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맞는 서른의 생일 기분
살면서 결심한 몇 가지 원칙 중 하나는 한 살씩 공평하게 더해지는 나이로 호들갑을 떨지 않는 것이다. 특히 스물아홉의 한 해는 작은 사건들이 끊이질 않아서 뭐가 어떻든 빨리 시간이 지나길, 내년이 오길 바랐다(시간이 모든 경우에 약이 되어주진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앞자리의 숫자가 바뀌는 올해를 덤덤하게 맞이했고 한동안은 그런 마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참는 것에 익숙해지면 이유 모를 감정이 많아진다.
며칠 전 생일이 지났다. 가까이서 멀리서 건네는 선물과 축하의 말들 속에는 매년 잊지 않고 챙겨주는 다정한 마음도, 오랜만의 반가운 연락도, 어느 정도 형식적인 인사들도 있었다. 마음에도 없는(것 같은) 말을 주고받는 것이 불편했던 예전에 비해 이젠 그런 말에도 고마워할 줄 안다. 점점 축하받을 일이 드물어진다는 사실과 더불어 서로에게 형식적인 말일수록 생략하기 쉽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인사치레에 담긴 옅은 성의를 볼 줄 알게 된 건 나이를 먹으며 얻은 좋은 깨달음이다. 그러나 분명 따뜻해야 마땅할 하루가 그렇지 않은 건 언제나 이해하기 힘든 ‘생일 기분’이다.
언니네 이발관의 ‘생일 기분’이라는 노래를 처음 들은 게 중학생 때였을까 고등학생 때였을까. 그 노래를 처음 듣고 이런 기분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어찌나 반갑던지. 다른 사람들의 생일이면 쉽게 ‘주인공’이라는 말도 쓰고 축하도 하고 약간은 들뜨기도 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정작 내 일이 되면 왜 그렇지 않은지 모르겠다. 축하에 선물까지 받을 수 있는 날이 매년 하루씩 있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워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더 우울해진다. 거기에는 고마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자책까지 섞인다.
그렇게 생일은 대개 설명할 수없이 우울하지만 그래도 올해는 우울에 붙일 이유가 있었다. 단연 가장 비중이 큰 건 금전적인 문제다. 아르바이트 계약 만료일이 생일 전날이었고, 그동안 이래저래 귀찮아서 미뤄둔 걱정과 고민을 뒤늦게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마주해야 했다. 깊게도 멀리도 생각하지 않고 너무 당연히 재계약을 받아들였는데 그러고 나니 현실적인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실업급여가 끝나는 타이밍에 얻은 아르바이트에 버릇처럼 안주했고 조급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해야 할 고민들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선택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계약직의 적은 수입 속에서 굳이 꼽을 수 있는 장점은 짊어질 책임이 적었고, 작년 한 해 직장에서 사람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험은 모든 게 적당한 현재에 쉽게 만족하게 했다. 그밖에 코로나가 불러온 난항도 핑계를 부풀리는데 한몫했고. 주변에서는 취업을 준비하며 공부를 하든 매일 회사 욕을 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든 모두가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려 애쓰고 있는데 나는 걸음을 흉내만 내며 그 뒤로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기분으로 맞이한 생일은 도저히 덤덤할 수가 없었다.
4월은 회사에서 1분기에 대한 자체 평가를 내리는 기간이기도 하다. 나의 1분기는 큰 마이너스가 없지만 플러스 또한 없어서(혹은 플러스만큼의 마이너스로) 적자는 아니지만 이 흐름이 이어진다면 전망은 몹시 나쁠 예정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휴일을 정신의 피로함과 육체적인 무력함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거나 멍하니 SNS를 둘러보는 시간으로 채운다. 일단 아르바이트를 지속하며 이직을 준비하고, 그림을 그려 부수적인 수익을 얻겠다는 결심과 무언가에 대한 글을 쓰거나 영상 편집을 배워 어떠한 결과물이라도 만들어보겠다는 의욕도 머릿속을 헤매다 빠져나가지 못한다. 거기에 오늘은 몇 년에 한 번 꼴로 겪는 극심한 생리통까지 야단이었다. 그러나 에너지가 없을 때일수록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지금의 좋지 않은 기분에 대해 구구절절 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덜 피로한 하루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