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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기웅 Oct 03. 2020

내 친구 권종찬 이야기

세상에 사정없는 가정은 없다. 서로 말하지 않을 뿐이다.

종찬이에게 카톡이 왔다.

<기웅, 나 아빠 장례식장 감>

순간 마음이 덜컥했다. 병원에 누워 계신다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구나. 이내 곧바로 종찬이에게 전화 걸었다.

"지금 가고 있냐."

"아니, 좀 이따 7시 버스."

"잘 마치고 와. 돌아오면 전화하고."

짧은 대화를 끝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툭.


우리는 중학교 동창이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 돼서야 친해졌다. 수업이 끝나면 교실 뒷자리 친구들과 PC방에 가곤 했는데, 종찬이도 그 철없는 멤버 중 하나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어두컴컴한 PC방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을 하던 날이었다. 옆자리 종찬이가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인듯했다. 집에 일찍 들어오라는 전화인가 싶어 종찬이에게 물었다.

"왜, 벌써 집에 오라셔?"

"아니"

"그럼 왜 전화하셨대?"

"그냥 어디냬"

전화를 끊은 후 종찬이는 입을 앙 다문 채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만 바삐 움직일 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썩 개운치 않았다. 그날 우리는 평소보다 더 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종찬이가 유치원생이 되기 전까지 종찬이 세 가족은 천당 밑에 분당에 살았다. 아버지께서는 옷 공장을 운영하셨다. 집안이 뒤틀린 건 IMF 때문이었다. 줄도산의 파도는 공장뿐만 아니라 세 가족을 덮쳤다. 종찬이네는 아파트와 공장을 잃고 월세를 얻었다. 어머니는 공장장 사모님에서 이마트 판매직이 되었고, 아버지는 도박에 빠졌다. 종찬이 아버지는 돈다발로 가득 채워진 가방을 들고 집을 나가서는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들어올 때에는 언제나 술 냄새를 동반했다. 아버지가 가지고 다니는 돈 가방엔 구멍이 뚫렸는지 집에 돌아올 땐 매번 비어있었다. 결국 종찬이 아버지는 바닥까지 탕진했다. 종찬이 아버지가 잃은 것은 돈뿐만이 아니었다. 수년간의 별거 후에 종찬이 부모님께서는 이혼하셨다. 종찬이가 PC방에서 어머니의 전화를 받던 그날이었다.


종찬이는 조용한 호프집에서 이 모든 사정을 말해주었다. 종찬이가 자기 삶에 대해 말해주었던 그날에, 나는 철저히 듣는 친구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이런 일이 있었다고. 연락 끊긴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고 병원에 누워있다고. 어릴 적 아버지 돈 가방에서 한 다발을 몰래 훔쳤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도 얘기해줬다. 어차피 다 잃을 돈, 잘 빼돌려 썼다고.

호프집 회동 후, 종찬이는 아버지가 누워계신 고향으로 내려갔다. 마지막으로 종찬이가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부탁 때문이었다. 병원 침대 위 아버지는 작아 보였다고 했다. 소주가 들어갈 입구멍도, 가족에게 부릴 광기도, 현관문을 박차고 나갈 힘도 없는 투병인. 종찬이는 병원에서 반나절을 보낸 후 버스를 타고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몇 달 후 종찬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세상에 사정없는 가정은 없다. 다만 우리가 서로 말하지 않을 뿐이다. 복잡한 남의 가정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것이 남 얘기 같지 않다. 나는 내가 아빠가 되는 것이 두렵다. 아빠는 무엇일까. 누가 아빠가 되는 걸까. 나는 어떤 아빠가 될까.



작가의 말 :)


친구 이름은 가명으로 바꾸었습니다.

제 작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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