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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in Jul 28. 2022

딸아이를 울린 우즈베크 파티




오늘은 남편의 작은 외할아버지의 손주 파티에 다녀왔다.

우즈베크에선 이 정도 거리의 가족은 그리 먼 가족이라고 하지 않는데 작은할아버지의 며느리는 한국사람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재밌는 구경거리와 우즈베크 이래에 없던 멋진 파티를 하니 이날 파티에 꼭 오라고 우리가 오기 전부터 어머님께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이 파티는 남자아이가 포경수술을 하는 것이 우즈베크 부모님에겐 큰 축복이고 기쁨이라고 보통 13세가 넘어가기 전에 남자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아이에게 해주는 파티이고, 아들 가진 부모가 모두 해주는 건 아니고 해주는 사람도 있고 그냥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원래는 우즈베크 대표음식인 오쉬를 해서 사람들과 나눠먹으며 잔치를 한다고 한다.

내가 다녀온 이번 잔치는 결혼식장을 대여해서 이웃나라 카자흐스탄 유명 여자 가수도 초대하고 곰돌이탈을 쓴 곰돌이들까지 와서 쇼를 하고 큰 파티를 열었다.

파티를 크게 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아이의 엄마가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감사 인사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파티에 갈때 여자들은 치렁치렁 금을 건다

시엄마는 파티에 갈 옷을 사준다며 파티 전전날부터 나를 데리고 시장을 돌아다녔고 이런 파티 이야기를 할수록 파티에 대한 기대감과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기쁨에 설레어하고 있었는데..

기쁨과 설레었던 마음은 파티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모두 깨져버리고 말았다.


파티 당일.

7시 시작이었는데 빵집에서 급하게 돌아와 일찍 가야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시어머니의 말에 우리는 열심히 준비를 하고 파티장에 갔고, 도착하니 아직 문을 개방해 놓지 않았는데 이모님은 어떻게 들어가셨는지 이미 자리를 맡아놓고 계셨고 남들보다 일찍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예쁘게 플레이팅 된 테이블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드디어 파티 시작.

유명가수들이 온다더니 시작으로 우즈베크 가수가 노래를 불렀고 무대 앞에선 곰탈을 쓴 곰들이 나와 춤을 추었는데 아이들이 곰돌이들을 보고 신이 나서 무대 앞으로 우르르 나와 곰돌이들을 만지기 시작했다.


큰딸도 어찌나 좋아하는지 특히나 좋아하는 게 곰인형인지라 곰을 보자마자 뛰어갔는데 나는 아이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담고자 카메라 동영상을 켜고 있었다.

문제는.

아이가 신기해서 곰을 손을 만졌는데 곰돌이들은 아이들에게 손인사 한번 해주지 않았고 그런 곰을 보는 아이는 점점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갔다.

처음에는 주인공 아이의 파티니까 그럴 수 있지.

사진을 다 찍으면 다른 아이들과도 사진도 찍어주고 손도 흔들어주고 할 거야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선 아이들에게 불친절한 그런 이벤트는 못 봤으니까.

하지만 끝까지 주인공 아이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과는 사진을 찍어주지 않았고 이쪽에서 이런표즈로 찍고 저쪽 가서 저렇게 찍고 곰돌이들은 주인공 아기와 사진을 찍거나 춤을 추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파티 주인공 아이만 곰돌이 가운데 서서 사진을 찍어주니 다른 아이들 표정은 슬퍼졌고 결국 큰딸은 곰돌이 옆에 있다 밀려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가 울자 울컥한 나는 시어머니에게 곰돌이랑 사진을 찍을 수 없냐고 물어봤는데 원래 안된다고 이야기했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 아이만 그랬다면 또 이해해보려고 했겠지만 다른 아이들도 소외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고 이런 파티가 자주 열리는 것도 아닌데 사진 못 찍는 이유는 무엇이고 아이들에게 손 한번 흔들어주고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는 게 어려운 일이었나.

나는 이 파티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울면서도 내게 오지 않고 무대 앞에서 곰돌이 옆에 있으려고 하는 딸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뭔가를 바닥에 던지는 주인공의 할머니.

뭐 하는 건가 유심히 보니 사탕인지 뭔지 마구 바닥에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땅에 떨어진 것들을 줍는데 그 모습조차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숨을 푹 쉬고 있는데 딸아이가 사탕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고 기분이 좋아 보여서 내가 본 건 까마득하게 있고 곰돌이가 준거냐고 물어보니 땅에서 주웠다고 이야기하는 딸내미.


처음엔 기분 좋게 축하해 주러 간 파티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냥 돈 자랑하려고 연 파티처럼 느껴졌고 먼 가족도 가족이니까 참아보려 했지만 더 이상 정이 가지 않아  파티장에서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 딸 차별하면서 아들만 파티를 열어주는 이 파티 존재 자체도 이해하기 싫어졌고

아들 없는 나도 이런 기분인데 아들을 데리고 이곳에 왔다면 기분이 더 처참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들 셋 있는 큰집에서도 파티에 오지 않았고 시누이네 쌍둥이 애들도 오지 않았다. 문화라고는 하지만 분명 우즈베크 사람들 사이에서도 뭔가 냄새가 난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나는 우는 아이를 핑계로 샤로프든 에게 집에 가자고 이야기하고 먼저 자리를 빠져나왔는데 남편과 집에 걸어가며 오늘 파티에서 있었던 불쾌한 감정에 대해 속마음을 모두 이야기했다.


한국이었으면 이러지 않았을 거야.

아이들 놀이터처럼 놀 수 있다고 하더니 놀이터도 없고..

곰돌이들은 주인공 아이하고만 사진 찍고 놀고

이럴 거면 왜 아이들 초대했어?

교육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모든 게 이상해.


처음에는 무심하게 들었던 남편이지만 큰딸이 울었다는 말에 샤로프든도 한마디 했는데


우즈베크 사람들을 대부분 검소해서 이렇게 파티에 와도 낭비라고 생각하고 가는 사람이 많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쓸데없이 가수 부르고 이벤트 하고.

우즈베크 부자들이 모두 이런 거 아니고 이런 날 기부하거나, 우즈베크 전통음식을 해서 불쌍한 사람들한테 나눠주는 그런 사람들도 있어.


남편이 나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들어줘서 기분이 점점 풀리려는데 또 울컥해서 이야기하고.

그렇게 나는 집에 가는 내내 아무 잘못 없는 샤로프든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시원한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걸 잘 아는 남편은 이런 나를 달래는 방법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슈퍼에 데리고 갔고 더위까지 먹은 탓에 아이스크림보다 시원한 냉수 한잔 마시니 기분이 어느새 괜찮아졌다.


파티를 끝마치고 돌아온 시엄마와 수박을 먹으며 파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시엄마도 남편이 태어났을 때 우즈베크 전통음식을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고 하는데

오늘의 파티는 결론적으로 나만 뿔이 났던 이상한 여자였나 보다.


자기 우리 돈 많이 벌면 우리 딸들 위해서 우리도 파티하고 기부도 하고 그러자?

그래~ 지금도 해줄 수 있어

 

가끔 척하는 우즈베크 남편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내 마음을 제일 잘 알고 달래주는 우즈베크 남편이다.

 



파티장에서-

오늘도 역시나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테이블에 앉았다.

결혼식 때는 아예 남자 여자 따로 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이번 파티는 같은 장소에서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처음 왔을 때는 남편과 떨어져 앉는 것도 싫어했던 나였는데 지금은 시댁 여자들 사이에 잘도 껴서 앉아 있는다.

우즈베크에서도 외곽 지역인 이곳은 한국인 아니라 외국인은 나뿐인지라 역시나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한국인이어서 좋은 점은 이곳에 있으면 나도 그냥 사람인데 대우가 다르다.

파티를 끝까지 끝내고 온 이모님이 예쁜 실크 원단을 주었는데 파티를 연 가족이 내게 선물을 주었다.

원래 이런 파티는 특별한 손님에게는 선물을 주는데 내게만 예쁜 꽃 모양의 반짝이는 원단을 선물로 준 것이라 한다.

우리 딸이 운 거 생각하면 이런 원단이 무슨 소용.!


남편과 택시를 타거나 시어머님과 밖에 나가거나 할 때면 어김없이 들리는 단어가 있다. 카레이스.

한국 이야기를 한다. 우즈베크는 종교적인 이유인지 남의 와이프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큰 실례이기 때문에 대놓고 물어보지 못하는데 돌려가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듯하다.

우즈베크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고 한국사람을 무척 좋아한다.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크게 느끼게 해주는 우즈베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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