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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묘미 Jun 20. 2023

여름·영화관

취향을 위한 최적의 계절

여름의 찌는 더위는 끔찍하지만, 그만큼 체험으로서 완벽한 계절도 없다. 특히 평일 대낮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일에 취향을 들인 내게 여름만큼 최적의 포맷도 없다. 영화관을 나와 차갑게 식은 몸으로 한가로이 도시를 거니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뜨거웠던 여름의 기운도 한껏 물오른 기분에 충만함을 더한다. 차가운 팔뚝을 녹이는 열기는 포갠 이불 사이에 온몸을 감싼 듯 포근하다. 두꺼운 가로수는 사지를 최대한으로 뻗어 자신의 푸르름을 맘껏 뽐낸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몽실몽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그 아래 도시의 풍경은 오래된 개미굴처럼 복잡하지만, 기름칠 없이도 특정한 규칙에 의해 끊임없이 돌아간다. 언덕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가 지글지글 끓어오른다. 차도 사람도 그늘을 찾아 떠돈다. 그늘 밑에서 매미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린다. 여름, 에어컨, 카페, 나무 밑 그늘, 서늘한 지하철, 열대야, 한강, 맥주. 신체와 정신은 극단적인 환경에 수시로  전환을 거듭하며 적응해야 한다. 변화에 게으르면 금방 감기에 걸려 고생한다. 그래도 여름이 있기에 소소한 취향을 최적의 온도로 즐길 수 있다.



평일 낮, 영화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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