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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아요 Jul 29. 2016

미노시마고(箕島) 야구부 그리고 재일교포

1979년 봄, 최강 미노시마를 상대로 고시엔 마운드에 오른 한국인 투수

2013년, 제95회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미노시마 야구부


7월 28일, 미노시마(箕島)고가  제98회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 와카야마(和歌山)대회 결승에서 시립와카야마(市立和歌山)고에 2 대 0으로 패해 지난 95회 대회 이후 3년 만의 여름 고시엔 진출에 실패했다.


미노시마고등학교라고 하면 일본야구에 관심이 높은 한국 야구팬들에게는 결코 낯선 이름이 아니다. 1982년 제12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한 재일교포 선수단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에서는 당시 선수단에 “막강 미노시마 멤버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 소개된 대로 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미노시마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야구 명문고로 이름을 날렸다. 한국명 장기호를 비롯한 3명의 미노시마 선수가 재일교포 선수단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82년도 봄에는 선발고교야구대회(이하 센바츠 또는 봄고시엔)에 출전하기도 했으며 1회전과 2회전에서 우승후보로 손꼽히던 아게오(上尾)와 강호 메이토쿠(明徳)를 연파하며 대회 베스트8에 까지 올랐다. 바로 이 시기가 미노시마고가 전국의 강호로 군림하던 거의 마지막 무렵.


당시까지 미노시마 야구부는 전국의 강호였던 만큼 고시엔 단골 팀이었는데 68년 처음 센바츠에 출전한 이후 84년까지 총 13차례 봄, 여름 고시엔에 출전했다. (90년대 이후 4번 출전)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미노시마고 야구부는 바로 1979년 이시이 타케시(石井 毅, 스미토모금속-세이부)와 시마다 무네히코(嶋田 宗彦, 스미토모금속-한신) 배터리가 팀을 이끌던 시절 이었다.

이해 미노시마고는 일본고교야구대회 101년 역사상 단 7번 밖에 없는 봄, 여름 고시엔 연패를 달성하게 된다.(당시 3번째) 이는 현재까지도 공립고등학교로서는 유일무이할 정도의 대기록이다.


한편, 역대 최강의 미노시마로 손꼽히는 79년, 이 막강한 팀을 상대했던 한국인 투수가 있다.


재일교포 3세인 그는 봄 고시엔 2회전에서 상대팀인 시모노세키상업(下関商業)의 에이스로 마운드에 오른다. 이 투수는 훗날 센슈대(專修大學)거쳐 OB베어스에 입단해 첫해인 1984년 9승, 이듬해 10승, 3년 차에 19승을 거두며 리그 정상급 에이스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는 프로야구단 NC다이노스의 투수코치로 활동 중이다.


그의 일본명은 야마모토 가즈히코(山本 一彦), 한국명 최일언(崔一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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