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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d재진 Dec 06. 2020

푸르른 날들이 다 가기 전에

나의 특별한 두 친구 이야기


인간관계에서 '가족', '사랑'만큼 많이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친구'.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데, 특히 학창 시절을 거치며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친구는 가장 애틋한 존재들이다. 인정한다. 본디 인간관계가 넓은 편은 아니지만  인(생)복이 있는 건지 항상 좋은 친구들이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오늘은 그중 나의 특별한 친구 두 명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사실 많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친구들이다. 이 글은 나의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전하는 마음의 글이기도 하다.




나의 특별한 첫 번째 친구


며칠 전에 휴대폰으로 네이버 Line 메신저 앱을 깔았다. 분정도 지났을까. 첫 메시지가 왔다. 누구지?


'야~ 재진아~ 얼마만이야~~ 잘 지내냐?? 이 OOO야~ (고등학생 때 별명). 회사는 잘 다니고?'


6년 만인가. 친구 'Y'의 메시지이다. 고2 때 가장 친했던 친구였고, 오랫동안 아주 친했던(?) 친구이다.


"어, 나야 잘 있지. 뭐야, 웬수야(별명) 너 번호 아직도 뒷자리가 0000 이냐? 참나..... 증말 대단해~ ㅋ

오~ 애기도 많이 컸네? 와~ 귀엽다 ㅋ"


그렇게 메신저로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카톡으로 대화를 옮겼다. 사실 한동안 카톡에서 지웠던 친구다. 살짝 다툼이 있었다. 6년 전 부서를 옮기고 한참 회사일로 정신없을 때 Y의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다. 그런데 그날 내가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오랜만에 연락 와서 전화도 아니고 카톡이냐..... 바쁘니까, 직접 줘라!' 하고 메시지를 보냈고, 친구는 장난처럼 연달아 모바일 청첩장 메시지를 열 통이 넘게 보냈다. 그냥 단순했다. 나는 홧김에 뭐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친구도 친구대로 나의 행동에 화가 났는지 연락도 없었다. 때마침 회사 업무에서 사고를 쳐서 그 일을 수습하느라 주말도 없이 일했다. 그렇게 내 친구의 가장 큰 경사를 지나쳐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고의가 아니었지만)


Y는 고2 때 처음 알게 되었다. Y와 나는 정반대의 성격인대도 이상하게 잘 맞았다. 서로 생각보다 다정하거나 쿨한 성격은 아닌데, 정 반대의 성격 속에 이상한 동질감 같은 게 있었다. 평범하지만 부족한 없는 집안 환경, 그리고 부모님의 기대를 받는 아들들. 그리고 친구들이 좋아해 주지만, 은근히 고집이 세서 묘하게 넓지 않은 교우관계. 무엇보다 서로 개그 포인트가 매우 비슷했다. 서로 웃기기보다는 아주 작은 것에서 어이없이 하면서도 즐거워지는 성격이 비슷했다.


약간 나만의 세상을 구축하고 흐름대로 조용히 공부하는 차분한 성격의 나와 다르게, Y는 모든 것이 나와 달랐다. 이 친구는 노력파였고, 평소 의젓하면서도 성격이 자칭 상남자 스타일이었다. (하루는 집에서 찬밥은 절대 안 먹느라 어머니한테 밥을 새로 해달라고 했다가, "그럼 처먹지 마 이 자식아!"라는 소리를 들었다며 자신이 상남자라 너무 힘들다고 푸념을 했다. 물론 나의 대답은....."이런 친놈"

학교에서도 점심을 먹거나 농구를 하거나 단과학원을 갈 때도 항상 Y가 함께였다. 정확히 말하면  Y가 나를 챙겼다. 책상 자리가 달라도, 쉬는 시간만 되면 내 자리로 와서 매점을 가자고 잡아끌거나 밥을 먹고 나면 농구하러 가자고 또 잡아끌었다. 오죽하면 다른 친구들이 은근히 우리 둘을 질투할 정도; 

 

하루는, 서로 저녁에 12시까지 공부하고 확인 전화를 하자고 약속을 했다. 하루씩 번갈아서 저녁 12시에 전화해서 한 번에 안 받을 경우 그다음 날 점심 쏘기. 처음에는 전화해서 "야, 공부한 거 맞아? 알았다, 끊는다." 하던 전화가, 점점 그냥 심야수다로 바뀌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참 웃기던 추억이다. 학교에서 보고도 뭔 수다를 12시에 30분 넘게. 그래도 문제집에서 풀던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시험 전에는 시험문제에 대해 서로 이야기도 했고 어느 날은 이성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는 했다. 그리고 서로 팝송, 락을 좋아하다 보니 음악이야기가 가장 주를 이뤘다. Y는 '너바나'를, 나는 '비틀즈'를 좋아했다.

어느 날은 자느라 안 받아서 서로의 어머님들이 받으신 적도 있었다. 10년 전, Y 어머님이 운영하시는 낙지전문점에서 친구들과 만나 술을 먹으면서 그 이야기를 하며 서로 배꼽 잡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친한 친구였고 나를 챙겨주던 친구였다. 고3이 되면서 다른 반이 되었고, 그러다가 사소한 걸로 말다툼을 하면서 약 10개월 정도를 말도 안 하고 지냈다. 지금은 무엇 때문에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에 분명 내가 뭐라고 심한 말을 이 친구에게 한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수능을 보았고, 나는 빠르게 대학 합격을 받았다. 다른 친구를 통해 Y 추가 합격 발표를 기다리느라 초조해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안 하고 있었다. 고 2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 몇 명과 친목을 위해 DAUM 카페를 만들었다. 서로 다른 대학교에 가지만, 좋은 정보도 공유하고 서로의 소식을 전하는 용도로 쓰자는 취지로 내가 만들었다. 다른 친구들도 계속 이야기를 한다. 재진이 네가 Y에게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제 둘이 그만 좀 하라고. 제일 친했던 친구들끼리 뭐 하는 거냐고. 그래서 나는 고민 끝에 Y에게 E-mail을 보냈다.


"잘 지내냐? 다음 카페 만들었으니 가입했으면 좋겠다~ 친구들끼리 친목으로 만든 거다. 다들 가입해 있으니 불편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대학교 추가합격 꼭 될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잘될 것 같다. 기운내고~ 주소는 여기로 들어가면 돼"


그 날 새벽에 답장이 와있었다. Y에게 온 이메일. 거의 1페이지를 꽉 채운 장문의 메일이었다.

"재진아, 연락 줘서 고맙다. 이제야.....너와 다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나. 얼마나 기다렸는데, 야.

내가 참 잘못한 게 어쩌고 저쩌고~~~~~~~~~~~~~~~~~~~~(생략)"


좀 많이 놀랐다. Y녀석 역시 계속 내가 마음에 걸렸던 거고, 또 본인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일 내용을 당시에 몇 번을 봤던 기억이 있다. 이럴 때 보면, 참 자존심 그게 뭐라고. 친구들끼리 상처 주고 좋은 기억보다, 미안한 기억을 갖고 있어야 하는 건지. 너무 미안해져서 전화를 해서 오랜만에 엄청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인천 신세계 백화점(지금은 롯데로 바뀜)에 가서 점심을 먹고, 정동진으로 놀러 가자고 약속을 잡았다. 기차를 타고 난생처음 가보는 동해바다.


다행히 Y는 정동진에서 추가합격 전화를 받았다. 정확히는 Y 어머님이 전화를 받으시고 Y에게 축하한다고 전화를 주신 거였다. 아, 다행이다. 정말 축하한다! 그렇게 우리들은 인천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기분 좋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서로 대학생활에 집중하면서 만남은 뜸해졌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들과 다 같이 종종 만났고, 군대 있을 때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나는 연천 5사단 포병대대(본부포대)로, Y는 해병대로.


대학교에 복학하고, 어학연수 때도, 취업하고 한창 정신없을 때도, 바쁘다고 잊고 지내도 항상 Y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생각해보면 늘 나를 배려해준 건 Y였다. 그때는 고맙고 든든한 마음을 돌려 말하며

"진드기 같은 녀석! 맨날 주변에서 나타나!"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나를 변함없이 좋은 친구로 생각해주고 챙겨주는 친구. 이번에도 그렇고.


어릴 때, 내가 미처 몰랐고 당연시 여겨왔던 것들이, 실제로는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누군가의 배려와 마음 써줌 덕분에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고 존중받았다는 것을.





나의 특별한 두 번째 친구


중 2 때부터 알게 된 또 다른 오랜 친구 S라는 녀석이 있다.

6년 전 이맘때 즈음이었다. 부서를 옮기고 한창 바쁘게 일하던 추운 겨울날이었다. 친구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크게 놀랐다. 삭발을 하고 산소호흡기를 낀 채 눈을 감고 병원 침상에 누워계신 친구 어머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한 줄의 프로필 문구가 있었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 기적을 믿습니다!'


어지러웠다. S에게 당장 연락했다. 어머니가 급성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괜찮을 거라고, 걱정 말라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던 내 친구. 그로부터 정확히 3일 후 친구의 프로필 사진은 어머니의 영정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너무나 놀랍고 기가 막혔다. 퇴근하자마자 장례식장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방배동에서 인천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작은 근조화환 2개만 덩그러니 있는 작디작은 내 가장 친한 친구의 어머님 마지막 길......


조문객도 거의 없는 그곳에서 내 친구는 혼자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친구의 아내는 유일하게 앉아있는 조문객들 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일가친척도 없는 내 친구인데, 나라도 반차 내고 일찍 왔어야 하는데..... 라는 뒤늦은 후회 만이 밀려왔다. 친구 얼굴을 보고 손을 잡으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허망하고 기막혔다.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면서도 억지로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너무나도 힘겹게 말을 꺼냈다.


"하...... 어떡하냐..... 어머니가 혼자 고생고생 하시면서도 너 하나 보고 사셨는데..... 이제야 너도 장가갔으니 앞으로 잘 사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더 효도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새를 못 참고 급히 가신 거야?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이 말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했다. 연신, 자신이 무심해서 가까이서 챙겨드리지 못했다고 하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 더더욱 안타깝고 허망할 뿐. 그저 손만 부여잡고 진심으로 다독여줄 수밖에......


S는 외아들이다. 그리고 세 명의 아버지가 있었다. 친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그 뒤에 새아버지가 두 분 계셨으나 모두 이혼을 하시면서 떠나셨다. 나는 사실 잘 몰랐다. 중 3 때 1월 26일, S의 생일 초대를 받고 상훈이 집으로 갔다. 많이 놀랬다. 지금 보면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송강호의 집과 똑같았다. 지하에 집이 있었다. S는 나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친아버지의 얼굴을 모르는 것과, 새아버지들은 항상 똑같았다고. 며칠에 한 번씩 집에 들어와서 폭력을 행사하고 어머니를 괴롭혔다고. S의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새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인사를 드리고 나가려는데 그분이 지갑에서 5천 원을 꺼내시더니 상훈이에게 건네며 말씀하셨다. "생일이니까 특별히 준다. 아껴 써라~"

 

나는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특별히 준다..... 아껴 써라.....

새삼 우리 부모님이 구축해주신 환경 속에서 나는 얼마나 편안하게 사랑받으며 살아왔는지를 깨달았다. 필요하다고 하면 주시는 용돈과 등하교 시에 항상 밖에까지 나와있는 어머니, 그리고 동생과 내가 요청하면 항상 뭔가를 사 오시는 아버지.


S에게도 놀랬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삐뚤어지지 않고, 늘 밝고 공부도 열심히 한 내 친구 S. 의젓하고 배려심 깊은 내 친구. 늘 나를 높여주고, 칭찬해주는 내 친구.

S는 어머니가 최근에 인천지방경찰청 옆 철판요리 집에서 일하시게 되었는데, 점심을 사주신다고 했다고 가자고 했다. 몇 번을 거절하다가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날 S 어머니가 즉석에서 해주시는 철판볶음밥 요리를 먹었다. S의 어머니는 일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셔서 테이블에 있는 철판 앞에서 매우 미숙하셨으나, S는 연신 박수를 치며 "엄마~ 와~ 진짜 능숙한데?"라고 말했다. 나도 옆에서 같이 어색한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상훈이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아들, 생일 축하하고 엄마가 미역국도 못해주고 점심 이걸로 때워야 할 것 같아서 미안해....."


"아니야, 엄마. 너무 맛있어. 우리 둘이 정말 잘 먹었어."


그 후로, S의 어머니를 몇 번 뵈었는데, 볼 때마다 많이 힘들고 고단해 보이셨다. 일가친척 하나 없이 여성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는 아직도 친구 S와 어머니그때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친구야, 밥 잘 챙겨 먹고 기운 내라. 네가 기운을 내야 어머니가 마음 아파하시지 않고 편히 떠나실 수 있을 거 아니냐. 그리고 잘 보내드려라.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 친구야..... "


라고 말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많이 후회했다. 함께 해줄 걸, 같이 있어줄걸.

요새는 바빠서(라기엔 내가 무심) 자주 못 만났는데, 얼마 전 갑자기 S가 생각났다. 카톡으로 시크하게 선물을 보냈더니 전화가 온다.


"재진아, 선물 다시 한번 고맙다~

요새 별일 없지? 목소리가 피곤해 보인다. 부모님도 잘 계시지?  시간 될 때 우리 집 근처 와서 전화 해.

소주나 하자~~ 바쁘더라도 밥 잘 먹고 항상 기운 내"


우리는 길게 말할 줄 모르지만 마음으로는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다. 나와 내 친구. 그런 우리들에게 최고의 안부이자 위로의 말들. "잘 먹고 기운 내"

지금도 내가 공허하고 마음이 안 좋은 날, 상훈이는 어떻게 알고 연락이 온다.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연락했지~'라며 말하고,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친구.





누구나 말한다.

진정한 친구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돌을 던져도 나를 믿어줄 수 있고, 평생에 걸쳐 그 어떤 상황과 세월 안에서도 변함없이 나를 이해해줄 그런 존재라고. 서로 다른 방향과 다른 속도로 공전과 자전을 한다. 끊임없이 주변의 크고 작은 행성들과 충돌하며 상처 입기도 한다. 하지만 '우정'이라는 태양 주변을 끊임없이 돌며 우리들은 그렇게 만나 서로를 마주하고 치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아는 친구들에게 '베스트 프렌드, 절친. 찐친' 등 겉으로 화려하게만 보이는 수식어를 감히 붙이고 싶지 않다. '친구'라는 순수하고 숭고한 단어 자체로도 충분하다.


친구들아.

어린 시절처럼 우리가 매일 보거나,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서로를 변함없이 기억하자. 살아가면서 우리 서로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존재들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에겐 가장 순수하고 찬란했던 기억들이 있음을 잊지 말자. 서로가 조금씩 변해갈 때도, 서운한 일이 생겨도, 자연스럽게 말해주고 너그럽게 이해해주자. 앞으로도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멋있게 나이 들어가자.



"나이가 들어 친구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본다는 건,

왠지 모를 목메임을 감수해야 하는 건가 보다."

- 책 '존재만으로 빛나는' 中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재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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