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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특별히 싫어하는 이유 있을까

오만가지 사람마음28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만이 정상은 아니다. 이제는 남자와 남자가,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허용되는 시대다. 하지만 이성으로 여자를 좋아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다. 이는 동성애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남자를 좋아하지 못하는 심리적 문제를 가진 여자도 있다. 이처럼 남녀의 문제는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상담 온 20대 남자는 회사에서 잦은 실수와 상사의 꾸지람 때문에 계속 다니기 힘들어서 고민 중이라고 했다. 여성스럽게 단정하고 조용한 그는 상담하는 동안 상담 방식에 대한 호기심과 자기 치유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가 다니는 직장에는 여성이 많다고 했다. 그 가운데 일을 배우는 인턴들이 4명이 되는데 자신만 남자고, 3명은 여자다. 하지만 말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아주 기본적인 대화만 할 뿐이다. 남자의 아버지는 음악을 하는데 일정한 수입 없이 일이 있을 때만 나간다. 엄마는 집에서 살림을 하지만 아버지와 갈등이 많다.

남자는 어릴 때부터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많이 봤다. 엄마는 아버지와 다툼이 있고 난 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누나는 집보다 밖에서 지내는 날이 많다. 남자는 집에 잘 안 들어오는 누나의 모습이 싫다. 직장에 있는 여럿 여자들과 말을 잘 안 하는 이유는 딱히 할 말이 없거니와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다. 자신이 나이가 몇 살 위라서 윗사람이 나이 어린 인턴들을 관리하라고 하지만,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서 자신이 모든 일을 해버리고 만다.

가끔 매장에서 손님들의 예약과 돈을 받는 일을 할 때면 정신이 없어져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돈 계산은 자신과 맞지 않는데 그런 일을 맡으면 그날 하루는 너무 피곤하다. 자신의 실수나 직원들과 갈등이 있다고 느끼면 몸이 아프고 회사도 가기 싫다.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가깝게 지내는 세 명이 있는데, 친구들과 함께 놀 때면 자신이 돈을 벌기 때문에 돈 없는 친구들에게 돈을 대주거나 빌려주는 일도 많다. 그러면서 가끔은 '내가 호구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서운할 때도 있다.

이 젊은 남자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단지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뿐이다. 화가 나는 일들이 많아서다. 어떤 말에 대해서든 남자는 분노한다. 하지만 어떤 말도 못 하는 상태다. 그래서 상담의 목표를 말을 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두자고 합의했다. 특히 자신보다 어린 친구들과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것이 회사 생활을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에 서로 동의하고 개선점을 찾자고 했다.

영화 '개밥 주는 남자'의 한 장면.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자는 매주 후배 여직원들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상담 과정에서 여자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사연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사소한 일들이지만 본인에게는 아픈 사연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여자 친구 집에서 전자오락을 했다. 여자 친구가 또 다른 여자 친구를 불러서 집에 오라고 했는데, 그 여자애는 남자가 속으로 좋아하던 애였다. 집에 온 여자애를 놀라게 해 주려고 문 뒤에 숨어있다가 확 나타났는데, 좋아한 여자애는 싸늘하게 "왜 저런 애를 불렀냐"며 친구에게 말했단다. 그래서 자신은 부끄러워서 그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 어린 남자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멀고 맘이 무거웠을지 짐작이 갔다.

중학교 시절에도 여자들과의 악연이 계속됐다. 친구 생일날 롤링 페이퍼를 함께 작성했는데, 자신이 쓴 글을 가지고 여자애들이 놀렸고, 일진 애들이 자신에게 아무 여자에게 고백을 시키게 하고 난처한 상황이 만들어지면 비웃곤 했다고 한다. 고등학생 시절 때에는 지나가던 여자애가 남자의 책상 가방걸이에 스치면서 스타킹이 찢어지자 자신에게 욕을 했다는 기억도 떠올렸다. 그런 말을 하며 눈물을 참기 위해 천장을 바라보는 그의 지난 세월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지금, 이 남자는 여자들을 싫어한다. 오직 자기를 위로해주는 여자는 애니메이션에 나 오는 야한 여자 캐릭터뿐이다. 만화 속의 여자 캐릭터는 남자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고 남자를 끔찍이 위해준다. 자신도 환상 속의 여자가 아닌 현실 속에서 여자와 관계 맺고 즐겁게 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는 오랜 시절부터 하나씩 저축하듯 쌓아온 문제들의 결과다. 마음의 상처를 입을 당시 누군가에게 말하고 위안을 받았다면 없어지거나 가벼워졌을 문제를 미련하게도 마음속에 쌓아뒀다. 쌓아둔 작은 에피소드들은 거대한 분노의 폭탄이 되어 대인관계나 가족관계에 문제를 일으킨다. 작은 사건들이 모여 큰 문제를 일으키거나 하나의 큰 사건으로 얼룩지게 한다.

문제를 알았다면 어떻게 치료할까

문제는 지금 잘 살지 못하게 만드는 과거의 원인이 현재에도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담심리치료에서는 그 사실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을 '통찰(洞 察)'이라고 한다. 치료의 1차 목표다. 하지만 과거의 문제를 알게 되고 울고 나서 정화(淨化, Catharsis)의 기분을 느꼈다고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상담을 여기저기 받는 사람들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맘이 시원해지거나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필자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라 말한다.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 운전에 대해 알았다고, 자동차에 대해서 공부했다고 운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학원에서 운전을 배운 다음 시내 연수를 하듯 운전을 직접 해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문제를 알았다는 것은 시작이다. 하루하루, 한 주 한 주, 차근차근 작은 것부터 시도해봐야 한다. 어려운 상대에게 커피 한잔을 건네주는 것, 상대가 말하기 쉬운 질문을 해보는 것, 대화를 1분에서 5분으로 늘려보는 것, 그러는 가운데 발견하는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 등이다. 배우지 못한 운전을 나이가 든다고 잘하게 되는 게 아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인간관계와 대화가 저절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배우지 못한 것은 죽을 때까지 잘 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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