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베카> (Rebecca, 1940)는 영국에서 활동하던 서스펜스 스릴러 대가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감독이 헐리우드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에 초대받아, 처음으로 미국에서 감독한 작품으로, 히치콕의 유일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각본은 로버트 E. 셔우드와 존 해리슨이 맡았고, 다프네 뒤 모리에의 동명 소설<레베카>를 영화화한 것이다. 국내에선 뮤지컬 <레베카>로도 종종 공연되고 있을 정도로 인기있는 스토리다.
알프레드 히치 콕 감독의 유일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최근에 리메이크되어 넷플릭스에 공개된 <레베카> (2020년, 벤 휘틀리 감독)는 스토리만 비슷하지 연기와 촬영, 연출등 전반적으로 너무 평범해서, 그저그런 막장 드라마처럼 보인다. 많은 면에서 왜 히치 콕의 연출력이 대단한지를 상대적으로 느끼게 해준 작품일 뿐이다. 이상하게도 과거 7,80년전 흑백고전을 리메이크한 현대영화들 치고, 원작보다 나은 경우를 보기 힘들다. 얼마 전,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중 하나로 평가받는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끼라의 <이끼루> (1952)를, 영국의 올리브 허머너스 감독이 칼라로 리메이크한 <리빙: 어떤 인생> (2023)을 보았는데, 너무 심할 정도로 졸작이었다. 똑같은 시나리오로 영화로 만들더라도 감독의 연출력에 따라 영화의 질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에 불과했다.
1. 미스테리 영화 : 사고로 죽은 남편 전부인의 망령에 시달리는 소심한 여인의 이야기
<레베카>의 스토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초반에 몬테 카를로 바닷가 절벽에서 가난하고 수줍음 잘 타는 미국 여성(조안 폰테인, Joan Fontaine)이 우연히 맥심 드윈터(로렌스 올리비에, Laurence Olivier)라는 부유한 영국 남자를 만난다. 맥심은 몇년 전에 아내 레베카와 사별한 신사로, 아직도 전처를 잃은 슬픔에 고통스러워하는 듯하다. 그렇게 다소 불안정한 심리 상태의 맥심과 소심해 보이면서 가난하고 착해 보이는 미국 여성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다.(영화 전반에 걸쳐 여주인공인 맥심의 두번째 아내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고, 그저 드윈터 부인으로만 나온다) 그리고 두 사람은 콘웰에 있는 맥심의 대저택 '만다레이'로 돌아가 그곳에서 살게 된다.
<레베카>의 스토리만 언뜻보면, 우리가 흔히 보는 TV의 막장 홈드라마 같기도 하다. 히치콕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히치 콕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력, 그리고 세련된 카메라 덕분에 고급스런 영화가 되었다. 히치콕의 대부분 영화들이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가 강한데 반해, 이 작품만은 미스테리 요소가 우월하게 작동하고 있다. 제목이 ‘레베카’일 정도로 이 작품에서 맥심의 죽은 전 아내 레베카란 인물은 중요하지만, 한번도 그녀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 일반영화라면 회상이나 사진을 통해서라도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녀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로 큰 역할을 한다. (물론 중간에 그림으로 잠깐 나오긴 하지만...)
2. 후반에 밝혀지는 레베카의 비밀: 미스테리가 벗겨지는 반전의 힘이 강한 플롯
스토리의 구조는 전형적인 미스테리 드라마처럼 전개되지만, 후반에 드러나는 반전의 충격이 강한 편이다. 이야기의 주된 공간은 맥심의 유서깊은 맨더레이 저택인데, 주로 주인공 맥심 드윈터의 재혼녀인 미국여성 드윈터 부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선동적인 사건은 초반 27분경, 가난한 여주인공이 맥심 드 윈터란 남자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서 맨더레이 대저택에 도착하는데서 시작된다. 그 대저택을 총관리하는 집사 덴버스 부인을 만나게 되고, 여주인공은 맥심의 전 아내 레베카를 절대적으로 추종했던 벤더스 부인의 기세에 눌려 지낸다. 여주인공은 남편 맥심의 전 아내 레베카의 죽음에 대한 사연을 듣게되고, 온 집안이 그녀 흔적으로 감싸돌자, 압박감을 갖고 대저택 생활을 하게된다.
영화 중반부쯤에(64분) 레베카의 사촌 오빠라는 파벨이 방문하는데, 그는 자신을 외로운 노총각으로 소개하면서 맥심에게 자기에 대해 얘기말라고 부탁한다. 드윈터 부인인 여주인공은 과거 레베카가 거주했던 방에 들어가게 되는데, 덴버스 부인이 나타나 레베카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러자 여주인공은 레베카 물건들을 치워달라고 한다. 이제 자신이 맥심드윈터 부인이라면서. 그리고 남편 맥심에게 부탁해 과거처럼 저택에서 가장 무도회를 열자고 제안한다. 덴버스 부인은 무도회 의상에 대한 아이디어로 초상화에 그려진 여인의 옷을 추천한다.
여주인공은 무도회를 여는 날(80분), 그 의상을 입지만, 막상 남편 맥심은 화를 내며 당장 벗으라고 한다. 그녀는 덴버스 부인의 농락이란 걸 알고, 그녀와 다툰다. 그러자 덴버스는 맥심이 죽은 마님 생각에 괴로운 거라고 말하고, 맥심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은근히 자살을 유도한다. 그때 밖에서 폭죽이 울리고 난파선이 발견되었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알고보니 레베카가 타고 갔다 죽은 난파선이었던 것이다. 여주인공이 베레카의 강박에 휩싸인 맨더레이 저택의 생활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 궁금해지는 시점에서 난파선 발견은 의외의 큰 반전을 준다.
<레베카>를 연출하는 히치 콕 감독
반전1, 맥심의 전 아내 레베카의 실체가 드러나고
난파선 안에서 죽은 레베카를 발견되자, 과거에 발견되었다던 레베카의 시신은 레베카가 아니었다는 게 드러난다. 괴로워하는 맥심을 보고 여주인공은 말한다.
여주인공: 당신이 아직도 레베카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날 사랑하라고 하겠어요.
당신은 날 항상 레베카와 비교했어요.
맥심: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 믿었오? 난 그녀를 증오하오.
이어서 맥심은 말한다. 다들 전 아내 레베카가 교양, 지성, 미모를 갖췄다고 했지만 난 한번도 난 한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그녀는 사랑, 예의, 부드러움이 없는 여자였으니까. 레베카는 맥심과 결혼한지 4일후부터 거래를 하자고 했고, 헌신적인 부인처럼 연기하겠다고 했다 한다. 그리고 레베카와 그녀 사촌 파벨과는 불륜사이였다고 얘기한다. 그런 맥심의 고백에 여주인공은 충격받는다. 과거 레베카는 맥심에게 ‘자신이 임신해서 아이를 낳으면 아무도 당신 아이라 장담할 수 없을 거’라고 하면서 비웃었고, ‘그 아이가 나중에 맨들리 저택을 이어받겠지’ 라면서 농락했다고 한다. 그런 얘길 하며 둘이 다투는 와중에 레베카가 맥심에게 다가오다 스스로 쓰러지더니, 배에서 쓰는 연장에 머리를 부딪혀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놀란 맥심은 얼른 그녀를 배로 옮겨 선실에 싣고 바다로 보내 배 바닥의 해수 코크를 빼고 사고로 위장한 거라고 여주인공에게 고백한다. 맥심은 결국 ‘죽은 레베카가 살아있는 자신을 이긴’거라고 좌절하자, 여주인공은 그 모든 사실을 경찰엔 숨기자고 제안한다.
결국 레베카 시신 발견으로 인해, 경찰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게 되고, 맥심을 재판정으로 불러 심리하게 된다.(100분) 법원에서 부인 자살 가능성에 대해 따지기도 하고, 검찰은 부인과 관계가 행복했느냐 묻자, 맥심은 대답 대신 화를 낸다. 1차 재판의 심리직후, 맥심과 여주인공에 레베카의 사촌 파벨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맥심에게 레베카의 살인을 눈감아 줄테니, 돈을 달라는 식으로 협박한다
그러면서 죽는 날 그녀가 파벨 자기에게 보낸 편지를 보여준다. 자살할 여자가 이런 편지를 쓸리 없다면서. 맥심은 그의 제안을 받는 대신, 파벨을 경찰국장에게 데려간다. 파벨은 레베카 편지를 경찰 국장에게 보여준다. 레베카가 자살할리 없다면서. 그때 덴버스 부인이 와서 레베카 주치의 마을 의사 닥터 맥클레인 얘길 한다. 덴버스는 결국 영국 의사 베이커 얘길 하며, 레베카가 그녀에게 임신 사실을 확인하러 갔을 거라고 얘기한다. 파벨은 옆에서 결국 아기가 맥심 아이가 아니라서 맥심이 레베카를 죽인 거라고 거든다.
맨더레이 저택의 댄버스 부인과 여주인공(드 윈터 부인)
반전2_ 죽은 레베카의 의도, 자살인가? 타살인가? 그 진실이 밝혀지고
맥심 드윈터는 경찰들과 함께 런던 의사를 만나러 가서 또다른 큰 반전을 경험한다.
레베카가 죽기 직전, 그녀를 진찰했던 의사는, 사실 당시 레베카가 말기암이었기에 그녀가 자살할만한 동기는 충분하다고 증언한 것이다. 맥심은 그제서야 레베카가 자신의 시한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살인자로 몰아가기 위한 연극을 했음을 깨닫게 된다. 의사의 증언 덕분에 맥심은 살인 혐의를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맥심은 레베카가 충고했던 대로 자신과 다투다 쓰러진 그녀를 배에 실어 해수코크를 연채 바다에 빠지게 했던 사실은 끝까지 숨긴다. 그로인해 맥심과 여주인공은 비로소 레베카의 그늘에서 벗어나 맨더레이 저택에서 행복하게 살 것으로 해피엔딩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맥심이 맨더레이 저택으로 돌아가는 데, 그 순간 멘더레이 저택은 레베카를 추종했던 덴버스 부인에 의해 불타고 있는 있는 것을 발견한다. 다행이 여주인공은 그 불타는 저택에서 빠져나와 살아남지만, 마지막 컷에 R이라는 표시가 새겨진 레베카의 손수건이 불타는 게 보여지며 끝난다.
이 작품은 가난하지만 착한 여인이 우연히 거대한 부를 가진 돌싱 남자를 만났지만, 죽은 그 남자의 전부인의 강박에 시달리며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다가, 결국 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그 강박에서 벗어나게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왜 맥심의 전 아내 레베카는 그렇게까지 남편을 증오하고 복수하고자 했을까? 사실 영화에서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을 부족해 보인다. 또한 덴버스 부인은 왜 그렇게까지 죽은 레베카에 집착했을까도 의문으로 남는다.
히치 콕의 <레베카>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리메이크된 영화와 비교해 보면, 일단 주요 배우들 분위기의 차이가 크다. 특히 1940년 흑백 <레베카>에서 여주인공 조안 폰테인과 맥심역의 로렌스 올리비에는 둘 다 이미지와 연기가 매우 잘 어울리고 좋지만, 리메이크 작품에선 두 남녀 주인공 모두 캐릭터 분위기와 잘 맞지 않아 공감하기가 어렵다. 1940년 <레베카>는 히치콕의 영화치곤 서스펜스보다 미스테리가 강하지만, 전반부 맨더레이 저택에서 댄버스 부인의 캐릭터 묘사는 그나마 히치콕의 서스펜스 스릴러 효과를 잘 살려주고 있다. 특히 그녀가 드윈터 부인앞에 등장할때마다 마치 유령같은 느낌으로 어느새 다가와 서있는 모습은 나중에 섬찟한 느낌까지 전달한다. 리메이크 작품에선 그런 강렬한 느낌에 대한 묘사가 매우 약하다. 히치콕의 <레베카>는 초중반 만더레이 저택에서 죽은 레베카에 눌려 지내는 여주인공에 대한 심리 묘사와 후반의 큰 반전이 주목할만 하다. 히치 콕은 이 영화를 통해서 무슨 얘길 하고자 한 걸까? 엄청난 부도 결국 개인의 행복에 별 의미 없다는 얘길 하고자 한걸까? 이 영화 이후 스토리가 계속된다면, 맨더레이 저택이 불타고, 이제 제로가 된 상태에서 맥심과 그의 아내의 진정한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줄지 모른다. 물론 그또한 또다른 딜레마를 맞게 되겠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