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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아요 Jul 19. 2018

일본고교야구에 빠지다.

2008년, 야구 명문 PL학원고의 1학년 4번 타자에 반하다.

올해로 10년 됐다. 본격적으로 일본고교야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

2008년 여름 일본 가코가와에 머물고 있었는데 아침이 되면 티비에서는 어김없이 고교야구를 중계해주고 있었다. 어린 시절 집에 NHK가 나온 덕분에 일본고교야구에 대해 일찍부터 관심이 있었고, 인터넷을 통해 큰 뉴스들은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질적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야구라면 다 좋아했다. 때문에 고교야구를 시청하는 것은 일본에서의 지루한 일상을 달래주는 유일한 위안이기도 했다.


가코가와시는 효고현이었지만 역시 티비에서 주로 보여주는 것은 격전지 오사카 대회였다. 당시 오사카는 90회 기념으로 2개교가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즉 고시엔에 오를 수 있었다. 이에 오사카는 블록을 남, 북으로 나눠 지방대회가 진행됐다.

어느 날 남오사카 대회 PL학원의 경기가 티비에 나오고 있었다.


“키요하라, 구와타 KK콤비의 그 PL?”


관심이 갔다. 그리곤 그대로 경기를 지켜봤다. 그러던 중 4번 타자에 눈이 갔다. 일순간에 배트를 돌리더니 투수가 던진 공을 레프트 스탠드에 꽂아 버렸다. 그런데 이 녀석 불과 1학년생이었다. 일본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야구 명문 PL학원 4번 타자가 말이다.

1학년 답지 않은 거침없는 스윙, 그리고 일본 고교생 답지 않은 스타 기질.

나는 녀석의 야구에 한눈에 반했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PL학원의 1학년 4번 타자는 1983년 키요하라 이후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 중학교 톤다바야시 시니어 시절 타격, 마운드에서 천재적 야구 재능을 보이며 킨키 지역 고교 감독들을 야구장으로 집결시켰다는 것, 그 엄청난 스카우트 경쟁의 승자가 PL학원이었다는 것 등 다양한 정보를 알게 됐다. 그렇게 알면 알수록 녀석은 나에게 더욱 빛나 보였다.

이후 PL학원은 전국구 강호답게 전국고교야구선수권 남오사카 대회 결승전에 진출했다. 킨키대부속고(近大付)와의 결승 당일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건 에이스 스나하라 타카시(砂原隆史)가 아니었다. 바로 1학년 4번 타자, 그 녀석이었다. 수비의 실책성 플레이로 점수를 내주긴 했지만 130대 후반의 패스트볼을 시원하게 내리꽂았다. 시니어 시절 MAX 145KPH를 던졌다는 기대에 미치는 피칭은 아니었다. 그래도 플레이 하나하나가 거리낌이 없이 시원시원했다.


그리고 3회초 1 대 1 동점 주자 1루 상황, 녀석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투수의 공을 풀히팅 했다. 그렇게 배트에 닿은 타구는 이번에도 레프트 스탠드에 꽂혔다. 이 홈런은 대회 6경기 연속 타점을 기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유니폼 가슴 부분을 꽈악 움켜쥐고 그라운드를 도는 장면을 보며 고시엔에서 플레이하는 모습까지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6 대 3까지 이기고 있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연장 승부를 허용한 PL학원이 끝내기 실책을 범하며 패하고 만 것이다. 겨우 한 발자국 모자랐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해 고시엔 그라운드에 선 녀석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의 시간이 지나 여름 고시엔 준준결승이 진행할 무렵 나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로도 나는 녀석의 소식을 종종 찾아보곤 했다. 그해 가을대회를 치르며 대선배 키요하라 카즈히로(清原 和博)가 1학년 시절 올린 타점 기록을 넘어섰다.


‘제2의 키요하라’ 

그 무거운 닉네임에 짓눌리지 않았다. 오히려 실력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역시 내가 한눈에 반할만했다.


하지만 이후 부상에 발목 잡힌 고교선수 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이듬해 1월 허리 부상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 3월 센바쓰에선 그 여파로 1안타에 그쳤다. 여름에는 극도의 부진을 겪었다. 요시카와 다이키(吉川大幾, 현 요미우리)에게 팀의 간판타자 자리를 내줘야 했고 팀이 여름 고시엔에 오르고도 레귤러에서 밀리는 쓴맛을 봐야 했다.


다행히 3학년에 올라 컨디션을 회복했다. 4번 타순을 되찾아 요시카와와 함께 강력한 타선을 구축했다. 이해 PL학원은 오사카를 제압할 우승 후보 1순위로 평가를 받을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여름 고시엔이 걸린 전국고교야구선수권 오사카 대회 도중 얘기치 않은 부상이 또다시 발목을 붙잡았다. 2회전 이마미야공과와의 경기중 8회 주루플레이를 하다 스파이크 징이 인조잔디에 걸려 발목이 돌아갔다. 경기 후 기자와의 인터뷰도 정중히 거절하고 곧바로 병원을 향했다. 작지 않은 부상에 다음 경기에서 제외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4회전은 강호 리세이샤(履正社)와의 경기였다. 무리해서 4번 타순에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PL학원도 역전의 역전을 거듭한 끝에 연장 10회 8 대 7로 패하고 말았다. 이 날 동료 요시카와는 1안타 1타점을 기록했고, 리세이샤의 간판 야마다 테츠토(山田哲人, 현 야쿠르트)도 2안타 2타점으로 활약했다. 분한 모습이 역력했다. 1학년 시절 남오사카 대회 결승에서 끝내기 패배를 당하고 2루 근처에서 쓰러져 울던 선배를 일으켜 다독이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오열했다. 그래도 분함이 풀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녀석의 고교야구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나 역시 끝내 고시엔에서 활약하는 그 녀석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나를 일본고교야구에 빠지게 만든 그 녀석의 이름은

칸노 코우키 (勧野甲輝)


‘고시엔에서 빛나라’ (甲子園で輝け)라는 의미로 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이다.

x발. 이름까지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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