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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주 Jan 20. 2023

어떤 대화

Knowing yourself deeply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좋다. 본인의 취향과 성향, 인내의 한계, 불안함의 뿌리 등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받아들이거나 깨부수며 사는 사람이 좋다. 중요한 건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정성과 용기다. 그런 사람은 크게 흔들리지도 쉽게 유혹당하지도 않고 늘 푸르다.


반면, 무언가 물어봤을 때 '몰라'로 일관하는 이가 있다. 취향이 흐려서이기도 하지만, 말에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그런 사람은 오히려 책임감 있는 인물로 보이기 쉽다. 정말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기 때문에, 일단 뱉은 말은 무조건 책임지는 우직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뱉을 수 없고, 생각을 말할 때 대부분 우물쭈물하다 삼켜버린다. 우회해서 영리하게 책임이 발생하지 않도록 의견을 말해도 되지만 그 정도까지의 대화 스킬은 없는 경우다.


그런 이와 대화를 하다 보면, 물음표만 생긴다. 시간이 갈수록 더 이 사람을 모르겠다는 생각만 든다. 호기심 만큼 질문도 많은 내 입을 다물게 만든다. 이제 그런 건 내 눈에 신비롭다기보다 비겁하다. 둥글둥글하다기보다 답답하다. 그래서 누군가 제3자를 설명할 때 '참 우직하고 조용한데 사람 좋아 보인다'라고 하면 오히려 가재눈을 뜨게 된다. 찝찝한 대화를 나누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 이 말들 역시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나의 취향이다. 비겁한 대화방식에 진저리가 나버렸다고 여기 이렇게 적나라하게 말하는 나의 말엔,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답답했던 대화를 복기하게 되는 시즌이다.

대기는 고요한데 마음은 소란한 날. 텅 빈 집, 어두운 방 침대에 나의 고양이와 마주 보고 누워

아무 말 없이 그 예쁜 눈만 바라보고 싶다.

가끔 뺨 언저리를 쓰다듬으면서,

'오늘도 사랑해. 너도 그렇지? 말 안 해도 다 알아.'

간간이 들리는 나른한 말, 낮게 깔리는 고롱고롱 소리.

그런 게 그리운 오후.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 _ Digital painting ,35x40, 2020 by 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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