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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Che Nov 04. 2022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엇갈린 선택을 한 형제의 비극

-아일랜드 독립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형제의 비극을 다룬 영화

   작년말 5.18트라우마를 다룬 내 최근작 <아들의 이름으로>(2021)를 본 한 대구 분의 제안으로, 경남 의령 출신의 백산 안희제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가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안희제는 박상진, 경주 최부자등과 함께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자금 60%를 지원한 경상도 부자들이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오랜만에 들쳐보면서, 그 시대 배경을 다룬 영화들인 <암살>(2015)이나 <밀정>(2016), <말모이>(2018)등을 비롯한 국내영화들을 다시 감상했다. 톱스타들을 캐스팅해 세련되게 잘 만들어 상업적으로 대성공한 <암살>, <밀정>은 재미는 있었지만, 다소 과장된 느낌이 있었다. 유사한 컨셉으로 잘 만든 외국영화는 뭐가 있을까 찾던 중, 수년전에 재밌게 봤던 아일랜드 독립을 다룬 영화들이 생각났다. <마이클 콜린스>(1996), <블러디 선데이>(2002),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이 그 영화들이다. 세 작품 모두 베니스, 베를린, 칸느 국제영화제서 최고 작품상을 받을 정도로 큰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 세 편의 영화들은 일제강점기를 겪고, 광주 5.18 민중항쟁을 겪은 우리 입장에서 매우 공감되는 이야기이자, 영화적 형식에 있어서도 매우 도움되는 작품들이다. 그중 작가주의 감독인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은 다시 봐도 좋은 영화였다. 그 작품은 내가 만들고자 하는 최선의 텍스트 영화는 아닐지라도, 주제나 인물에 접근하는 연출 방식은 확실히 배울 점이 있었다.

켄 로치 감독의 아일랜드 독립투쟁 영화

   켄 로치(Ken Loach, 1936년생)감독은 2016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만들어 두 번째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수상했다. 여기서 언급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126분)은 그의 첫 번째 칸 황금 종려상 수상작이다. 영국 출신인 켄 로치는 소위 좌파로 불리며 노동자 계층이나 아웃사이더 시선에서 사회 문제점을 극단적인 리얼리즘 스타일로 만드는 영화감독으로 유명하다. 평소 그는 배우들도 역할에 어울리는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해 일상적인 생활연기를 자주 연출하지만, 이번 영화는 나름 유명 배우도 캐스팅해 리얼하면서도 비교적 안정감있는 연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영화는 수백년간 영국식민지로 살아온 아일랜드가 마이클 콜린스를 중심으로 조직된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Irish Republican Army)이 1919년부터 영국을 상대로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시작한 직후가 그 배경이다, 영화는 1920년 북아일랜드의 한 산골 마을에서 출발한다. 스토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아일랜드 독립투쟁을 함께 했던 한 형제가 나중에 서로 반대되는 투쟁노선을 택함으로서 일어난 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컨셉만 보면,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형제의 비극을 다룬 <태극기 휘날리며>(2004)와 유사하지만, 내용과 스케일은 아주 다르다. 우리 일제 강점기 배경의 영화들은 주로 강압통치를 한 일본인들을 주로 안타고니스트(적대자)로 설정하고, 그들과 대립하는 주인공인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들을 메인 플롯으로 다룬다. 물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도 중반까지는 영국군들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모습들을 다루지만, 1921년말 영국과 평화협상 이후, 벌어지는 아일랜드 공화국군 내부 온건파(협상 찬성)와 강경파(완전 독립주장)의 내부 싸움과 갈등이 메인 플롯이 된다. 그것은 해방 직후 이념간의 갈등으로 독립운동가 출신들과 미군정에 붙은 친일파들까지 얽혀 극단에 치달으며 갈등했던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과 유사하다. 하지만 국내영화에서 그런 상황을 다룬 영화는 드물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개봉됐을 당시 일부에선 영국출신 감독이 아일랜드 편에 서서 영국을 폄하한다고 비난하기도 했고, 보수당과 보수주의자들은 켄로치를 공격했다고 한다. 그는 한쪽에선 리얼리즘의 거장이라 하고, 다른 한 편에선 정신나간 마르크스 신봉자라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한 순수한 아일랜드 청년이 어떻게 과격한 IRA공화국군이 되어 아일랜드의 자주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어갔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메인 플롯은 데이미언 오도노반과 테디 오도노반이라는 두 형제가 서로 영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위해 싸우다가 나중에는 아일랜드 자유국과 아일랜드 공화군과의 대립과정에서 서로 반대편에 서서 싸우다 결국 형이 동생을 처형할 수 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이다. 서브 플롯은 데이미언의 연인 시네드의 가족 이야기이다.

 

   계급간의 연대에 관한 영화

   켄 로치는 이 작품에 대해 영국을 반대하는 영화가 아니라, 계급간의 연대에 관한 영화라고 선을 그었다. 그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인물은 온건한 보수적 민족주의자인 형 테디가 아니라, 과격한 진보주의자인 동생 데이미언이다. 즉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영웅이었지만 영국과 평화조약후 부분적인 자치 독립을 지지했다가 완전한 자유 독립을 주장한 강경파에게 암살당한 마이클 콜린스가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자 독립운동가 제임스 코놀리를 입장을 두둔한 것이다.

   그런 의도는 감옥에 갇힌 데이미언과 댄의 대사 “우리가 당장 내일 영국군을 몰아 내고 더블린 성에 녹색기를 꽂는다 해도 사회주의 공화국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모두 헛될 뿐이며 영국은 계속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또한 여러분의 땅을 계속 지배하는 것은 영국의 자본가가 상업단체들이 될 것입니다.”로 표현된다. 그런 말은 사실상 제임스 코놀리의 재인용이다. 영화 후반에 평화조약을 놓고 IRA 내부에서 다툴때 데이미언은 평화조약대로 영국과 협상한다면 ‘가난한 자들에 대한  권력자의 지배가 더욱 공고해지고, 예전처럼 노동자들은 다시 작업대의 노예가 돼서 일자리를 구걸하게 될’거라고 강변하는데서도 그런 의도가 보인다.

   참고로, 제임스 코놀리(James Conolly)는 1916년 4월 아일랜드에서 부활절 기간 동안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봉기를 이끈 인물중 한 사람이다. 우리의 3.1운동과 유사한 더블린을 중심으로 진행된 부활절 봉기는 영국군에 의해 진압되었고, 그 과정에서 코놀리는 영국군에 처형당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영국의 침략과 억압으로 인해 한 평범한 아일랜드 가족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전쟁 와중에 처참하게 붕괴되는 비극을 다룬 듯 보이지만, 감독은 그러한 가족 이야기를 통해 계급과 이념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눈물을 머금으면서 데이미언을 처형하는 형 테디를 보다 보면 ‘이념은 피보다 강하다’는 생각도 든다. 한 형제가 동일한 목표를 갖고 싸우지만, 서로 다른 싸움 방식을 취함으로서 적이 된 것이다. 그런 딜레마는 전쟁을 다룬 다양한 서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설정이다. 자유를 위한 투쟁과정에서 목표가 같아도, 그걸 이루는 방법이 다를 경우, 또 다른 대립이 시작된다. 외부의 적이 소멸되면 내부의 적이 생성된다. 영화 초중반, 영국군 감옥에서 동료 댄에게 말하는 데이미언의 “무엇을 반대하는지 아는 건 쉽지만, 뭘 원하는지 아는 건 어렵다”는 대사에서도 그 영화 결말에 대한 복선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진정한 적대자는 영국군이 아니라, 독립을 받아들이는 서로 다른 이념인 듯 보인다. 중반까지는 영국군이 적대자 역할을 하지만, 중후반인 80여분 지점부터는 같은 아일랜드 동료끼리 상호 적대자가 된다. 부분적인 자치를 허용하느냐 완전한 독립을 위해 계속 싸우느냐로 형과 동생이 대립되고, 과거 동료끼리도 대립된다. 영화는 관객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과연 친형제를 죽이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인가? 결국 아일랜드인들의 비극은 단순이 영국의 무자비한 식민정책 외에도 계급과 자유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사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가 화합하기 힘든 이유로 카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적인 갈등도 있지만, 그 문제에 대해선 비중있게 언급하진 않는다.


  캐릭터 및 배우들: 극사실주의 연기, 비전문배우 다수

   켄 로치는 영화에선 전형적인 할리우드영화의 배우들처럼 멋지고 목에 힘주어 말하는 식의 연기를 보기 힘들다. 대부분 실제 인물이 정말 있는 그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매우 리얼하다.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말이다. 그의 영화는 비전문 배우들에게 상황을 던져주고, 즉흥연기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경우,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연기연출을 한 것 같진 않지만, 의사 지망생에서 강경파 IRA 대원으로 나오는 주인공 데이미언 오도노반을 연기한 킬리언 머피의 인터뷰를 보면, 겐 로치의 연기 연출 스타일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동생 데이미언(킬리언 머피)와 형 테디(페드레익 딜레이니)

   “그 작품은 연기에 대한 저의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꿔놨어요. 대본보다는 그냥 상황에 대한 반응을 보이면 되는 식으로 말이죠. 따라서 이성이 아닌 감정에만 몰입하게 되죠. 그 영화 촬영때, 굉장히 현실감이 느껴졌어요. 촬영 막바지엔 내가 연기한다는 생각이 안들더군요. 그냥 우리가 만든 이 세계에 빨려들어간 것 같았어요.” (2017년 다큐 <켄로치의 삶과 영화>에서)


  실제로 이 영화속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리얼하다. <암살>이나 <밀정>에서 보이는 배우들의 멋진 비주얼이나 액션, 그리고 그럴듯하게 폼잡는 대사는 없다. 때론 너무 건조해서 다큐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할 정도다. 그렇다고 캐릭터가 뚜렷하고 개성이 강하거나 그렇지도 한다. 대신 그 시대에 있을법한 진솔한 캐릭터로 느껴지기에 오히려 더 쉽게 공감이 된다.

  영화의 주인공 데이미언에겐 크게 두 번의 딜레마가 주어진다. 첫 번째 의사가 되느냐, 공화군에 참여하느냐 기로에 선다. 하지만 의사가 되기 위해 영국으로 가려다 기차역에서 영국군의 잔학행위를 목격하고 다시 돌아와 공화군에 입대한다. 두 번째 딜레마는 아일랜드 공화군과 영국의  반쪽 독립인 자치협정이 이뤄지자, 그는 그것을 반대하고 완전독립으로 주장하면서 형 테디와 대립되고, 내부 투쟁과정에서 형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끝내 동지들에 대한 배신을 거부하고 사형대에 선다. 실제로 데이미언 캐릭터의 롤모델은 실제로 아일랜드 독립투쟁을 하다 영국군에 총살당한 제임스 코놀리라고 한다.

  그의 형 테디 오도노반은 아일랜드 공화군으로 영국의 통치에 반발해 싸우다 아일랜드가 자치국이 되자, 온건파 아일랜드 자유군에 참여해 강경파 IRA인 동생과 적대자가 된다. 그의 딜레마는 처형 위기에 빠진 동생을 설득하다 실패하고 자기 손으로 처형하게 되는데서 온다. 이때, 그의 연기는 매우 설득력 있다.

  데이미언의 동네 후배 미하일의 누나인 시네드는 나중에 데이미언의 연인이 된다. 할머니와 어머니와 살고 있는 시네드는 남동생 미하일은 영국군에 의해 죽고, 숲속에 위치한 그녀의 집은 종종 아일랜드 공화군들의 은거지가 된다. 나중엔 영국군에 의해 불에 타지만, 그녀와 가족은 끝까지 그 집을 지킨다. 그 외에도 기관사 출신 IRA대원 데런의 캐릭터가 중요하게 묘사된다. 그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데, 데이미언이 딜레마 빠질때 나름 영향을 주는 인물이다. 크리스 라일리는 어린 IRA대원으로 독립군의 은거지를 밀고하게 된 배신자로 데이미언에게 처형당한다. 데이미언이 동네 후배이자 동료였던 그를 조직을 배신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하는 상황은, 마지막 신에서 형제이지만 테디가 동생 데이미언을 처형하게 되는 상황과 겹친다. 영국군들은 개개인에게 캐릭터가 주어지지 않고, 단지 적대자로서의 역할만 한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데이미언과 시네드의 로맨스도 있지만, 둘의 멜로적 설정은 특별하게 강조되진 않는다. 그들의 사랑은 결국 영국과의 저항운동, 그리고 평화협정후 동족간의 대립으로 인해 끝장나는 걸 보여줌으로서 주제의 비극성을 강조하는 보조 역할을 할 뿐이다.

중요한 모티프: 시네드의 집과 성크리스토퍼 메달

   이 영화에 반복되는 극적 요소인 중요한 모티프가 있다. 첫째는 공간의 모티프로, 시네드의 집과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산과 들판을 꼽을 수 있다. 영화가 시네드의 집에서 시작해서 반쯤 불에 탄 그녀의 집에서 마무리될 정도로 그녀의 숲속 집은 당시의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상징된다. 두번째는 소도구의 모티프로는 성 크리스토퍼의 메달이 사용된다. 초반에 영국군에 의해 희생당한 시네드의 동생 미하일의 유품인데, 시네드가 연인 데이미언에게 전해주고, 그것을 품고 영국군과 싸우던 데이미언은 자유국군에 처형당하기 직전 형 테디를 통해 시네드에게 돌려준다. 그 메달은 저항의 상징이다. 사운드 모티프는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 로버트 드와이어 조이스가 쓴 시 ‘브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윌리엄 브레이크의 시가 활용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한 형제가 영국과 맞서 투쟁할때는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았는데, 나중에 거의 독립을 앞둔 시점에서 동생이 친형에게 처형당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데이미언의 상황은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일본제국주의에 투쟁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다가 해방이 되자, 같은 민족에게 암살당한 독립운동가 여운형과 김구가 떠오른다.

   조국 아일랜드의 해방후 독립의 방법론에 대해 형제의 생각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로 나뉘고, 결국엔 그 방법론 차이로 비극을 맞이한다. 영화는 누가 옳은지 직접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관객에게 ‘당신은 그 형제들 중 누구에게 공감하느냐?’는 식으로 질문을 던지지만, 그래도 영화의 분위기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은 내던진 동생 데이미언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걸 통해 켄 로치 감독은 ‘마이클 콜린스’보다, ‘제임스 코놀리’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켄 로치의 영화들은 위대한 정치영화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일부에선 불쾌한 저예산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일반적인 대중영화처럼 선악이나 정의와 불의가 명확한 가운데 해피엔딩을 주는 속시원한 결말보다는,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씁쓸한 결말로 일부 관객을 다소 불편하게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시대상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하는 메시지를 진정성있게 그려냈다는 점으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은 건 당연해 보인다. 우리 한국영화에서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는 많을지라도, 작품으로 국제무대에서 평가받는 영화는 거의 없는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그 시대를 접근하고자 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일랜드 독립을 다룬 영화는 그동안 수없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작품성으로도 평가받은 영화들이 자주 나오는 이유에 주목해야할 것 같다. 일제감정기를 다루더라도, <암살>이나 <밀정>처럼 상업적이면서 동시에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나 <마이클 콜린스>, <블러디 선데이>같은 진정성과 리얼리티가 잘 어울어진 작품을 만들 순 없는 것일까? 어쩌면 2차 대전을 대체역사를 통해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다룬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이나  또다른 차원에서 매우 리얼한 전쟁영화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같은 영화들이 또다른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


  켄 로치 감독이 2019년 84세 만든 <미안해요, 리키> 또한 칸 영화제에 초대받았는데, 대단한 감독이다. 현재 87세의 나이인데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셈이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영화인생 2막을 시작한 나에겐 큰 위로가 되는 감독이자,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영화를 만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과 함께 나의 롤모델 감독이다. 그들 못지 않게 영화를 꾸준히 잘 만드는 감독이 되고싶다.


  *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일 다시 감상하다가 옥의 티를 발견했다. 감독의 의도였는지 몰라도, 총격신이 많은데, 인물들이 총에 맞을 때, 그 부위가 총상으로 인해 옷이 찢기고 피가 튀거나 하는게 자연스러울텐데, 마치 연극처럼 전혀 피도 나지 않고 옷도 찢기지 않은채 그냥 쓰러지는 액션만 하고 있다. 예전에 처음 감상할 때 그냥 지나쳤는데, 다시 보니, 좀  어색해 보인다. 왜 그런 식으로 연출했는지 의문이다. 옥의 티처럼 리얼리티를 깨는데... 특효할 돈이 없어서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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