절감한다. 사랑도 행복도 영원한 것은 없으며 언젠가 거품처럼 사라질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모든 순간의 아름다움을 면밀히 느끼고 감사히 여기며 살아간다.    


겨울이 찾아와 혹독한 추위가 계속되던 날, 폐결핵에 걸려 더 이상 아무 희망도 없이 삶의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크눌프는 자신의 인생이 과연 ‘쓸모 있는 것’이었냐며 하느님께 따져 묻는다.  

크눌프가 연신 고집을 부렸다.
 "제가 열네 살이고 프란치스카가 절 버리고 떠나버렸던 그때 말입니다. 그때만 해도 전 여전히 무언가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이후 제 안의 무엇인가가 고장 났던가 망가져버렸던 거죠. 그때부터 전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렸어요. 아뇨, 잘못은 단지 당신께서 제가 열네 살일 때 죽게 하지 않으셨다는 데 있어요! 그랬더라면 나의 삶은 잘 익은 사과처럼 아름답고 완전한 것이 되었을 겁니다." (130)   

그를 만드신 창조자는 그의 삶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그를 위로한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은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
 "그래요"
 크눌프가 말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사실은 저도 항상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134) 

하느님께서는 삶이 다 끝날 적에 와서야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신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충분히 고민하게 하시고 생각할 여지를 주신다. 삶의 중간에 개입해 어떤 선택을 종용하지 않으시고 자유를 주신다. 당신께서는 삶의 구석구석을 면밀하게 고민하고 다듬었던 크눌프를 위로하고 사랑해주신다. 

그들의 이름은 각각 티거와 레베다.(독일어로 호랑이와 사자)

인생은 매일매일이 처음이라 두렵고 무섭다. 산다는 건 어두컴컴한 밤에 자갈길을 걷는 것과 같다. 여기서는 누구나 넘어지기 마련이다. 자빠지면 무릎이 까지기도 하고, 살이 움푹 파여 피가 나는 경우도 있다. 수많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왜 이리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지 모른다. 그들도 나만큼 수 없이 넘어지며 살고 있겠지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온한 모습만 보여져서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럴때마다 나는 내 삶의 방향성을 의심한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각자의 내면에는 고유한 울림이 있다. 그래서 어떤 삶이 옳고 더 나은지 쉬이 판가름할 수 없다. 그저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타자와의 관계를 깊숙이 이해하려는 것만으로도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 된다. 하느님께서 방랑자를 그저 지긋하게 바라보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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