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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d재진 Nov 15. 2020

내 눈에 가득 담아온 그곳, 남해

10년 차 직장인의 의미 깊었던 리프레시 휴가


여행의 이유 : 인간은 왜 여행을 떠나는가.


얼마나 기다렸던가. 5일의 리프레시 휴가이지만, 앞뒤로 토/일요일이 붙었으니 총 8박 9일이다. 나는 여행광은 아니지만 1년에 한 번, 특히 내 생일이 포함되어 있는 11월 둘째 주에는 반드시 리프레시 휴가를 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나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시기에는 반드시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겠노라고.


다시 한번, 인간은 왜 여행을 떠나는가.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서 힐링하기 위해? 나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아니면 '나 완전 잘 지낸답니다 하하하' 면서 SNS에 쿨한 척 올리기 위해? 예전에 읽다 말았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지중해 기행>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용감하게 살다 죽는 법을 배우기 위함이니 여행이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리라 기대하지는 말아라. 세상 어디에도 인간을 기쁨과 긍지와 무용으로 채워 줄 보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정말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어떻게 여행하느냐에 따라 용감하게 살다 죽는 법을 배울 수도 있고,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행의 시작 : 남해, 그곳으로 간다!


여행지를 어디로 할지 잠시 고민했었다. 제주도는 여름에 다녀왔고, 부산은 메인 여행지는 아니었고, 동해는 나중에 갈 예정이고.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남해 쪽이었다. 사실 남해를 선택하게 된 이유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두 소설가 '김훈', '김탁환' 두 분의 선생님이 이순신에 대한 책을 쓰셨는데, 왠지 그 연관된 곳을 방문해서 느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남해를 가는 길은 조금 복잡하다. KTX를 타고 진주역에 내려서, 렌터카를 빌려 타고 다시 1시간 정도 운전해서 남해를 들어가야 한다. 간신히 픽업 장소를 찾아서 차를 타고 운전해서 남해로 향했다. 그 맑은 날씨와 뻥~ 뚫려있는 고속도로, 다시 힘이 난다. 바람을 맞으며 라디오를 틀었는데, 페퍼톤즈의 <공원 여행>이 흘러나왔다. 가사만큼 기분이 너무나 좋아졌다.


하나! 둘! 셋! 넷! 씩씩하게 더 밝게 더 경쾌하게

둘! 둘! 셋! 넷! 튼튼하게 아주 조금 더 기운차게

널 따라오는 시원한 바람 길가에 가득한 아카시아

아무도 돌보지 않지만 건강하게 흔들리고 있어


남해에 진입하자마자 우측으로, 이순신 순국공원이 보인다. 어차피 숙소만 정해놓고 동선을 정해놓지 않았던 나는 여유롭게 차를 돌려 그곳으로 갔다. 오후 2시가 넘은 그 시간의 남해바다. 기가 막힌다. 제주도와 부산, 서해 바다와는 또 달랐다. 바다가 앞에 넓게 펼쳐 있는데, 사이사이에 산이 숨어있다. 그리고 물표면에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빛이 났다. 그 반짝임 하나가 내 마음을 풀어헤쳤다. 바다가 나의 마음이라면, 빛은 남해인 것 같고 그 반짝거림은 나의 감동인 것 같다.

혼자서 한참 동안 바다를 보다가 천천히 산책을 시작했다. 코로나 여파로 인해 사람들이 별로 없다. 토요일 낮시간인데 별로 없어서, 조용하게 산책하면서 남해와 인사를 했다. 안녕? 잘 부탁한다! ^^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미리 인터넷에서 검색해둔 분식점 '남해 구판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순국공원에서 약 40분 정도를 또 열심히 운전해서 가니까 남해 구판장이 나온다. 이곳은 유튜브를 통해서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젊은 부부가 귀촌하여 아기자기한 분식집 겸 펍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 두 분의 모습이 너무나 좋아 보여서 꼭 방문하고 싶었다. 찾아가기 썩 편한 곳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 볼 가치가 있다.

혼자 2층에 올라가서, 바다를 보며 맥주 한잔과 함께 분식을 즐겼다. 크...... 좋다...... 이런 게 행복이야.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가면서 인사드렸다. 방송 보고 찾아왔고 또 오겠다고. 너무나도 인상 좋은 사장님 내외가 밝게 인사해주신다. 좋은 환경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인상이 좋다. 남해에서 마주한 첫 현지인 분들인데, 역시나 시작부터 좋다. 날씨도 좋고, 바다도 좋고, 사람도 좋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다. 숙소로 가는 도중, 바다와 집이 보이면 바로 주차해서 사진을 찍었다. 어디를 찍든 그림이고 예술이다. 사진 못 찍는 나도 사진작가가 되는 기분이다.

어느 카페 루프탑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노을, 그리고 이 풍경 앞에 가슴이 너무나도 벅차올랐다. 숙소에 도착해서, 얼른 샤워를 하고 인근 은 모레 비치로 향했다. 약간 제주도 성산리 분위기다. 그런데 워낙 시골이다 보니 더 어두컴컴한 것 같다.. 횟집 근처에는 놀러 온 분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밤바다를 구경하다가 숙소에 가서 잠을 청했다.




여행 중 마주한 풍경과 사람들


남해에는 꼭 가봐야 하는 3곳이 있다. '보물섬 전망대 / 독일마을 / 보리암'

보물섬 전망대로 일찍 향했다. 굽이굽이 뻥 뚫린 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Take me to London Paris New York city들 아름다운 이 도시에 빠져서 나

Like I'm a bird bird 날아다니는 새처럼 난 자유롭게 fly fly 나 숨을 쉬어 ('여행' 볼 빨간 사춘기)


아침 일찍 와도 역시나..... 세계에서 제일 부지런한 한국 어르신들이 먼저 와 있다. 2층 카페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스카이 워크를 신청했다. 로프 하나에 몸을 매달고, 전망대 주위를 돌면서 마지막에는 낭떠러지 쪽에 배영을 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 찍는 코스다. 겉으로 볼 때는 안 무서웠는데 막상 해보니 다리가..... 은근히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바깥이 보이는 엘리베이터도 잘 못 탄다.

안전요원은 계속 겁이 엄청 많으시다면서 빨리 무릎을 꿇고 뒤로 몸을 던지라고 했다. 속으로 욕을 했다. '야~ 이 짜슥아~ 내가 심청이냐'


혼자 달달달~ 떨다가 영화 미션의 거룩한 순교자라도 되는 양, 뒤로 십자가 자세를 취하며 3분 만에 드디어 성공. 하고 나니 너무 재미있었고, 사진도 3장 찍었는데 모두 바보스럽게 나와서 혼자 피식했다. 어차피 나만 볼 거니까 ^^ (이러고 인스타그램에 공개; 동네 바보형으로 보는 분도 있었음)


자, 다음은 독일마을로 향했다.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서,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배가 슬슬 고파진다. 독일마을이니까, 독일 맥주와 소시지를 먹어야겠지? 글쓰기 모임 단체 카톡방에서는 "책맥"을 추천해주신다. 나는 냉큼 맥주와 소시지를 시켜서 책을 펼쳤다. 사실 책은 4권이나 챙겨 왔는데, 여행기간 동안 제대로 읽지는 못했다. 책보다 더 좋은 풍경들이 있으니 굳이 찾아서 읽지 않았다. 다음에는 한 권만 갖고 와야지. (늘 후회하는 스타일ㅎ) 아무튼 맥주를 마시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행책 한 권을 읽었다.

사실 인터넷을 더 검색하면 여기 독일마을 안에서도 더 유명한 맛집이나 그런 것들이 추천될 수 있었겠지만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좋아 보이면 ~ 하고 들어갔다. 진정한 여행은 계획이 아니다. 그냥 눈에 띄는 대로 경험하고 즐겨보는 것이다. 여행은 계획 없이 흐름에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맥주를 마신 곳만 친한 지인이 추천해주셔서 가본 곳이고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신 곳은 지나가다가 그냥 들어가 본 곳들이다.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돌아오는 말. "부럽다......"였다. 한동안 내가 혼자 다니는 것을 보면, 친구들은 "야~ 혼자 뭐 하는 거야? 으휴~ 여자 친구랑 가야지, 궁상이냐" 이러던 친구들인데, 지금은 모두 내 삶을 조금씩 부러워하는 것 같다. "나도 가고 싶어~ 며칠 만이라도~ ㅠ.ㅠ" 이런다. 하하하. 다 장단점이 있다네. 하지만 나는 지금 내 생활이 너무 좋은 건 맞아.


다음날이 되었고, 아침 일찍 남해의 꽃이라 불리는 보리암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가까워서 일찌감치 나갔다. 갑자기 남해의 아침이 추워졌다. 역시 이제 겨울인가 보다. 핫팩과 생수, 그리고 장갑을 챙겨 들고 금산으로 운전을 해서 올라갔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서도 20분은 올라가야 하는 코스. 올라가는 길이 너무 춥다. 벌써 하산하는 어린 커플들이 보인다. 야! 좀 떨어져! 뭐 하는 거야! (질투 맞음)


헥헥거리며, 올라간 금산사 보리암. 가는 길이 춥고 조금 지쳐서 기대감은 많이 떨어졌다. 얼마나 좋겠어? 킁~

그런데 보리암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냥 입만 벌리며 감탄했다. 아! 이럴 수가.....

저 풍경 앞에 나는 경건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가슴에서 뭔가가 솟구쳤다. 눈물이 왈칵 흘렀다. 좁았던 마음이 넓어지는 듯했다. 너무나도 큰 감동을 준다.

한려수도 남해바다의 엄청난 일출. 나는 일출을 보며 다짐한다. 10년 동안 재진이 고생했다고. 앞으로 얼마나 더 고생할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책임감을 갖고 잘하자고. 그리고 이제 시작이니까 글쓰기도 잘해보라고. 나를 비웃는 사람들도 조금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기에 그 고마움을 잊지 말고, 항상 진정성 있는 글을 쓰라고.


위를 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저 밑의 남해바다를 바라보듯 아래를 더 잘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높은 사람이 될 것이다. 높은 사람이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부가 아닌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높은 생각을 가진,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항상 다짐하는 것이 실행보다 많은 인생이고, 남들보다 느리고 또 돌아간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속도와 결이 있음을 지금의 나는 잘 알고 있다.


언젠가 읽은 故신영복 선생님의 책에 쓰인 소제목과 글이 생각난다.

"각성은 그 자체로도 이미 빛나는 달성입니다."


장엄한 한려수도의 풍경 앞에서 나는 버릴 것은 버렸다. 그리고 채울 것은 앞으로 채우겠다는 다짐을 하고 그렇게 마음속 깊이 그날의 광경을 눈과 가슴에 가득 담았다.


금산산장에서 내려다보면서 먹는 라면은 꿀맛이다




남해를 지나, 다른 곳에서


남해에서의 짧았던 일정을 마쳤다. 아쉽기는 하지만 아쉬워야 다음번에 또 올 수 있으니까. 다음번 휴가에도 남해에 올 예정이다.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남해 구판장에 가서 식사를 했다. 여행 많이 하셨냐는 물음에 너무나도 좋았다고 말씀드렸다. 다음번에 또 오겠다는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오래오래 이곳을 지켜주세요. ^^


자, 바쁘게 운전해서 통영으로 갔다. 그날 바로 루지를 타고 왔다. 가족단위로 많이들 오셨는데, 역시나 내 앞에 커플들이 있다. 기다려, 너희를 앞질러 주겠어! 타는 내내 앞의 커플들을 다 추월했다. 쓸데없는 승부욕 발동. 그리고 혼자 낑낑 거리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셔서, 발로 슬쩍 밀어드렸다. 잘 나간다. 너무 잘....;;;;;;

5회권을 끊었는데, 타다 보니 배고프고 추워서 4회까지만 타고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왔다. 다음에 또 타면 되니까, 아쉬움은 이렇게 남겨두기로 하자. (사실, 3번이 넘으니 엉덩이가 아파서 좀 힘들었다.)


부산으로 넘어왔다. 이미 부산은 여러 차례 온 곳이라서 이번에는 많은 곳을 돌아다니기보다는 철저히 호캉스와 주책 공사, 해운대 방문으로 한정시켰다. 그리고...... 마침 부산에 간 날이 11월 11일. 내 생일이었다.

해운대..... 너는 변함없구나. 멋지다. 너의 노을도, 너의 바다도.


오랫동안 SNS상으로만 이야기해왔던, 독립서점 '주책 공사' 소장님을 만나 뵈었다. 열정 넘치는 독서인이자 독립서점 대표님으로, 그 마인드도 좋은 분이라서 너무나 존경하고 또 존경하는 분이다. 실제 뵌 건 처음인데도 엄청 많이 이야기했다. 거의 3시간 30분 동안..... 보수동 책방골목 쪽에서 얼마나 혼자 힘드셨겠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참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또 그럼에도 밝은 소장님의 모습이 좋았다. 나눔에는 조건이 없어야 하고, 나누다 보면 또 채워지게 되는 거라는 말,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대화들 속에서 나는 많이 배웠다. 소장님, 오래오래 버티소! 모두가 응원합니다~ 또 오겠습니다~


소장님 덕분에 부산돼지국밥을 처음으로 먹어보았다. 사실 돼지라는 어감이 왠지 비린내 날 거라는 편견을 주어서 별로였는데, 여기는 유명 돼지국밥 집이라고 해서 왔다. 한 술 뜨자마자..... 어~ 이거 맛있네...... 날도 추운데 이 뜨끈함에 반해서 깍두기랑 단번에 먹어치웠다. 요 몇 년 사이 생일날에 낯선 여행지에서 혼자 맞이하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반가운 사람들도 좀 만나고, 재미있게 수다도 떨면서 잘 보냈다. 남해부터 부산까지 날씨도 완벽! 여행지도 완벽! 사람들도 완벽! 음식도 완벽!


어머니의 카톡 메시지가 왔다.

"아들..... 생일 축하하고, 생일날 직접 미역국을 못 끓여주니 기분이 좀 그래. 그래도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여행 잘하고 돌아오려무나. **만 원 보내니까 맛있는 거 사 먹어."

카톡을 받고 괜히 또 눈물이 핑 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면 내 사람들에게 더 잘하리라. 사랑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휴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SNS로 알게 되었지만, 평소의 언행이 너무 훌륭해서 꼭 한번 만나고 싶었던 인스타 친구 재환 님을 만나기로 했다. 근무지 과천 정부청사를 처음으로 놀러 가 봤다. 11시 반까지 가기로 했는데, 금요일의 제2경인고속도로는 무자비하게 막히더라. 워낙 철저한 자기계발러라서 1분 늦는 것에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조급해서 밟았다. 그런데, 전화 와서 절대 급히 오시지 말고 천천히 편안하게 오시라는 그 배려심에 또 한 번 감탄했다. 같이 점심을 먹고 산책하며 커피 브레이크. 1시간 반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시 한번 글만큼 실제 모습도 참 반듯하고 좋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인친이자 존경스러운 인 라이팅 회장님 이재환 님의 감사한 선물과 편지...... 눈물 남

선물로 주신 책과 만년필. 만년필은 나중에 서명할 때 쓰라고 준 것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내가 나중에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그걸 생각해서 골라준 것이다. 크.....



인친이자, 이젠 친누나 같은 보름달님의 고마운 선물과 편지. 역시 눈물 남.

인스타 친구 재환 님을 만나고, 그 뒤에 뵙게 된 또 다른 친한 인스타 친구 보름달님에게 받은 선물과 편지. 늘 응원과 채찍(응?!)을 주시는 분. 이번 휴가에는 내가 SNS로 인연 맺은 분들 중 최고의 3인은 다 만났다. 주책 공사 소장님 / 재환 회장님 / 보름달




여행을 마치며


여행 관련 책 중에 최고로 치는 책이 한 권 있다.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변종모 작가의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이번 여행에도 함께 했다. 잠자기 전에 읽으면서 혼자 그의 글과 함께 사색에 빠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이런 식의 여행을 꿈꾸어 왔다.

계획 없이 목적 없이 나를 올려놓는 것이 나에게 어울리는 여행이라 스스로 위로하며 나는 매번 계획 없이, 준비 없이 떠나온 여행에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다만 조금 불편할 뿐이며 그 불편함의 여행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리라 믿는다.

적어도 나에게는 오직 길 위에서 느끼는 행복. 나는 이 행복을 길게 만끽하리라. 쫓겨 가지 않으리라, 쫒아가지 않으리라, 계획 밖에서 계획을 세우고 목적 없는 목적으로 조금 더 느긋하게 걸어가는 연습을 할 것이다. 지나온 시간은 모든 것이 빠르다. 아니 빨랐다.

.

.

더 이상 시간에 쫓기어 정작 중요한 것을 흘려보내지 말아야 한다. 미래의 행복을 미리 꿈꾸지 말 것이며 그것을 위해 현재의 사소함을 지나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지금의 행복이 영원할 것을 기대하지 말며 스쳐 지나가는 것에도 소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느리게 느리도록 나는 그렇게 가고 싶고 살고 싶다. "

<책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변종모>


어쩔 수 없지만, 우리가 죽을 때까지 놓을 수 없는 두 가지. 여행과 사랑. (사랑은 단 한 사람 말고도, 친구 등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 둘은 많이 닮았다. 처음에는 마주하게 될 모든 일들이 설레고 새롭게 다가온다. 그런데 또 생각보다 힘든 일도 많이 생긴다. 익숙해지면서 잊히기도 하고, 돌아보면 무덤덤해져 있고, 가끔은 또 생각나서 마음 한편이 먹먹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어떤 여행은, 어떤 사랑(사람)은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게 각인된다. 지금도 그렇다.


다시 생각해봐도 여행과 사랑은 닮았다. 사람도 한 걸음 한 걸음발을 내디뎌 여행을 시작하고 평생 회상하듯, 애틋했던 기억 하나하나가 모여 평생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물론 그 자리에 다른 것들이 비집고 들어와서 어느 순간 잊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기억이 저절로 되살아 난다.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한 그렇게 다시 반복되고 기억된다. 순간순간 떨리고 순간순간 아득하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어도 막막하고, 먹먹한 감정에 이끌린다.


가끔 생각해 본다. 그리운 사람들을 다시 그리워하고 싶은 지나온 나의 여행길을. 인간의 불행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 지나온 여행의 기억은 이제 또다시 좋은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나는 오늘에 충실하고, 또 내일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재미있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리라.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라지만 또 그것들을 치유해주는 것도 여행이고, 사랑이고, 더 나아가 사람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이 있다. 자, 내일부터는 또다시 총무팀 신재진으로, 나를 기다리는 (회사) 사람들에게 들어가서 일상이라는 여행을 시작해볼까 한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 가장 먼 여행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먼 여행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가장 먼 여행'-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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